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잡지 의 표지사진들. 세계적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아마추어처럼’ 찍었다.

미국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가 당선자 신분이었을 때 세계적 패션지 〈보그〉의 표지로 등장한 적이 있다. 여론이 보그를 향해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그의 얼굴을 너무 하얗게 표현했다는, 이른바 ‘화이트워싱’ 논란이다. 사진계의 반응은 좀 달랐다. ‘사진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충 늘어뜨린 것으로 보이는 분홍색 천 배경은 물론이고 스튜디오 인물사진에서 사용하지 않는 렌즈 화각으로 카멀라 해리스를 참으로 볼품없게 만들었다. 화이트워싱은 차치하고, 일단 사진을 너무 못 찍었다는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사진 에디터들이 “인스타그램용 사진이냐?”라며 비꼬았다. 사진을 찍은 사진가는 입을 다물었고, 편집장인 애나 윈투어는 “어떤 커버를 선택할지에 대한 공식적인 합의는 없었다. 크게 격식을 차리지 않고 다가가기 쉬운 사진이야말로 바이든-해리스 캠페인의 특징을 반영한다고 생각했다”라며 표지사진을 옹호했다. 그러고 며칠 뒤에 카멀라 해리스의 전형적이고 우아한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표지를 바꿔 특별판이라는 이름으로 재판매하기도 했다.

패션잡지 백년사를 돌아볼 때 그 표지사진은 대체로 특권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 다른 종류의 잡지들이 따라갈 수 없는 미감이 존재했다. 어빙 펜이나 리처드 애버던 같은 역사적인 사진가들이 패션잡지의 표지를 만들었고, 그 형식적 아름다움과 기술적 완벽함은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달라진 것 같다. 〈보그〉나 〈바자〉 같은 전통은 없지만 젊은 세대에게 가장 강력한 패션잡지인 〈W〉는 최근 특집호를 통해 영화 〈원더우먼〉의 갤 가돗이나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 등 잘나가는 ‘셀럽’들을 차례로 표지에 등장시켰다. 대상과는 전혀 관계없는 길거리에서 무척이나 어색한 포즈로 인물사진에 적합하지 않은 광각렌즈로 찍었다. 언뜻 보기에 딱 ‘폰카’다. 인스타그램에 난리가 났다. 독자들은 ‘나도 그런 표지사진은 찍을 수 있다’며 수많은 패러디를 올렸다. 과연 그럴까? 그 표지사진들을 찍은 사람은 57세의 독일 사진가 유르겐 텔러다. 그는 이전부터 대상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가에 상관없이 자신이 마치 아마추어 작가가 된 것처럼 촬영하는 기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내가 의뢰받은 작업과 개인 작업을 구별하지 않는다”라며 대중과의 소통을 강조해왔다. 진실은 다음 둘 중 하나일 터이다. 첫째, 텔러는 서투른 사이비 작가다. 둘째, 텔러는 사진을 못 찍는 척하는 진정한 고수다. 도대체 요즘 패션계 사진 미학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21세기 미학의 중심은 아마추어 샷

고전 미학에서 아름다움은 수학과도 같다. 완벽한 질서를 세상에 구현해야 한다. 아름다움의 개념은 계속 변해왔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할 만한 ‘뭔가’가 대상에 담겨 있어야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닐까? 최근의 미학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는 듯하다. 개인의 욕망에 흡족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세대가 가장 많이 접하는 사진은 고도로 정교한 사진이 아니라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통해 접하는 사진이다. 폰카의 특징답게 적당한 광각과 깊은 심도, 날카로운 선예도와 화려한 색감 등이 특징이다. 또한 찍는 ‘나’와 대상은 매우 밀접해 보여야 한다. 이런 현상을 가장 민감하게 포착한 것이 〈보그〉나 〈W〉 같은 패션잡지로, 이들은 이 미학을 열심히 시도하고 있다. 21세기 미학의 중심은 아마추어 샷이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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