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드라마 〈좋좋소〉의 조충범. 면접 자리에서 얼떨결에 랩까지 하게 된다.

조충범. 29세. 지방에 있는 4년제 대학 영어과 졸업. 제대 후 친구와 함께 반지하에 살며 이곳저곳에 취업 서류를 내보지만 번번이 떨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여기 정승네트워크인데요, 혹시 지금 면접 가능하실까요?”

이 드라마에서 정승네트워크의 직원인 ‘이 과장’의 이 한마디에 댓글이 쏟아진다. 누군가는 팁을 공유한다. ‘회사에서 사람 뽑는다고 전화 돌리라고 하면 난 꼭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넘어서 전화한다. 여기는 지옥이니 오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인데 알아듣는 사람 절반, 모르고 면접까지 오는 사람 절반 ㅠ.’ 해당 댓글의 ‘좋아요’만 1300여 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조충범은 회사 문을 두드린다. 얼굴만 빼꼼 내민 사장 조카 ‘정 이사’가 되묻는다. “면접? 오늘 면접 있었나?” 다시 댓글이 쏟아진다. ‘면접 보러 왔는데 부른 사람 빼고 다른 직원 하나도 모르는 거 정말 리얼. 문 열어준 사람 어리둥절, 면접자 어리둥절, 사장 어리둥절, 어리둥절 파티임ㅋㅋㅋ.’

뒤늦게 나타나 이력서를 훑어보던 ‘정 사장’의 시선이 멈춘다. “우리 충범씨는 취미가 노래라고 돼 있네? 그러면 우리가 노래를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조충범이 당황해하자 정 사장은 옆에 앉은 이 과장을 향해 중얼거린다. “내가 좀 무리한 거 시킨 건가?” 황급히 일어난 이 과장은 일회용 종이컵에 일회용 숟가락을 꽂는다. 얼떨결에 ‘마이크’를 쥐고 랩까지 하게 된 조충범. 정 사장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한다. “오케이, 합격.”

지난 1월6일 웹드라마 〈좋좋소〉 첫 화 ‘좋소기업 면접 특(징)’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직원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중소기업을 비꼬는 단어 ‘좆소기업’을 한 번 더 비튼 ‘좋소기업’ 이야기에 사람들은 ‘이건 하이퍼리얼리즘’ ‘누가 우리 회사 CCTV 훔쳐갔냐’라며 호응했다. 공감대를 얻은 〈좋좋소〉는 2주 만에 유튜브에서 100만 뷰를 돌파했다. 평균 10분 내외인 각 에피소드는 모두 최소 100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3월9일부터는 ‘왓챠’에서 분량이 1~2분 더 늘어난 확장판을 볼 수 있게 됐다. 영상이 올라오는 시점도 유튜브보다 하루 빠르다. 왓챠 관계자는 〈시사IN〉과 통화에서 “유튜브 반응을 보고 우리가 먼저 제작비 전액투자와 협력을 제안했다”라고 말했다. 미리 분량과 내용을 어느 정도 짜놓는 기존 드라마 제작 방식과는 달리, 〈좋좋소〉는 구독자들의 반응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점차 이야기와 규모를 키워나갔다. 공중파가 다루기에는 너무 현실적이기에 유튜브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 드라마에 긴장감을 주는’ 웹드라마라는 댓글도 눈에 띈다.

유튜브에서 〈좋좋소〉가 올라오는 계정은 ‘이과장’이다. 37만명이 구독하는 채널이다. 2018년 12월 그가 올린 첫 영상의 제목은 ‘직장생활 6년 차 상사 뒷담화, 안 걸리겠지? 쉿 비밀’이었다. 열흘 만에 10만 뷰가 나왔다.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구독자들에게 사연을 받아 대신 읽어주는 콘텐츠에는 ‘우리 같은 99프로의 대변자 이과장이 잘돼야 한다’ ‘현장에 있었던 분들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해야지’ 등의 응원부터 ‘이런데도 눈 낮춰서 (중소기업) 가라는 꼰대들한테 이 영상 보여주고 싶다. 괜히 공무원 시험이 열풍이겠나’라는 울분까지 터져 나왔다.

