3월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2리의 집 앞에 도착해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던 아이와 인사를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이 대구로 돌아갔다. 그가 대구 땅을 마지막으로 밟은 것은 2016년 12월1일, 대구 서문시장 화재 다음 날이었다. 탄핵 정국 속 외출이었다. 여드레 뒤인 12월9일 탄핵안이 가결됐다. 급기야 이듬해(2017년) 3월31일엔 구속된다. 그가 다시 대구를 찾기까지 1940일이 걸렸다. 특별사면 후 그는 4선 의원을 지낸 자신의 정치적 고향 ‘달성’에 터를 잡았다. 3월24일 자택 앞 기자회견에서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달성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스스로를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귀향을 반기지 않는 한 시민이 소주병을 던져 현장에 잠시 혼란이 일었지만, 소감을 말하는 얼굴은 대체로 평온했다. 화동이 꽃을 전해주고 지지자 수천 명이 몰렸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의 ‘금의환향’이었다.

입주 이후 두 번째 주말을 맞은 4월3일,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2리 박근혜 사저 앞을 다시 찾았다. 남쪽의 봄은 이미 완연해 벚꽃이 흐드러져 있었다. 사저 입구에 세워진 간판 밑에는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걸 알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과 함께 대한민국에 다시 봄이 올 것을 기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박근혜 사저 인근 주말 방문객 수는 3000~5000명에 달했다(경찰 추산). 달성군에서는 임시주차장을 마련하고 이동식 화장실 두 곳을 설치했다. 경찰 인력도 추가 배치됐다. 길가에 국화빵, 뻥튀기, 식혜 등을 파는 푸드트럭이 늘어섰다. 바쁘게 국화빵을 팔던 상인은 이곳의 바뀐 분위기를 전했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은 아니에요. 근처에 비슬산휴양림이 있긴 한데 거기까지 거리가 좀 있으니까. 다들 대통령 사저 보러 온 거죠. 저도 대통령님 내려오기 직전에 여기 자리 잡았어요.” 행락객들은 기온이 19℃까지 오른 대구 박근혜 사저 앞에서 함께 온 자녀와 연인, 반려동물과 봄날을 즐겼다.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실물 크기의 박근혜 입간판이 선 곳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끝에 차례를 맞은 지지자들은 사진 속 박근혜의 손을 꼭 잡으며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시민 모임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달성환영단’에서 만든 우편함은 응원 엽서로 가득 차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남성 지지자는 천천히 생각하며 손편지를 썼다. “무고하게 고생하신 박 대통령 힘내시고 명예회복 하시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문장을 고민하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저 인근에는 카메라를 들고 라이브 방송을 하는 유튜버 10여 명이 눈에 띄었다. 박근혜의 업적을 기리고 탄핵의 억울함을 설명하는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관람객 일부는 사저로부터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명소도 찾았다. 강용석 소장과 김세의 대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대구지점 사무실이다.

대구의 명소가 된 박근혜 사저는 어떻게 마련됐을까? 사면 이후 ‘무일푼’으로 알려진 박근혜의 집 구입비를 두고 추측이 무성했다. 국정농단·특활비 상납 혐의로 박근혜에게 부과된 벌금과 추징금은 215억원에 달했다. 박근혜의 예금이 압류되고 내곡동 사저까지 경매에 넘어갔다. 주택 매입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매매가 25억원, 취득세 3억원의 주택이 대구 달성군에 마련돼 2월17일 박근혜에게 소유권이 이전됐다. 가세연이 매매대금을, 유영하 변호사가 취득세를 댔다.

달성 사저 구입비의 출처는…

달성 사저 구입비의 출처에 대해 처음 입을 연 사람은 가세연의 김세의 대표였다. 그는 2월26일 가세연 SNS에 ‘일일이 다 밝히지 못해서 속타는 심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하나 남겼다. “저와 강 소장(강용석 변호사)은 반드시 박 전 대통령 거처를 마련하겠다고 여러분께 약속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님은 현재 재산이 전무”한데 “달성 사저 문제는 저와 강용석 소장이 직접 밝히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박 대통령님께서 직접 밝히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2021년 8월 가세연이 박근혜의 서울 내곡동 사저를 구입하기 위해 당시 감정가이던 31억6554만원보다 5억원을 높여 공매 입찰에 참가했던 사실도 다시 조명받았다. 당시 38억6400만원을 써낸 입찰자가 있어서 가세연은 차순위 매수 신청을 했지만 낙찰받지 못했다.

