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조선중앙통신1월5~12일 북한에서 치러진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이번 당 규약 개정에서는 당 총비서에 대한 언급보다 최고 지도기관의 역할과 권한에 대해 새로 추가된 내용이 많았다.

‘노동당 영도체제의 화려한 부활’.

8일간의 ‘대장정(1월5~12일)’을 마친 북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를 지켜본 소감이다. 물론 이번 당대회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위상은 한 단계 격상됐다. 노동당 위원장 내지는 국무위원장이라는 호칭 대신 노동당 총비서가 된 것이다. 당대회 5일 차 회의(1월9일)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 따르면 ‘각급 당위원회의 위원장 부위원장 직제를 책임비서, 비서, 부비서로 하고 기존의 정무국은 비서국, 정무처는 비서처로 고치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직제를 개편한 이유에 대해 1월10일자 〈노동신문〉은 ‘최고 정치조직인 당의 권위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위원회라고 하면 수평적이고 협의체 같은 느낌이 있는 데 비해 비서국은 좀 더 수직적이고 일사불란한 체제의 느낌을 준다. 따라서 위원장에서 총비서로의 직제 개편은 한 단계 지위 상승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역사적 맥락에서 짚어볼 수도 있다. 김정은 총비서가 2012년 권좌에 오른 이후 그의 호칭은 과거 김일성 주석의 호칭 변화를 단계적으로 계승해왔다. 김일성 주석은 1945년 12월18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9년 6월3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장, 1966년 10월12일 당중앙위원회 총비서, 1972년 헌법개정과 함께 국가원수직인 국가주석 등으로 직위가 상승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12년 4월의 당대표자 대회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2016년 5월9일 제7차 당대회에서 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을 거쳐 이번에 노동당 총비서가 된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거친 4개의 호칭 중 ‘국가주석’만 빼고 그 전의 세 직책을 비슷하게 계승해왔다. 이번에 당 총비서가 됐으니 앞으로 국가주석직만 남은 셈이다.

최고지도자나 당 기관의 호칭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제8차 노동당 대회는 1966년 10월에 개최됐던 조선노동당 제2차 당대표자 대회를 전범으로 한 것 같다. 당시에도 당 기구 개편이 이뤄졌다. 당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 직위를 폐지하고 당중앙위원회 최고책임자로 총비서를 두었다. 그 아래에 비서국을 설치해서 노동당의 일상 업무와 인사 및 조직 문제를 담당하게 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2020년 8월28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8호 태풍 ‘바비’가 강타한 황해남도를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또다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따라서 직제 개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번 당대회는 1966년의 노동당 체제를 부활한 것이 된다. 그런데 1월10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발표된 당 규약 개정 내용에는 1966년 당시보다 진일보한 내용들이 보인다. 1966년의 총비서-비서국 체제는 말 그대로 김일성 총비서의 지시를 수행하는 수직적 당 운영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당 규약 개정에서는 당 총비서에 대한 언급보다 당 정치국이나 정치국 상임위원회, 당중앙위원회 등 최고 지도기관의 역할과 권한에 대해 새로 추가된 내용이 많이 언급돼 있다. 예를 들어 당 규약 제27조에는 ‘정치국이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한다’는 내용이 보충됐다. 그리고 제26조 당중앙위원회 사업규정에 따르면 ‘당중앙위원회에 비상설 기구를 포함한 부서를 만들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당 규약을 수정하고 집행한 뒤 다음 당대회에서 승인을 받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내용이다. 그러나 제27조의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대한 설명을 보면 ‘과연 철통같은 수령제 사회로 알려진 북한에서 이런 내용이 당 규약에 명문화될 수 있나’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시급히 제기되는 중대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고 당과 국가의 중요 간부들을 임면하는 문제를 토의’하는데 ‘당 수반의 위임에 따라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은 정치국 회의를 사회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별도 조문으로 규정돼 있는 것이다.  

앞에서 ‘정치국 회의가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소집할 수 있’고 ‘당중앙위 전원회의는 당 규약에 없더라도 비상설 기구나 부서를 만드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집행 과정의 여러 제약을 감안하더라도 획기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제29조 당 중앙군사위에 대한 규정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즉 ‘긴박하게 제기되는 군사적 문제 토의를 신속하게 보장하기 위해’ ‘토의 문제의 성격에 따라 회의 성립 비율에 관계없이 필요한 성원들만 참가시키고 소집할 수 있다’는 규정을 새로 추가한 것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탄력적으로 운영하되 ‘신속하게 결정해야 할 군사적 문제’에 대해서조차 당의 논의 기구를 반드시 거친다는 뜻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당의 중앙 지도기관을 이와 같이 정비·보강한 이유에 대해 1월10일자 〈노동신문〉은 ‘혁명의 참모부로서 당의 영도적 역할을 높이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 당 수반을 대리해 정치국 회의를 사회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융통성을 둔 데 대해서는 ‘당 수반의 혁명 영도를 더욱 원만히 보좌하며 당 사업과 당 활동을 보다 민활하게 진행해나가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제8차 노동당 대회의 역사적 현실적 맥락을 감안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구다. 먼저 ‘혁명의 참모부로서 당의 영도적 역할을 높인다’는 말이 어떤 맥락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 현대사에서 ‘혁명 참모부로서 노동당의 영도적 역할’이 가장 잘 발휘됐던 시점이 바로 1960년대다. 즉 각종 위원회 체제를 비서국으로 전환하고 당 총비서직을 신설한 1966년 10월의 당대표자 대회야말로 노동당의 영도적 역할이 절정을 이룬 시점이었고, ‘당 국가체제(공산당이 영도하는 국가체제)’로서 북한의 권력 시스템이 가장 강고했던 시기라는 것이다. 혹은 ‘사회주의 체제의 특징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범(典範)이 유지되던 시기’라고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의 주체사상 등장과 함께 김일성 주석에 대한 개인숭배 및 김정일 위원장 시기의 선군정치로 당의 영도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의 약 10년은 당의 입장에서 보면 당의 집단적 영도성을 저해하는 세력을 제거하고 정리하는 기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군부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일어났고, 장성택 같은 세력가에 대한 정리가 이뤄졌다. 이번 당대회에서는 김일성-김정일 같은 김씨 가문의 선대 수령에 대한 존숭의 표현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 7차 당대회까지만 해도 ‘선군정치를 사회주의 기본 정치 방식으로 확립한다’는 표현이 있었던 데 비해, 이번 대회에서는 선군정치 대신 ‘인민대중 제일주의’ 정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인민대중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당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노동당 제일주의나 마찬가지다.

