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17일 천정배 법무부 장관(왼쪽)이 퇴임하는 김종빈 검찰총장을 배웅하고 있다.ⓒ연합뉴스

2월14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사법 분야 공약을 발표했다. 윤 후보는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해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총장에게 예산 편성권을 부여하겠다”라고 말했다.

검찰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검찰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윤 후보는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두고 있는 나라는 독일하고 일본, 우리나라 세 나라뿐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받아왔다. 독일하고 일본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일본에서도 1950년대 (수사지휘권) 한 번 썼다.”

수사지휘권 조항 자체가 검찰 독립에 걸림돌일까? 한국·일본·독일 3개국만 이런 견제 장치가 있을까? 그의 말을 팩트체크했다.

윤 후보의 말대로 수사지휘권은 “일본에서 받아온” 제도가 맞다.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일본 사법체계가 이식되었다. 1949년 12월20일 제정된 검찰청법에 수사지휘권이 포함되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한다.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 1986년 검찰청법 개정 때 제14조에서 제8조로 바뀌었을 뿐 문구는 그대로다. 일본에서 “1950년대 (수사지휘권) 한 번 썼다”라는 윤 후보의 말도 맞다. 하지만 발동 당시 일본 검찰의 대응과 그 이후 더 이상 발동되지 않았는지 맥락을 살펴보면, 윤 후보의 문제의식과는 좀 다르다.

일본에서 법무장관(법무대신)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1954년 ‘조선의옥 사건(조선업계 관계자들이 정관계에 뇌물을 제공)’에서 이뤄졌다. 고리대금업자가 어음을 도난당했다며 도쿄 지검에 고소했다. 일본 검찰사에서 ‘특수 수사의 신’으로 불린 가와이 신타로 검사는 분실한 어음 3장에 주목한다. 선박회사인 야마시타 기선이 발행한 1000만 엔짜리 약속어음이었다. 그는 거액의 약속어음을 발행한 경위를 추적해 검은돈의 출처인 금맥을 찾아냈다. 해운회사가 조선회사에 선박 건조를 발주한 뒤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을 만들었다. 비자금은 정관계에 로비 자금으로 뿌려졌다.

1954년 1월 가와이 검사는 야마시타 기선 사장실을 압수수색했다. 사장 메모장에서 ‘S 200’ ‘I 300’ 기록을 확보했다. ‘S’와 ‘I’는 집권 여당 자유당의 거물 사토 에이사쿠(S) 간사장과 이케다 하야토(I) 정조회장을 뜻했다. 사토에게 200만 엔, 이케다에게 300만 엔 뇌물을 제공했다는 기록이다. 도쿄 지검 특수부는 두 사람을 체포하겠다며 법무성에 알렸다. 1954년 4월21일 이누카이 법무장관은 사토 도스케 검사총장(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사토 에이사쿠 체포 청구를 잠시 보류하고 임의수사를 계속하라.”

첫 수사지휘권 발동에 사토 검사총장은 “검찰청법 14조에 따라 검사총장에 대한 수사지휘는 전례가 없었던 법무장관 권한의 발동이다. 검찰이 수사를 계속함에 있어 상당한 곤란을 겪을 것이라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유감을 표명했지만 그는 수사지휘권 발동을 수용했다. 한국처럼 검찰총장이 사퇴하지도 않았다.

“수사지휘권 불복종은 허용되지 않는다”

더 주목할 대목이 있다. 이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가와이 신타로의 수사지휘권에 대한 일관된 입장이다. 그는 지금도 일본 법조계에서 ‘불세출의 특수통’ ‘귀신 검사’로 존경받는다. 가와이 검사는 은퇴하며 특수 수사 노하우를 담은 〈검찰독본〉(1979)을 펴냈다. 바로 이 책에 조선의옥 사건 당시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한 그의 입장이 자세히 적혀 있다(〈검찰독본〉은 2004년 법무부가 번역·발간했다. 한국 특수통 검사들 사이에서도 한때 특수 수사의 교과서로 통했다).

2020년 10월26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뒷모습)이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대법원, 감사원, 헌법재판소, 법제처 종합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는 1954년 수사지휘권 발동 당시 후배 검사들과 기자들에게 소신 발언을 했다. “검사가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이상 당리당략에 따른 지휘권 발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복종하지 않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지휘권 발동이 타당한지 여부는 주권자인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그가 이끄는 도쿄 지검 특수부는 수사 지휘를 수용하고 임의수사를 이어갔다. 1954년 7월30일 71명을 체포하고 34명을 기소하며 수사는 막을 내렸다.