대구 사저 구입비 내역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3월25일, 박근혜가 달성 사저에 입주한 다음 날이었다. 박근혜 측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했던 유영하 변호사는 대구·경북 일간지 〈매일신문〉의 유튜브에 출연해 “사저 구입비용은 실제로 가세연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 맞다”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사저 구입비를 가세연이 내줬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어쩌자고 논란이 많은 가세연과 박 대통령을 연결시켰습니까?’라는 시청자 실시간 댓글이 올라오자 이에 답변한 것이다. 그는 주택 구입 당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인 간의 채무 채권이라 내역을 상세히 밝힐 순 없지만 도움을 받은 것은 확실하며, “도움을 준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고 말할 수 있”으니 “(가세연을) 너무 나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넉넉하게 받아들여달라”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가세연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을 계획도 마련해두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돈 역시 가세연을 통해 나온다. 가세연은 박근혜가 사면되기 전날인 2021년 12월30일 박근혜의 옥중 서간집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유영하 엮음)를 출간했다. 가세연은 책 판매 수익금 전액을 박근혜에게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세연에 따르면 3월25일 기준으로 해당 책은 20만6000여 권이 판매됐다. 제작비용을 뺀 순수익은 6억원가량이다. 유 변호사의 계획은 가세연으로부터 인세를 받게 되면 그 금액으로 빌린 돈의 일부를 갚겠다는 것이다.

박근혜씨가 후원회장을 맡은 유영하 대구시장 예비후보가 11일 오후 대구 달서구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최근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유튜브채널 가로세로연구소 강용석 예비후보와 대화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김세의 대표가 SNS에 쓴 글에 따르면 가세연은 박근혜에게 돈을 ‘직접’ 주지 않았다. 김 대표는 그 이유를 “박근혜는 절대로 돈을 받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증여세 절감’의 효과도 언급했다. “대한민국 증여세가 50%라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사저 구입비) 28억원의 50% 세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14억원입니다. 14억원은 저나 강 소장님이나 유 변호사님이 내는 게 아니라 증여일 경우, 박근혜 대통령님께서 직접 내셔야 할 세금이 되는 것입니다.”

‘박근혜’라는 공통분모로 가세연과 유영하 변호사가 엮였다. 유 변호사가 유튜브에 출연한 3월25일 김세의 대표는 가세연 SNS에 “(매매대금 25억원 중) 김세의가 21억원, 강용석이 3억원, 가로세로연구소가 1억원”을 보탰다고 구체적인 액수를 밝혔다. 자신과 유영하 변호사가 달성 지역에서 후보지 다섯 곳을 직접 찾아다녔으며 계약서에 서명할 때 함께했다고도 덧붙였다.

이들은 왜 이리 통 큰 투자를 했을까? 4월1일, 유영하 변호사는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대구시장 후보 출마 선언을 했다. 기자회견에서 유 변호사는 “박근혜가 자신의 후원회장이 되어주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가세연의 김세의 대표와 강용석 소장도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다. 이들은 출마 현장을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하며 “유영하 변호사의 후원회장이 됐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지지 표명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 소장은 “(유영하를) 꼭 당선시켜야 하는 상황이고 단 몇 프로(의 지지율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박근혜가) 직접 (유세 현장에) 나오시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4월4일 가로세로연구소의 강용석 변호사가 경기도 수원시 세류역 앞에서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다. ⓒ시사IN 조남진

사흘 뒤인 4월4일, 강용석 소장도 출사표를 냈다. 강 소장은 경기도 수원시 세류역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루지 못한 꿈을 경기도에서 강용석이 이루겠다”라며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소통한 바가 있느냐는 〈시사IN〉의 질문에 강 소장은 “차차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느끼실 수 있을 거다. 벌써 밝히기에는 성급하다”라고 답했다.

유 변호사와 가세연의 바람대로 6·1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마케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 측이 매우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것 같진 않다. 천하람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될수록 국민의힘은 지방선거 판세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구시장 선거는 좀 다르지 않을까? 박근혜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애틋한 정서를 고려할 때 전국 판세와 다른 특성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천하람 위원은 “대구 시민들의 윤석열 후보에 대한 기대감은 이번 대선 득표율로 확인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기에 기대지 않아도 국민의힘 후보가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라고 주장했다.

천하람 위원은 오히려 박근혜가 유영하 변호사의 후원회장이 된 ‘변수’ 때문에 윤석열 당선자와의 개별 만남이 취임식 이전에 성사되기 어려워졌다고 봤다. “박 전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명확히 밝힌 상황에서 당선인과 만남이 이뤄지면 정치적 함의가 확대 해석될 거다. 만나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당내에서는 서둘러야 한다는 분위기가 아니다.”

