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김용키의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는 고시원을 배경으로 한 공포스릴러물이다. 취직을 하기 위해 상경한 주인공이 연이어 이상한 일을 겪다가 점차 심신이 피폐해지는 과정을 그려냈다. 독특한 소재와 탄탄한 심리묘사로, 웹툰 연재 시절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그런데 내게 이 작품은 고시원이라는 특이한 소재에서 출발한 재미있는 만화라는 차원을 넘어 현 사회의 주거 문제에 대한 진지한 은유로 읽힌다.

작품에서 형편이 넉넉지 않은 주인공 종우는 서울에서의 첫 보금자리로 고시원을 택하는데, 입주 첫날부터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전반적으로 형편없는 건물 상태는 그렇다 치고 밤마다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비롯하여 조직폭력배로 의심되는 우락부락한 아저씨, 어딘가 음침한 눈길로 수상한 행동을 일삼는 옆방 거주민, 게다가 자신만 보면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는 주인아주머니까지. 좋은 일이라곤 단 하나도 생길 것 같지 않은 주거 환경임에도 종우는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를 끊임없이 되뇌며 도무지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지켜보는 독자로서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당장 거기서 나와야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라는 안타까운 비명을 절로 지르게 된다. 그러나 막연히 기분 나쁘던 요소들이 실질적인 위협이 되어 나타날 때까지도 종우는 해당 고시원을 떠나지 못하는데, 그런 그를 답답하다고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왜냐하면 그가 들어간 고시원은 그 모든 악조건을 감안할 만큼 월세가 저렴했기에. 부모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모아둔 돈도 없는 종우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마치 수도승들이 수행하듯, 원래 고시생들이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숙식하던 특수시설 고시원은 빈곤계층의 숙소로 변모한 지 오래다. 5년마다 시행하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이들이 2005년 5만 가구에서 2010년 13만 가구, 2015년 39만 가구로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0년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역시나 대폭 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착취도시, 서울〉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가 쪽방촌과 원룸, 고시원 등을 두루 돌며 한국의 주거 실태를 집중 취재한 르포르타주이다.

공부에 몰두해야 하는 고시생 대신 빈자들이 고시원으로 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집값은 매해 상승하고, 안정된 주거 기반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점차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도시의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자가-전세-월세 코스를 거쳐, 아파트-빌라-연립주택-단칸방의 경로로, 이젠 차마 집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정식 주거시설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고시원과 쪽방 및 방 하나를 두 칸 세 칸으로 쪼갠 ‘신쪽방’으로까지 내몰린 것이다.

물론 모두가 강남 아파트에서 살 수는 없다. 만인이 동등하게 행복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는 환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차등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주거시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고시원이나 쪽방 또한 그마저도 없는 이들에게는 제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선망의 공간인 동시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시설로 이동하기 전의 임시방편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글을 열며 언급한 웹툰 속 종우처럼, 고시원이나 쪽방 등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이들의 환경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곳은 소화기 같은 가장 기본적인 안전시설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창문의 유무만으로 또 한 차례 계급이 나뉘는 세계에서 안전에 대한 소망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

빈곤을 둘러싼 ‘비즈니스’

이러한 쪽방의 평균 월세는 30만원가량으로 아파트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다는 강남의 34평 아파트 월세가 300만원인 것을 생각하면 빗물이 새고, 벌레가 나오고, 벽지 대신 신문지가 발린, 화장실과 주방도 갖추지 못한 1.5평 쪽방의 월세가 얼마나 비싸게 책정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고시원이나 일명 ‘신쪽방’ 역시 마찬가지로 시설이나 면적 대비 절대로 ‘싸지 않다’.

이곳의 거주민들은 열악한 시설로 인해 거주하는 동안 점차 건강이 악화되어 제대로 노동을 하기도 어려워지며, 그마저도 벌어들이는 돈 대부분을 월세로 소진한다. 그렇게 정부가 빈곤계층에 지급하는 주거지원금 및 가난한 이들이 힘겹게 벌어들인 돈 대부분이 고시원과 쪽방, 신쪽방을 소유한 부유층에게로 다시 흘러 들어간다. 그러면서 빈곤을 둘러싼 일종의 ‘비즈니스’가 완성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할 차상위계층의 주거시설이 실질적으로는 거주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부유층을 배불리는 일종의 굴레가 된 상황이다.

한때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어떤 이들은 일하면 일할수록 더욱 가난해지며, 누군가는 부유하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부유해진다. 계층은 나뉘더라도 계층 간의 사다리가 부실하게나마 존재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그 부실한 사다리마저 거의 사라진 형편이다. 계층 간의 이동은 오직 하강만 가능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누구나 ‘종우’가 될 수 있다. 안정적이고 안전한 주거시설 없이 타인은,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언제든 지옥이 될 수 있다.

기자명 한승혜 (작가·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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