야당은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문제 삼았다. 요시다 내각뿐 아니라 검찰에 공세를 이어갔다. 1954년 9월 사토 도스케 검사총장, 바바 요시쓰구 도쿄 지검 검사장, 가와이 신타로 주임검사 등이 국회에 불려나왔다. 야당 의원들은 가와이 신타로 검사를 향해 힐난성 질문을 퍼부었다. “증인은 수사지휘권 발동을 무시하고 사토 에이사쿠를 체포·기소한 후 사표를 제출하고 사직하면 되었는데 그런 용기도 없었는가. 그렇게 검사직에 연연하는가?” 가와이 검사는 이 질문에 의미심장한 답변을 한다. “지휘권이 발동된 이상 따라야 하고, 그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하여 따르지 않는다면 ‘검찰 파쇼’가 될 우려가 있다. 지휘권 발동에 대한 비판은 주권자인 국민이 하는 것이며, 규칙을 지키는 것을 근본으로 하는 우리 검사들이 할 바는 아니다.” 뼛속까지 검사였던 그가 오히려 검찰 권력의 민주적 통제 필요성을 언급하며 의원들을 설득했다.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한 야당의 반발로 1954년 12월7일 요시다 내각은 총사퇴했다. 조선의옥 사건은 정치권과 검찰에 교훈을 남겼다. 이 사건 이후 법무장관은 검사총장을 상대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 되었다. 수사지휘권 조항은 유지하면서 행사하지 않는 형태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근거로 남겨두었다. 검찰 안에서도 검사 퇴직 뒤 정치권 진출을 경원시하는 문화가 생겼다. 현재 일본 참의원 245명, 중의원 465명 가운데 검사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진보 성향 주간지 〈슈칸긴요비〉 문성희 편집장은 “현재 중의원 참의원 가운데 검사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변호사 출신은 많지만 한국 검사들처럼 정치권에 입문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총장’ 시대를 목도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공식적’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네 차례 이뤄졌다. 2005년 10월12일 천정배 장관, 2020년 7월2일과 10월19일 추미애 장관, 2021년 3월17일 박범계 장관이 각각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천정배 장관이 처음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2005년, 당시 대검 간부들은 조선의옥 사건을 연구했다. 김종빈 검찰총장 휘하 대검 참모들은 수사지휘권 발동 뒤 법무장관이 물러났듯이 한국에서도 천정배 장관 사퇴로 이어질 것으로 보았다. 가와이 검사의 고뇌는 읽지 않고 내각 붕괴라는 결과만 보고 오판한 것이다.

네 차례 수사지휘권 발동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검찰개혁에 나섰던 노무현(1회)·문재인(3회) 정부 때이고, 발동 당시 법무부 장관이 모두 비검사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법무부 장관-검찰총장 자리는 한결같이 검사들 차지였다. 이명박 정부 초기 이종찬 민정수석-김경한 법무부 장관-임채진 검찰총장으로 시작해, 박근혜 정부 마지막 최재경 민정수석-김현웅 법무부 장관-김수남 검찰총장까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이때는 수사지휘권이 공식 발동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사 선후배 사이 ‘묵시적으로’ 수사 지휘가 이뤄졌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2009년 6월 퇴임하며 “알려진 것보다 자주 법무부가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비공식적인 수사 지휘였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겪은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결과를 살펴보면, 오히려 수사지휘권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2020년 7월2일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채널A 사건에 대한 대검의 수사 지휘 권한을 배제시켰다. 이 수사지휘권 발동은 행정법원에서 사실상 정당성이 확인되었다.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의 윤석열 총장 징계처분 취소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윤 총장이 감찰을 방해하는 등 “공정한 직무 의무에 어긋났다”라고 판단했다. 2020년 10월 당시 윤석열 총장의 측근과 가족이 연루된 사건에 대한 총장의 지휘권을 배제시킨 수사지휘권 발동도 결과적으로 빛을 발했다. 봐주기 의혹이 불거진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6년 만에 기소되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이 수사 지휘로 그나마 수사가 진척되었다.

2009년 4월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46회 법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김경한 법무부 장관(왼쪽)과 임채진 검찰총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한국·일본·독일 세 나라에만 수사지휘권이 있다는 윤 후보의 발언과 달리, 다른 나라에도 수사지휘권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검찰에 대한 다양한 견제 장치가 있다. 프랑스는 법무부 장관이 검사·판사 등 사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며, 검찰총장·고등검사장·지방검사장은 물론 일반 검사들에 대한 구체적 지휘 감독권을 행사한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검찰권에 대한 견제 장치가 존재한다. 미국의 일부 주 검찰총장은 선출직이다.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예산권까지 검찰에 넘기겠다는 윤석열 후보의 공약을 보면, 결국 검찰의 민주적 통제 방안은 인사권만 남는다. 검찰총장 취임 직후 검찰 인사를 보면 그의 인사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을 쓰겠다”라는 윤 후보의 말과 달리, 2019년 7월 검찰인사 때 자신과 근무 인연이 있는 특수통을 대거 요직에 앉혔다. 이 인사에 대한 반발로 검사 67명이 사표를 냈다. 이때 사표를 낸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후보가 언론 인터뷰에서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벌써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가 당선되면 검찰발 사정 태풍이 몰아친 이명박 정부 초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그런데 수사지휘권까지 없애겠다는 공약을 보면 이보다 더할 수 있다. ‘대통령 총장’ 시대를 목도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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