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의 ‘역사왜곡’ 항의로 2회 만에 막을 내린 드라마 〈조선구마사〉. ⓒSBS 화면 갈무리

드라마판에 ‘중국 경계령’이 떨어졌다. 중국 상품의 간접광고(PPL) 논란으로 시작해 중국을 염두에 둔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방영 중인 드라마뿐만 아니라 방영이 예정된 작품, 종영한 작품까지 입길에 오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중국 자본이 들어간 드라마 목록이 돌고 있다. 한복·김치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중국에 대한 반감이 고조된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PPL 문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까지 방영한 tvN 드라마 〈여신강림〉에서 터졌다. 한국이 배경인 드라마에서 너무 많은 중국 제품이 등장한 것. 작품 속 중국 제품은 유달리 튀었다.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중국어 광고 표지나 ‘인스턴트 훠궈’를 먹는 장면 따위가 연이어 등장했다. 광고 상품 가운데에는 한국에 공식 수입되지 않은 중국 내수용 상품도 다수였다. 한국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광고였던 셈이다. 지난 2월부터 tvN에서 방영 중인 〈빈센조〉도 비슷한 논란을 불렀다. 작중 캐릭터가 레토르트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문제의 비빔밥이 중국 제품이었다. ‘한국식 김치돌솥비빔밥’이라는 이름의 이 제품은 최근 온라인에서 벌어진 김치 종주국 논쟁과 뒤엉켰다. 중국산 PPL이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것’을 넘어 ‘한국 문화에 대한 공격’이라고 여기게 된 이들이 늘었다. 3월 중순의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3월22일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방영됐다. 본래 16부작으로 편성되었지만 단 2회 만에 막을 내렸다. ‘역사왜곡’이라는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판타지 요소를 가미했다. 나라에 등장한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구마 의식을 행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를 비판하는 이들은 주로 조선왕실, 특히 세종대왕에 대한 비하를 문제 삼는다. 충녕대군(즉위 전 세종대왕)이 서역에서 온 사제를 직접 대접하고, 자신의 6대조에 대해 ‘기생 때문에 야반도주하셨던 분’이라고 비하하는 등의 장면이 악의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태종이 환상에 홀려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면도 비판받는다.

‘조선 비하’에 특정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받는 까닭은 중국풍 소품들 때문이다. 충녕대군이 사제와 중국식 가옥에서 만나 월병과 피단(삭힌 달걀), 중국식 만두 따위를 먹는 부분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제의 장소가 하필 조선 ‘기생집’이라는 대목에 분개하는 이들도 있다. 왕자가 중국식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나 붉은색으로 장식된 궁궐도 이러한 의심을 자극했다.

〈조선구마사〉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일부 드라마광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2회째가 방영된 3월24일 드라마 방영 중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됐다. 청원인은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받아들이는 듯한 내용”이라고 썼다. 이틀 만에 2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날 SBS는 편성 취소를 알렸고 해외 판권 계약도 해지됐다. 드라마 소품이나 서사가 역사적 고증과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일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는다. 애초 ‘악령’이 등장하는 퓨전 사극에 조선 역사와 정합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드라마가 건드린 역린은 역사 변주 자체가 아니라 그 방향이다. 중국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중국 자본이 의도적으로 조선사를 ‘왜곡’하고, 최종적으로 대한민국을 폄훼하려 한다는 반발심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 있다.

그런데 ‘왜곡의 주체가 중국 자본’이라는 전제가 사실인지조차 불분명하다. SBS는 중국 기업의 PPL이 들어간 여타 작품과 달리 “〈조선구마사〉는 100%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 드라마의 박계옥 작가가 최근 중국 제작사 자핑픽처스와 계약을 맺었다며 ‘특수관계’를 의심했다. 이 회사 임원이 중국 〈인민일보〉 관계자인 점을 들어 ‘중국 정부→〈인민일보〉→자핑픽처스→박계옥’이라는 연결고리를 의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계옥씨는 자핑픽처스의 소속 작가가 아니다. 드라마 한 편의 집필을 계약했을 뿐이다. “박계옥 작가가 조선족이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 중국 쪽에서 운영하는 ‘팀’이다”라는 의혹도 나왔지만 사실과 달랐다.

