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강원도 정선 사북 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초상.

요즘 오래된 필름을 정리 중이다. 정확히 직업 사진가가 됐던 1992년부터 서른 살이던 1996년까지다. 아무래도 젊은 시절이라서 뚜벅이로 어찌나 바쁘게 돌아다녔는지 필름이 수천 롤에 이른다. 오래전 사진들이라 지금 당장 급할 것은 없으므로, 코로나19 시대에 참으로 적당한 일감을 찾은 듯하다. 삼십 년 가까이 된 내 필름을 보는 감상은 ‘남의 것을 보는 느낌’이다. 기억도 잘 안 나고 지금과 스타일도 많이 달라 정말 남의 필름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내 것’이라는 감정 따위 없이 천천히 감상하고 쓸 만한 것을 아카이브 삼아 스캔한다.

“이 사진들을 찍던 때로부터 서른 해쯤 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 기간에 우리나라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갈등과 혼란과 불화는, 그 바뀜보다는 바뀌는 속도가 야기한 문제들임이 분명하다.” 나의 말이 아니다. 사진가 강운구 선생이 2001년 〈마을 삼부작〉이란 전시회를 열며 서문으로 쓴 첫 문장이다.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마치 세대를 거쳐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 강 선생은 “사진은 언제나 현재를 찍는다지만, 어떤 것이든 저장하려고 필름에 영상을 비추는 순간에 과거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슬픈 사진’이라고도 한다”라고 썼다. 이 ‘슬픈 사진’들은 묘하게도 ‘아주 좋은 사진’이기도 했다. 당시 그의 전시회는 장안의 화제였다. “한 세대를 묵혀 비로소 세상에 나온 사진치고 좋지 않은 사진은 없다”라고 전시회 뒤풀이에서 귀띔하신 적이 있다. 왜 그럴까? 사진이 홍어도 아닌데 말이다.

사진 역시 오래된 것보다 새것이 선호되게 마련이다. 최신의 정보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품질도 낡은 것보다는 광택이 나는 새 인화지가 좋아 보인다. 그런데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옛 사진을 통해 전에는 몰랐던 정보와 정보 사이에 존재할 것 같은 감정을 발견해낸다. 이런 느낌에 ‘푼크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찌름’이란 의미다. 바르트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에서 가슴이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새 사진은 대체로 세상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오래된 사진은 거꾸로 독자들이 사진 속에서 작가가 미처 해석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이에 의미를 부여한다.

화석 같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나의 옛 필름 더미에서 발견한 강원도 정선의 사북 탄광 사진이 바로 그랬다. 당시 내가 이곳에 간 것은 그 지역이 진보적인 정치인을 자신의 대의자로 뽑았기 때문이다. 탄광 노동자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나의 라이트박스 위에 올려진 필름에서 일부는 당시에 잘려 나갔다. 잘라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남은 필름들은 당시 선택받지 못하고 28년 동안 묵힌 것이다.

지금은 독자로서 그 사진을 보는 나는 당시 해석하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할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사진은 소멸할 때까지 그런 재해석을 제시하거나 요구받을 것이다. 그래서 강운구 선생은 다음과 같이 글을 끝맺는다. “사진은 슬프지 않다. 다만 사진에 화석 같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것들이 슬플 따름이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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