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초청 3차 법정 TV 토론회에서 대선 후보들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이재명: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개인의 문제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사과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윤석열: (…)집합적인 남자, 집합적인 여자의 문제에서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훨씬 더 피해자나 약자의 권리와 이익을 더 잘 보장해줄 수 있다는 말씀만 드리고요.

이재명:여성은 구조적인 성차별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대답을 안 하십니까?

윤석열:그거에 대해서 시간을 쓰기 싫어서….
(2월21일 대선후보 TV 토론)

이번 대선에서는 한국 사회에 성차별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공방이 오갔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주장처럼 ‘개인 대 개인’의 문제만으로 바라봐도 괜찮을 만큼 여성 집단의 현실이 나아졌을까. 쟁점 중 하나는 국제 성평등 관련 지표다. 정치권에서 ‘여성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점차 세를 불려나가는 가운데 국제기구들이 낸 성평등 관련 지표들이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GGI, Gender Gap Index)와 유엔개발계획(UNDP)의 성불평등지수(GII, Gender Inequality Index)이다.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GGI)에서 한국은 0.687로 153개국 중 102위를 기록했다(2021년 기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월7일 페이스북에 이 수치를 언급하며 윤 후보의 ‘구조적 성차별’ 발언을 비판하자, 국민의힘 측은 이를 문제 삼았다. 장예찬 국민의힘 선대본부 청년본부장은 〈시사IN〉에 이렇게 말했다.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는 허무맹랑한 통계다. 르완다나 필리핀같이 절대적인 인권 수준이 낮은 국가가 우리보다 순위가 훨씬 높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르완다의 성격차지수는 0.805로 7위, 필리핀은 17위(0.784)다. 장 본부장은 세계경제포럼 지수가 한국의 성차별 현실을 과장했다고 본다.

반면 유엔개발계획의 성불평등지수(GII)를 보면 2020년 한국은 0.064로 162개국 중 11위, 아시아 국가 중 1위를 차지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성평등’한 나라일 뿐 아니라 이 부문에서 이탈리아(14위), 독일(20위), 영국(31위) 등 유럽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 국민의힘 청년본부 측이 “훨씬 더 정확하고 공신력 있는 통계”라고 주장하는 지표다. 2010년 GII가 처음 발표된 이래 한국은 줄곧 10~20위권을 기록해왔다. 이 사실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 후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연결고리로 자리매김했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차별받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여성이라고 불평등한 취급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세계경제포럼에서 100위권 밖인 한국의 성평등 지수가 어떻게 유엔개발계획에서는 11위로 산출되었을까? 또한 이를 두고 한국에서 구조적 성차별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시사IN〉은 국제 지표를 둘러싼 논란을 유엔개발계획과 세계경제포럼 측에 직접 묻기로 했다.

먼저 유엔개발계획의 성불평등지수(GII, 한국이 세계 11위)부터 따져보자. 〈시사IN〉과 서면으로 인터뷰한 이 단체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인 카롤리나 이벤 셸란데르는 “성불평등은 다차원적인(multidimensional)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지수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는 두 국제기구가 ‘무엇을 성평등의 핵심으로 보느냐’의 관점이 다른 데서 비롯된다. 유엔개발계획의 GII는 ‘모성 사망비(산모 사망률)’ ‘청소년 출산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고등학교 이상 교육받은 비율’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등으로 측정된다.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GGI)의 구성요소는 좀 더 다양하다. ‘경제참여와 기회(경제활동 참가율, 유사업무 임금 성비)’ ‘교육적 성취(문해율, 취학률)’ ‘건강과 생존(출생 성비, 기대수명)’ ‘정치적 권한(여성 국회의원 및 장관 비율)’ 등이다.

성불평등지수에 영향 미친 ‘청소년 출산율’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두 지표의 개념과 목표는 다르다. GII는 유엔개발계획의 다른 지표들이 ‘소수 엘리트 여성의 지위만을 제한적으로 반영한다는 비판’에 따라 신설되었다. 그래서 GII에는 산모 사망률과 청소년 출산율 등이 반영된다. 이는 의료와 교육 시스템이 덜 발전한 개발도상국에선 여성 인권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다. 셸란데르 씨는 “GII의 주요한 혁신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자유, 신체의 자율성을 포착하기 위한 ‘생식 건강(reproductive health:생식 체계에서 육체적·정신적 질환 및 사회적 환경의 상태)’ 차원을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엔개발계획의 보고서를 보면 한국이 성불평등지수(GII) 기준으로 전 세계 11위 성평등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월등히 낮은 ‘청소년 출산율’ 덕분이다. OECD 평균은 22.9%인데 한국은 1.4%에 불과하다. 나머지 지표들에서는 순위가 한참 뒤처진다. 다음은 셸란데르 씨의 말이다. “한국의 여성 의석 비율은 16.7%에 불과하다. OECD 국가 평균은 30.8%다. 고등학교 진학률과 경제활동 참가율에서 남녀 격차도 확인된다. 남녀 격차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한국은 상위 10위권 국가 중 가장 큰 성별 간 격차를 보인다.”

이렇게 보면, GII만으로 ‘한국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있는지 없는지’ 판별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청소년 출산율’ 이외의 지표를 보면, 한국의 성평등을 세계 11위, 아시아 1위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는 어렵다.

〈시사IN〉은 한국의 성평등 성적을 세계 102위로 평가한 세계경제포럼(WEF) 미디어 담당자 클로에 라루크 씨와도 인터뷰했다. 성격차지수(GGI)는, 개발도상국들이 성평등 수준에서 한국보다 상위에 오르면서 “신빙성 없는 자료” “문제 많은 통계”로 비판받는 지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라루크 씨는 우선 “GGI를 (GII 같은) 다른 지수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라는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GGI는 여성 삶의 수준을 측정하는 지수가 아니라, 해당 사회의 성별 격차를 측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 사회의 여성이 누리는 건강, 교육, 경제적 기회 등은 내전 상황인 르완다 여성의 그것보다 현격하게 높을 것이다. 그러나 GGI가 측정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격차다. 내전에 수많은 남성이 동원되면서 정치·경제 부문에 여성이 많이 진출한 르완다의 GGI가 한국보다 훨씬 높게 나온 이유다. 이에 대해 라루크 씨는 “경제발전 정도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에 상관없이” 사회적·제도적 상황에 따라 성평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 구조적 성차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적절한 지표는 성불평등지수(GII)가 아니라 성격차지수(GGI)가 맞다. 실제로 국민의힘이 GGI를 공격하면서도 대선 공약집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한국의 고위공직자 및 기업 임원 여성 비율 세계 134위(15.7%), 여성의 경제적 참여와 기회 부문 123위, 정치적 기회는 68위로 매우 낮음(세계경제포럼, 2021년 성격차 보고서).” 성별임금공시제 공약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장 본부장은 “정책본부의 실수인 것 같다”라고 답변했다.

기자명 김영화·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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