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개혁은 시대적 화두이다. ‘언론이 문제’라는 생각은 2020년대 대한민국에만 퍼진 생각이 아니다. ‘가짜뉴스’라는 말을 유행시킨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문제의식의 방향은 다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언론 개혁을 당면한 과제로 꼽는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편향’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불편부당해야 할 언론매체가 한쪽에 치우친 보도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적지 않은 가짜뉴스가 ‘과실’이 아니라고 본다. 모종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퍼뜨린다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일보〉가 민주당에 우호적인 ‘오보’를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국 언론인 맷 타이비는 언론이 갈수록 편향되는 궁극적 이유를 파고든다. 그가 보기에 언론매체의 편향은 전략이다. 이는 매체나 기자의 세계관과 그다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보수적인 사회를 선호하기 때문에 국민의힘에 우호적 보도를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팬을 끌어 모아 충성도 높은 구독자로 흡수하는 게 모든 매체의 목표가 됐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특정 세계관을 퍼뜨리는 게 목표라면, 언론은 겉으로나마 중립을 자처하는 게 더 좋은 전략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매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쪽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더러는 과시한다. 이러한 자세는 최근 불거진 현상이다.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기 위해 저자는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전통적 앵커를 상기시킨다. 부드럽지만 건조한 어조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뉴스 △△△입니다”라고 입을 떼는 모습이다. 주요 일간지 역시 (최소한 겉으로는) 중립적 문장을 주로 사용했다. 과거의 언론인들이 특별히 ‘언론 윤리’에 충실한 사람들이어서 이런 태도를 취했던 건 아니라고 책은 적는다. 객관성도 전략이다. 최대한 많은 독자와 시청자를 붙잡는 데에 이쪽이 효과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고정관념을 바꾼 것은 루퍼트 머독이었다. 폭스뉴스의 시사 프로그램은 신랄하고 독선적인 스타일로 분노한 시청자들을 끌어모았다. ‘보수’만 변화를 꾀한 건 아니었다. CNN과 MSNBC 등도 중립의 틀을 벗기 시작했다.

책은 언론이 비즈니스라는 점을 강조한다. 중립은 ‘거실 TV 뉴스’의 전략이었고, 편향은 스마트폰 시대의 처세일 따름이다. 팬덤을 만들기 위해 매체는 외부의 적을 만든다. 자극적 소재로 분노를 일으켜 내일도 뉴스를 구독하게 만드는 게 이들의 상술이다. 이 판매 방식은 공익에 해롭다. 사람들의 눈먼 분노를 자극하는 소재가 언제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의제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진짜 문제 대신 소모적 논쟁만 유발한다. 그래서 타이비는 “증오는 무지의 파트너”라고 쓴다. 트럼프 시대를 낳은 것은 일군의 백인우월주의자가 아니라, 양극에 만연한 증오였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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