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유전학자 니콜라이 벨랴에프는 1930년대 비밀경찰에 체포돼 재판 없이 처형당했다. 적자생존 법칙이 공산당의 노선을 거스른다고 본 스탈린은 유전학자를 증오했다. 니콜라이의 동생 드미트리 역시 유전학자였지만 목숨을 부지했다. 그는 수도 모스크바를 떠나 시베리아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여우를 키웠다.

모피를 얻기 위한 여우 사육은 러시아 경제에 중요한 사업이었다. 공산당의 감시망을 따돌리고 20세기 행동유전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실험을 수행하기에 여우만 한 동물도 없었다. 드미트리는 여우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기준은 단 한 가지였다. 친화력. 연구팀은 어린 여우들과 접촉을 시도해, 다가오거나 겁먹지 않는 여우를 선별해 짝짓기를 시켰다.

진화인류학자인 저자가 시베리아를 찾았을 때는 이 실험이 시작된 지 44년이 지났을 때였다. 드미트리는 세상을 떠나고 그의 제자 류드밀라가 실험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장면이 나오는 66쪽을 읽으면서 나는 이 306쪽짜리 책(감수의 글·참고문헌 제외)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40년 넘게 이어지는 실험이라니. 40년 넘게 이어지는 실험을 통해 알아낸 인간의 비밀이라니.

친화력을 기준으로 짝짓기를 한 여우들은 대를 거듭할수록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그야말로 친화력 ‘갑’이 되어서 강아지처럼 ‘댕댕거리’는 건 물론이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털색이 바뀌고 얼룩이 나타났으며 주둥이가 짧고 이빨이 작아지는 외양 변화가 생겼다. 번식 기간이 길어졌고, 새끼 시절 사회화 기간도 늘어났다. 무엇보다도 이 ‘다정한’ 여우들은 사람 아기가 가진 ‘마음이론 능력’ 테스트를 통과했다.

저자들은 40년 사이 여우에게 생긴 ‘가축화’ 과정을 대입해 인류 진화 과정을 역추적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유일한 사람 종이 아니다. 석기를 능숙하게 사용한 ‘호모 에렉투스’가 있었고, 사냥 기술이 뛰어났던 ‘네안데르탈인’도 있었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 종이 되었다. 저자들은 그 이유를 ‘친화력’에서 출발한 ‘사회적 인지능력’과 ‘협력적 의사소통’에서 찾는다.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대목도 간혹 있다. 평화 시위와 폭력 시위의 성공률을 비교하며 평화 시위가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대목 등이 그렇다. 저자들은 좀 더 쉽게 읽히는 책이 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다른 관점이나 상충하는 데이터 전부를 부각시키지는 않았다고 인정한다. 대신 궁금한 이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충실한 참고문헌 목록을 실었다. 어느 정도 비판적인 독서가 필요하지만, 아무렴 이런 문장에는 가슴이 뛸 수밖에 없다.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사상이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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