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은행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어쩔 줄 몰라하는 목소리였다. “저… 그… 고객님, 지난달에 신청하셔서 통과되었던 전세자금대출이, 은행 전체 한도가 차서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사 날짜는 18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은행 직원은 다른 은행 대출을 알아보라고 권유했다. 신용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그 은행의 정책이 바뀌었으니 그렇다는 통보다.

은행권에서 전세자금대출을 줄이려 한다는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대출 승인이 이미 난 사람을 내쫓겠냐 싶었다. 2021년 4월 말 전 금융권의 전세자금대출 총액은 약 170조원으로 추산된다. 2017년 말 66조원에 불과했던 전체 전세자금대출 규모가 3배 가까이 늘었으니 당장 은행마다 대출 줄이기가 뒤따르고 있다. 시스템상 조절 규모를 결정하고 일종의 ‘커트라인’을 설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은행에 있다.

전세자금대출 잔고가 이렇게 늘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집값 상승분이 이전되었기 때문이다. 집값에는 그 가격을 구성하는 ‘지층’이 존재한다. 임대차보호법은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의 주거권은 보장해주지만, 새로운 세입자는 전보다 비싼 가격으로 전세를 구할 수밖에 없다.

전세가 오르면 그만큼 대출받는 금액도 늘어난다. 지층의 최 하단부는 점점 크기가 늘어난다. 두꺼워진 지층일수록 이자 부담도 크다. 대다수 전세자금대출은 변동금리가 적용된다. “금리가 올라야 집값도 잡히고 ‘영끌’도 막는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금리가 오르는 만큼 세입자가 내는 이자도 늘어난다.

서울에 거주하는 정규직 30대 남성인 나는 적금을 깨든 다른 대출을 알아보든,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해결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경기도에 거주하는 한 비정규직 취재원의 하소연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전세 재계약을 하고 싶은데, 이번에 바뀐 집주인이 들어와서 살 거라 합니다. 그런데 주변 전셋값이 죄다 1억원 넘게 올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버팀목으로 해결되는 금액이 아니에요.” 정책금융인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은 임차보증금 3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만, 최대 1억2000만원(미혼인 경우)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집값이 오르는 동안 이 기준은 변동이 없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