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7일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LG 트윈스 선수들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야구단 LG 트윈스는 올해도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서울 라이벌 두산 베어스에 1승 2패로 탈락했다. LG는 정규시즌에서 3위를 차지하며 4위 두산을 4경기 차로 앞섰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다. LG의 실패는 빈약한 타선 탓이 컸다. 10개 구단 최소 실점(561) 팀이었지만 득점(654)이 8위에 그쳤다.

실패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로 무승부를 꼽을 수 있다. LG는 ‘역대급’ 순위 싸움 속에 정규시즌을 1위와 1.5게임 차 3위로 마쳤다. 10월17일 잠실 키움전부터 15경기에서 겨우 4승을 거두는 부진을 겪었다. 이 가운데 무승부가 무려 다섯 번이었다. 올 시즌 LG는 무승부 14회로 리그 최다를 기록했다. 연장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은 불펜. LG는 올 시즌 구원 평균자책점 리그 1위(3.28)를 달린 팀이다. 연장전 경기 몇 번이 승리로 바뀌었다면 한국시리즈 직행도 가능했을 것이다.

LG의 무승부 14회는 모두 후반기에 나왔다. 후반기에는 무승부 규정이 달라진 영향이 그대로 나타났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7월27일, 닷새 뒤로 다가온 후반기 개막을 앞두고 9이닝까지 스코어가 같을 경우 종전처럼 연장전을 치르지 않고 무승부로 처리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전반기까지는 12이닝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했을 경우에만 무승부가 선언됐다.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사태에 따른 전반기 일정 조기 중단과 도쿄 올림픽 휴식기로 후반기 일정 소화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무승부가 양산됐다. 전반기 385경기에서 무승부는 딱 세 번 나왔다. 반면 후반기 335경기에선 무려 47회였다. 무승부가 늘어난 건 당연한 결과다. 이전이라면 연장전으로 갔을 경기가 무승부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승부가 크게 늘어났다는 데 있다.

전반기에 연장전, 즉 정규 9이닝까지 동점인 경기 비율은 전체의 6.8%였다. 하지만 후반기 9회까지 동점인 경기 비율은 14.0%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전 시즌과 비교해서도 크게 늘었다. KT 위즈의 창단으로 10개 구단 체제로 운영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시즌 동안 정규시즌 연장전 비율은 7.2~8.5%, 지난해엔 8.1%였다.

예견할 수 있는 결과였다. 선례가 있었다. KBO가 후반기에 적용한, 연장전 없는 무승부 규정은 올해 일본 프로야구(NPB)의 규칙 변경을 따랐다. NPB는 코로나19 방역 문제로 올해 개막전부터 연장전을 폐지했다. 2020시즌 12개 구단의 연장전 비율은 8.3%였지만 올해 무승부, 즉 9회까지 동점 경기는 11.9%로 크게 늘었다. KBO리그와 마찬가지로 지명타자제를 택하는 퍼시픽리그의 경우 7.2%에서 12.9%로 1.79배 증가했다.

규칙이 달라지면 팀이라는 행위자는 그에 맞게 대응 방식을 바꾼다. 야구 감독과 선수들의 목표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다. 여기에 ‘지지 않는 경기’라는 옵션이 추가됐다. 올 시즌 후반기엔 뒤지고 있는 경기 중반이나 후반에 A급 구원투수를 투입하는 경우가 예년보다 늘었다.

이기는 팀도 리드를 지키는 필승조 투수를 더 자주 가동했다. 이를 보여주는 수치는 ‘홀드’ 증가다. 홀드는 마무리 투수의 세이브와 비슷한 개념으로 경기를 끝내지 않고도 팀의 리드를 유지한 중간계투 요원에게 주어진다. 올 시즌 리그 전체 홀드는 720개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불펜 비중이 높아진 만큼 선발투수 중요도는 떨어졌다. 10개 구단 선발투수들은 평균 5.06이닝만 소화했다. 2015년 이후 최저 수치다. 그만큼 불펜투수가 혹사당하기 쉬운 환경이었다. 전반기 리그 평균자책점은 4.61로 타고 양상이었다. 반면 후반기엔 4.27로 투고에 가까웠다. 역시 유능한 불펜투수가 더 많이, 자주 투입됐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승부 증가는 ‘공급자 마인드’의 결과

LG처럼 무승부가 많은 팀은 바뀐 규정에 불만을 품을 수 있지만 리그 전체로 볼 때는 제로섬이다. 이른바 ‘버리는 경기’가 줄어들고 경기 후반 승부가 타이트해진 점도 있다. 9이닝 기준 경기 시간은 전반기 3시간16분에서 후반기 3시간12분으로 오히려 줄었다.

하지만 잦은 무승부가 야구팬의 흥미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야구팬이 가장 바라는 건 응원하는 팀의 승리다. 통계적으로 무승부는 대체로 0.5승만큼의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응원하는 팀이 무승부에 그쳤을 때 만족도를 승리 때의 절반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은 긴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승리는 이 서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KBO의 결정은 팬이 가장 사랑하는 승리의 총량을 제도적으로 줄여버린 셈이다.

프로야구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 4사는 지난 10월 KBO를 상대로 손해배상 요청 공문을 보냈다. 방송사가 내세운 이유 중 하나가 ‘무승부 속출’이었다. 천병혁 연합뉴스 기자는 “한참 흥이 올랐는데 경기가 끝나버린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그냥 비기는 경기가 된다. 이렇게 뒷맛 찜찜한 프로 경기가 있을까”라고 KBO를 비판했다.

KBO는 2008년에 한시적으로 무승부 없는 무제한 연장전 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다. 야구팬의 관심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올해 후반기 연장전 폐지는 정확하게 그 반대 취지를 갖고 있다. ‘일정 소화’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전형적인 ‘공급자 마인드’였다. 연장전으로 인한 부담을 우려했다면, 국제 대회와 지난해부터 메이저리그가 적용한 승부치기라는 대안도 있었다. 7월 일부 선수 방역수칙 위반 사건 때 KBO가 리그 중단을 결정했던 것도 역시 팬보다는 구단 사정을 우선한 행태다. 메이저리그와 NPB는 올해 여러 차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해당 팀을 제외한 경기 일정은 그대로 소화했다. 스케줄은 팬과의 약속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구단과 협회가 존중하지 않는 리그를 팬이 존중해야 할 이유는 없다.

기자명 최민규(한국야구학회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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