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새해 결심 같은 건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절치부심 끝에 올해는 성공적으로 아무런 계획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이른바 ‘비거뉴어리 캠페인’이라는 것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거뉴어리란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vegan)과 1월(january)의 합성어로서, 결심하기 좋은 1월 한 달만이라도 채식을 실천해보자는 제안이다. 지난 연말 친구에게서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별 고민 없이 나도 동참하겠다고 했다. 채식이라면 드물게 내가 좀 자신 있는 종목이었던 것이다. 이미 나는 만 12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고, 그동안 고기가 먹고 싶다고 느꼈던 적도 내 기억으론 아마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완전 채식만 했던 건 아니고 달걀과 유제품, 해산물은 먹는 초중급 단계 정도의 채식 생활을 유지해왔는데 채식주의의 세계에선 이걸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라고 부른다. 최근 1~2년 동안은 그보다 좀 더 나아가려고 노력했던 터라 이참에 적어도 한 달 동안은 완전 채식을 해보기로 했다.
왜 하필 채식이냐. 12년 전 처음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던 건 아무래도 개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경험이 쌓여가고 있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내게 개는 친구이자 가족인데, 누군가 그들을 먹는다는 게 점점 견디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보기에 개는 소나 돼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동물이었다. 개를 그들에게서 어떻게든 구별해내려고 애쓰기보다는 소와 돼지도 함께 구원받기를 원했다. 사람들에게 개를 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려면 소나 돼지, 나아가 닭이나 오리에 대해서도 입장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채식주의가 단지 동물에 대한 연민뿐만 아니라 식량자원 배분이나 기후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보다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완전 채식을 유지하는 건 만만찮은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빵이나 케이크 따위를 먹을 수 없다. 아침에 카페라테를 한잔할 수도 없고 저녁에 와인을 홀짝일 때 치즈 몇 조각을 곁들일 수도 없다. 입에 맞는 채식 라면은 잘 나와 있지만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채식 김치 구하기가 쉽지 않다. 밥 먹고 나서 디저트로 달콤한 아이스크림 세 숟가락만 먹고 싶은데 동네 편의점 사장님은 비건 아이스크림 같은 건 갖다놓지 않겠다고 결심하신 것처럼 보인다.
집안싸움 벌어지는 설이 다가온다
불완전하나마 내가 십여 년간 그럭저럭 채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주로 혼자 일하며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그 안에 채식을 하는 사람이 끼어 있으면 메뉴 선택에 크게 영향을 주게 마련인데, 많은 채식 지향인들이 그렇게 고민의 중심에 놓이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하는 걸로 알고 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비건 햄버거를 팔 만큼 채식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때로는 힐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당장 떠오르는 건 설날이 다가온다는 점이다. 작년이었을까 재작년이었을까, 나의 채식 생활에 대해 집요하게 의구심을 제기하는 친척 어른과 참다못해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논쟁은 뜻밖에도 그가 어린아이처럼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명절이란 으레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날이려니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른을 울리다니 후회막심이었다. 아이를 울리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인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하여튼 올해 설에는 누구도 울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면, 이것도 새해 결심으로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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