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5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대선후보 등록이 시작된 2월13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카메라 앞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180석이 넘는 여권을 상대로, 대통령이 앞으로 2년 동안 개혁과 정치 안정을 동시에 이루기 위해서는, 압도적 대선 승리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안 후보는 이날 본인이 말한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야권 후보단일화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단순다수대표제 선거제도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후보단일화라는 비제도적 장치를 동원해왔다. 특히 양당 구도 바깥에 있던 안철수 후보는 매번 단일화의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단일화를 시작으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안철수 후보의 곁에는 항상 단일화 요구가 잇따랐다. 한 번도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단일화의 승자가 되어보지 못했기에 그는 더욱더 ‘양당 구도 철폐’를 정치적 목적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는 안 후보가 겪은 이전 선거와 구도가 다르다. 통상 후보단일화는 1위 후보를 추격하는 2·3위권 후보 사이에서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 1위일 경우 굳이 단일화를 하지 않아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안 후보가 2월13일 ‘압도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이번 단일화가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서 시도하는 단일화’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격차를 만들기 위한 단일화’는 상대인 윤석열 후보는 물론 유권자들에게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은 상승세다. 2월14~16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합동으로 조사한 NBS 전국 지표조사에 따르면, 각 후보들의 지지율은 윤석열 40%, 이재명 31%, 안철수 8%, 심상정 2%로 나타났다(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 남녀 1012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선거를 20일 앞둔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가 오차범위 이상 우세를 보인다는 것은 안 후보에게 결코 희망적인 뉴스가 아니다. 더욱이 한때 15%를 넘겼던 안 후보 본인의 지지율도 10%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단일화를 통해 얻는 이득이 커야 후보들이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긴다. 특히 박빙 구간은 단일화로 얻는 이득이 가장 크다. 가령 A·B·C 세 후보가 각각 40%·20%·10% 지지율을 확보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B 후보 입장에서 C 후보와의 단일화로 지지율이 5%포인트 상승될 것이라 예상된다면, 단일화의 효용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각 후보의 지지율이 38%·35%·10%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A와 B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3%포인트에 불과해 박빙 구도를 형성한다. 〈후보단일화 게임〉을 쓴 황두영 작가는 “후보단일화를 통한 지지율 상승이 이 ‘박빙 구간’을 지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후보들은 적극적으로 후보단일화를 추진한다”라고 설명한다. 단일화의 기대이익이 5%포인트로 같더라도 상황에 따라 후보들의 갈급함은 달라진다.

2월 둘째 주까지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 이내 박빙인 것으로 여겨졌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후보단일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2월3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들쭉날쭉한 여론조사 지지율만 믿고 자강론을 펼칠 만큼 여유로운 대선이 아니다”라며 후보단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 비해 열세에 놓인 풀뿌리 조직,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는 소극적 이재명 지지층의 존재, 정권교체 여론에 미치지 못하는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번 NBS 전국 지표조사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연이어 나올 경우,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으로서는 단일화 필요성이 점차 퇴색될 수밖에 없다. 당내에서 가장 강경하게 자강론을 주장하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안 후보가 단일화를 제안한 2월13일,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의 결단에 따른 (후보직) 포기와 (윤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이 아닌 이상 시너지가 날 수 없다. 향후 선거운동 경로를 보면 과연 국민의당이 예전부터 자력으로 완주할 생각으로 선거해왔는지, 어느 순간 (단일화 같은) 정치공학에 의존해서 선거를 치르려고 했는지가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강도 높은 비난이다. 이 대표는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이 애초에 완주할 계획이 없었다고 본 것이다.

‘단일화’ 바라보는 민주당 심경도 복잡

윤석열 후보는 줄곧 후보 간 만남과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단일화가 가능하다는 원론을 내세우고 있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단일화 과정이 이슈를 잠식하는 일이다. 2월15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윤석열 후보는 여권을 향해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정권교체 정서를 자극하며 본인 존재감을 높여야 하는 시점에 정략적인 협상 과정이 노출되면 단일화를 통한 시너지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선거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상대적으로 급박하게 후보 간 단일화가 진행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와 비교해보자. 선거일(2002년 12월19일)을 47일 앞둔 11월3일,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에게 국민경선 방식 후보단일화를 제안하고, 11월24일 새벽, 노무현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되었다.

이번 대선은 2002년 당시보다 더 급박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투표용지가 인쇄되는 2월28일을 ‘데드라인’으로 여긴다. 2002년과 같은 협상과 여론조사가 이뤄지기에는 일정이 빠듯하다. 단일화 승부에서 패배한 사람에게 어떤 보상을 지급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보상의 크기는 ‘단일화로 획득하게 되는 지지율의 크기’와 ‘그 지지율이 승패에 영향을 얼마나 미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안철수 후보가 가져올 수 있는 지지율이 작고, 이미 이재명 후보와 격차를 벌렸다고 판단한다면 보상의 규모도 작아진다. 안 후보가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지지부진한 야권 단일화를 바라보는 민주당의 심경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이재명 후보는 2월15일 “국민내각, 통합정부를 통해 대한민국의 모든 지혜와 역량이 오로지 국가 발전과 우리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쓰이게 하겠다”라고 주장했다. 향후 ‘통합정부’에서 안 후보의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단일화 국면에서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단지 안철수 후보가 대선을 완주하기를 바라며 달래는 모양새다. 2월16일, 이재명 후보가 불의의 사고로 숨진 국민의당 선거운동원 빈소를 홀로 찾은 것도 이 같은 ‘달래기’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안 후보는 2월17일까지 자신은 제안을 마쳤고, 국민의힘 측 답을 기다리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 후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여론조사 경선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안 후보 개인의 선택이 남은 대선의 구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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