ⓒtvN 화면 갈무리
중국 제품 PPL이 문제가 된 드라마 〈여신강림〉(맨 위)과 〈빈센조〉(위). ⓒtvN 화면 갈무리

드라마는 이데올로기의 선전 도구

드라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선구마사〉가 중국 자본이나 정부의 사주를 받은 ‘역사왜곡 프로젝트’로 기획됐다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무리’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드라마가 눈치를 보는 대상이 중국 정부나 자본이 아니라 시청자라고 본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국 시장이 친근감을 가질 만한 요소를 배치한다는 것이다. 중국 시청자를 주된 타깃으로 삼다 보니 조선 사극에 중국식 식사나 복식, 인테리어가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는 게 이 관계자 이야기다. 그는 중국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드라마가 연이어 제작되다 보니 한국 시청자들의 반감이 고조됐고, 〈조선구마사〉에서 폭발했다고 본다.

2000년 이후 국내 드라마 시청률은 꾸준히 하락했다. 2010년대부터 업계의 희망으로 떠오른 게 중국이었다. 2013년 〈상속자들〉과 2014년 〈별에서 온 그대〉를 기점으로 한국 드라마는 중국의 대중적 취미가 됐다. 특히 〈별에서 온 그대〉는 작중 등장하는 상품 판매나 촬영지 관광을 통해 경제효과로 수천억 원을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 기업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시청자를 겨냥한 PPL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를 고용하고 해외 판권을 사들였다.

드라마는 ‘한한령(사드 배치 이후 중국이 한류 콘텐츠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조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온라인 유통 때문이다. TV 방영이 금지되거나 제한되더라도 아이치이, 소후, 텐센트 등 동영상 사이트에서 방송이 된다. 인기 스타가 나온 유명 드라마는 수출 단가가 편당 수억 원을 호가한다. 중국 사정에 밝은 드라마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방영한 뒤 중국에 수출하는 모델이 아니라 애초에 중국 반응을 먼저 생각할 정도로 업계가 중국 시장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중국 상하이 대학에서 중국 문화를 연구한 고윤실 박사는 이 구조가 장기적으로 더 큰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드라마를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본다. 최근에는 엉성한 선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부 지원을 받는 가운데 서사와 예술성을 겸비한 인기 작품이 등장한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 시장에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앞으로 ‘중국이 제시한 기준’을 들이밀 수 있다.” 제도적 방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조선구마사〉 관련 민원 5000건 이상을 접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심의에 돌입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이원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방심위가 역사왜곡 여부 심의를 강화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드라마의 ‘역사왜곡’을 가장 엄중히 금하는 곳은 다름 아닌 중국이다. 중국의 미디어 심사 기구인 ‘광전총국’은 일부 드라마에 대해 역사왜곡과 소비주의 오락물이라는 이유로 경고·방영중단 조치를 가한다. 주된 타깃이 ‘퓨전 사극’이다. 2018년 광전총국은 전국드라마창작계획회의에서 드라마는 “숭고한 가치와 전통문화”를 드러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사극은 “혁명 역사의 와해, 과도한 오락화와 유희화를 견제하고 사료와 경전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왜곡하고 변형하는 것을 엄금한다”라고 강조했다. 광전총국의 중국 사극 통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한국식 사극’이 중국에서 인기를 모은 배경이기도 하다.

〈조선구마사〉 작가 박계옥은 3월27일 사과문을 발표해 “조선의 건국 영웅분들에 대해 충분한 존경심을 드러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타지물이라는 장르에 기대어 안이한 판단을 한 점”을 사죄했다. ‘역사왜곡 사극’에 대한 중국 광전총국의 인식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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