유튜브 시작 4개월 만에 ‘거래처(이과장이 구독자를 부르는 애칭)’ 3만명이 모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유튜버가 된 이과장은 아내와 에버랜드에 놀러 가는 일상부터 ‘강소기업’을 찾아가는 영상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찍었다. 웹드라마 〈좋좋소〉에 실제 ‘이 과장’ 역으로 등장한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지만 서글프다. “이건 연기가 아니라 재연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 조충범을 비롯한 몇몇을 제외하면 〈좋좋소〉 출연자는 모두 유튜버다. 배우가 아닌데도 연기가 자연스럽다는 게 구독자들의 평가다.

〈좋좋소〉에 달린 댓글들. 구독자의 안타까움, 분노 등의 공감이 이루어진다.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변해야 한다’는 거다”

〈좋좋소〉 감독이 중소기업에서 일해본 1987년생 여행 유튜버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감독 ‘빠니보틀’은 2019년 1월부터 39개국을 돌며 여행 영상을 올렸다. 구독자 수 62만명에 달하는 여행 유튜버가 갑자기 중소기업을 저격하는 드라마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잡플래닛이 운영하는 매체 〈컴퍼니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국내에 발이 묶이게 되면서 친구랑 술 한잔하다가 나온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드라마 〈미생〉의 팬이라는 그는 “따져보면 대기업 다니는 사람은 많이 없지 않나. 나부터도 중소기업에 발을 담근 경험이 있다. ‘진짜 현실 이야기로 가려면 예닐곱 명 다니는 현실 중소기업 드라마가 재밌을 것 같은데, 왜 없지?’ 하는 생각을 해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소기업은 663만9000여 개로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한다. 중소기업은 소상공인(업종별 상시 노동자 10명 미만인 곳으로 전체 93.3%)과 소기업(업종별 평균 매출액 최대 120억원 이하인 곳으로 전체 5.1%), 그리고 중기업(업종별 평균 매출액 최대 1500억원 이하인 곳으로 전체 1.5%)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중소기업 종사자는 1710만4000여 명, 전체 노동자의 83.1%다.

〈좋좋소〉가 흥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10명 중 2명만 갈 수 있는(16.9%) 대기업이 아니라 나머지 8명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중소기업 풍경을 밀도 높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구독자들이 입을 모아 “〈미생〉이 드라마라면 〈좋좋소〉는 다큐다”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주인공이 잘 빠진 정장을 입는 대신 회사 이름이 박힌 낚시 조끼를 걸치고 다니는 현실판 오피스 드라마다. 감독을 맡은 1987년생 빠니보틀도, 시나리오 뼈대를 세운 1992년생 곽튜브도, 디테일한 살을 붙인 1985년생 이과장도 모두 중소기업에 다닌 경험이 있는 터라 드라마는 ‘리얼’할 수밖에 없다. ‘엑셀 정품 인증 안 된 거 봐라’ ‘퇴사자 명패 안 치우는 건 국룰(국민 룰)인가’ 등 저마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댓글이 달린다. 경비업체를 고용하는 대신 경비견을 들인다는, 다소 과해 보이는 설정도 ‘좋소기업의 징후’다. 중소기업을 다니며 매일 아침 경비견 사료를 챙겨본 경험이 있는 구독자들은 ‘캡스 대신 갭스’라며 자조 섞인 댓글을 단다.

가상의 중소기업 정승네트워크에서 각종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동안 구독자들은 공감하기도, 안타까워하기도, 욕을 하기도 한다. 스펙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사자를 탓하는 댓글도 꽤 달린다. ‘공부 안 하는 고등학생들한테 백날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 드라마를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등의 반응이다.

하지만 감독 빠니보틀은 과거 인터뷰에서 그런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찍은 드라마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단순하게 보면 그럴 수 있지만, 제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변해야 한다’는 거다. 80% 이상이 중소기업에 다닌다는데 ‘중소기업 안 좋으니 가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니까 직장 문화를 이야기하는 거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중소기업도 갈 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는 이 드라마의 목적은 현실을 희화화하는 게 아니라 뒤틀린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좋소〉는 일종의 ‘백신’이라고 생각한다. 백신처럼 사람들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놓으면 좋지 않은 문화들이 조금씩 바뀌리라 생각한다.” 4월14일 〈좋좋소〉 마지막 화가 공개됐다. 원래 15부작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지만 감독은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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