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IN 김진주 PD

서울 신촌 한복판의 성인용품 매장에 가본 적이 있다. 밝은 조명 아래 형형색색의 성 기구가 즐비해 있었다. 립스틱 모양을 한 여성용 성 기구의 디자인에 감탄하고 있는데, 매장 한구석에 ‘남성 전용’이라 쓰인 별도의 공간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다가가니 점원이 나를 막아섰다. 알고 보니 그곳에는 여성의 신체 일부를 본떠 만든, 남성용 성 기구의 ‘하드코어’ 버전이 전시돼 있었다. 분절된 여성의 신체가 그 은밀한 공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그 불쾌한 감각은 리얼돌 이슈가 불거지며 다시 떠올랐다. 분절됐던 여성의 신체가 이제는 구매자의 마음대로 재조합되고 있다. 미디어에 언급되는 리얼돌은 하나같이 여성형이다. 취재를 위해 이용을 문의한 리얼돌 ‘체험방’ 중에도 남성형 리얼돌을 갖춘 곳은 없었다. 남성형 리얼돌은 왜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가. 신체의 일부가 성 기구라는 이름으로 집요하게 ‘사물화’되는 쪽은 왜 여성인가. 이런 현실에 점점 더 주목하게 된다.

리얼돌 규제에 대한 논의는 분명 개인의 ‘자유’와 충돌하는 예민한 문제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사회의 많은 여성들이 리얼돌에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는, 리얼돌이 기울어진 현실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성산업 안에서 흔히 남성은 욕구를 지닌 구매자로, 여성은 그 구매의 대상으로 인지된다. 이제는 너무 익숙한 여성혐오라는 본질이 그 현실을 해석하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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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최한솔 PD 다른기사 보기 soru@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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