대구·경북 지역의 한 국민의힘 관계자도 “지금은 대구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시기상조로 본다. 총선이 치러지는 2년 후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대구시장으로 유영하 변호사가 유망하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는 4월12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당선자는 '특검과 피의자로서의 악연'을 언급하며 "면목이 없다. 늘 죄송했다"라고 말했다.  '박심'에 힘이 실리는 발언이었다.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선 강용석 소장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4월1일 〈조세일보〉 인터뷰에서 자신의 출마 계기가 ‘국민의 부름’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면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유승민의 경기도지사직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 국민들이 자신을 호출했다는 의미다. 강 소장은 그 근거로 〈인사이드뉴스〉라는 인터넷 언론사가 3월20일 진행한 ‘경기도지사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그 여론조사에서 강용석 소장은 유승민 의원(22.9%)에 이어 지지도 2위(14.4%)에 올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 언론사 주소, 가세연 본사 주소와 같아

〈인사이드뉴스〉는 2020년 6월18일 설립되었다. 이 인터넷 언론사의 본사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다. 주소가 가세연 본사와 같다. 〈인사이드뉴스〉 발행인은 구충길 대표다. 김세의·강용석 제작, 김세의 대본의 뮤지컬 〈박정희〉 연출자 이름도 구충길이다. 〈인사이드뉴스〉 등기부등본에 올라 있는 사내이사 강 아무개씨는 강용석 소장의 아들과 이름·생년이 같다.

4월2일 오후 2시, ‘가세연 콘서트’가 열린 경기도 일산 킨텍스 그랜드볼룸 공연장. 뮤지컬 〈박정희〉의 수록곡 ‘쌀꽃 이팝나무’ 노래가 울려 퍼졌다. “내 마음 이팝나무 저 꽃이 쌀이라면~ 이 나라의 모든 국민 배부르게 먹을 텐데~ 반드시 이루리라 경제대국을 만드리라~ 국민의 웃음소리 온 나라에 울리리라.” 두 시간 남짓 이어진 가세연 콘서트의 마지막 곡이었다. 강용석 소장과 김세의 대표를 포함해 콘서트에 나온 모든 출연진이 무대에 올라 관객 300여 명과 손을 흔들며 합창했다.

무대에 오른 김세의 대표는 유영하 변호사의 대구시장 출마를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지방선거에 승부수를 띄우신 겁니다. 이번에 유영하 변호사가 대구시장이 안 되면 박근혜 대통령님의 정치력에도 큰 타격을 입는 것이니 심각성을 인식해주시고 함께 끝까지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청중의 박수가 이어졌다. 그는 자신과 강용석 소장은 “아무 권력 욕심이 없다”라고 말하곤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저희는 우리 우파 문화전쟁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가로세로연구소의 대구지점 사무실은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에서 불과 200m 떨어져 있다. ⓒ시사IN 신선영

유튜브 채널 가세연의 현재 구독자 수는 90만명이다. 가세연은 자신들의 콘텐츠에 ‘노란 딱지’가 많이 붙어 경제적 타격이 크다고 말한 적이 있다. 노란 딱지는 유튜브 약관에 따라 부적절한 언어, 폭력, 증오성 콘텐츠 등 ‘광고주 친화적이지 않은’ 영상물에 붙는, 광고수익이 차단됐음을 알리는 표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세연은 시청자들의 후원금과 슈퍼챗만으로도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튜브 통계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3월 마지막 주 가로세로연구소의 주간 슈퍼챗 순위는 국내 1위로 2000만원이 넘는다. 슈퍼챗이 가장 많았던 라이브 방송은 20대 대통령 개표방송이다. 이날 방송만으로 3000만원가량의 슈퍼챗이 들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 앞에 있는 가세연의 사무실 두 곳 중 한 곳은 조명장비 등이 설치된 영상 제작 스튜디오다. 강용석 소장은 앞선 〈조세일보〉 인터뷰에서 “대구 사저 앞에 마련한 가세연 대구 스튜디오에서 박 전 대통령님 단독 인터뷰를 할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의 정무 감각에 따라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순간’에 자신들과 만나게 될 거라고도 덧붙였다.

만약 박근혜가 자신의 집 앞에 있는 가세연 스튜디오를 방문한다면 그것은 공적 부문의 ‘사건’이 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은 가세연 유튜버들을 만날 것인가. 박근혜 사저와 가세연 스튜디오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