북측 시각에서 볼 때, 나라가 직면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지난해 홍수 피해,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엄혹한 정세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전군·전 인민·전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노동당의 막강한 조직력과 인적·물적 동원력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노동당 제일주의, 즉 노동당 영도체제의 부활이 불가피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당대회에서 규정한 당의 집단적 영도력은 지닌 ‘66년 체제’를 넘어선 부분도 있다. ‘당 수반의 혁명 영도를 더욱 원만히 보좌’한다는 명분으로 정치국 상무위원이 비록 당 수반의 위임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정치국 회의를 대리하고 그 정치국 회의를 통해 당의 최고 의결기관인 당중앙위 전원회의까지 소집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소극적으로는 북한이 직면한 대내외의 엄혹한 정세 속에서 김정은 총비서의 부담을 분산시킴으로써 그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적극적으로는 건강상태를 장담할 수 없는 김 총비서의 유고 등 비상사태 시 국가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안전장치라는 측면도 있다.

이쯤 해서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명암이 극명하게 대비된 두 사람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조용원이라는 인물과 김여정에 대해서다. 조용원은 그동안 김 총비서를 측근에서 보좌하는 수행원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던 그가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두 단계를 건너뛰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고 당비서에 당 중앙군사위 위원까지 겸하면서 당 서열이 졸지에 최룡해 다음인 3위까지 뛰어오른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조용원은 평범한 수행원이 아니었다. 노동당의 ‘당 중의 당’이라고 일컬어지는 노동당 조직지도부를 대표해온 인물인 셈이다. 그가 김 총비서를 밀착 수행해온 것은 최고지도자인 김 총비서와 당의 최고 실세 조직인 조직지도부 간의 연계 역할을 위한 것이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평양종합병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인민에게 약속한 최우선 사업이다.

‘우리 민족’ 아닌 ‘우리 국가’ 제일주의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당과 군과 내각, 그리고 중앙과 지방을 망라해 일정 직급 이상 간부의 인사권 및 당 생활지도 권한을 틀어쥐고 있는 막강한 조직이다. 노동당의 영도적 역할이 강화된다는 것은 곧 조직지도부의 역할이 확대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조직을 대표해온 인물이 당 서열 3위로 뛰어오른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는 곧 김여정의 승진 누락과도 맞물린다. 김여정은 그동안 백두 혈통의 일원으로서 김정은 총비서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대리해왔다. 그런데 이제 당 조직지도부를 배경에 두고 있는 조용원이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대외 관계에 대해서도 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남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로 당 규약 서문에서 ‘미제와 일본 군국주의’ 등 외세에 맞선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성원하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겠다는 소위 대남 통일전선전술 관련 내용이 삭제됐다는 점이다. 이는 김정은 총비서 집권 이후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이 사라진 것과 궤를 같이한다.

대북 소식통은 “더 이상 우리 민족 제일주의가 아니라 우리 국가 제일주의가 됐다는 점에서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대남 관계가 가장 크게 바뀌었다”라고 말한다.

이런 변화는 구체적으로 통일전선부의 역할 변경과 조직개편으로 나타난다. 이번 당대회에서 김영철이 통전부장을 맡은 사실은 확인됐지만 통전부는 더 이상 대남 사업을 담당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대신 재미·재일·재중 동포 등 해외동포 업무를 담당한다. 통전부 산하에서 대남 사업을 담당해온 민경련과 민화협은 이번에 조직이 폐쇄됐다고 한다. 6·15공동위와 아태평화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북측은 이미 남북 연락사무소도 파괴해버린 마당이라 더 이상 대남 협력에 미련을 갖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리라 예상된다. 1월17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내각 성원을 대폭 물갈이한 데서도 알 수 있듯 북한은 현재 국가 간 정상적 교역을 통한 경제행위가 불가능하다. 당과 군의 무역회사들이 중국을 상대로 벌이는 밀무역 등 특수 부문의 경제만 남아 있다. 생존전략 차원에서 중국 의존이 심화되는 것은 예상된 경로다. 여기에 또다시 평양종합병원 문제가 올해 상반기 정세와 연동돼 있다. 평양종합병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인민들에게 약속한 최우선 사업이다. 지난해 10월10일에서 올해 당대회 전으로 완공 시점이 늦춰졌다가 최근에는 4월15일 태양절 행사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완공하겠다고 한다.

평양종합병원의 핵심 설비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중국뿐이고, 중국은 지원 대가로 북한이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쏴 미국 바이든 새 행정부를 교란시켜주길 원한다는 점은 몇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 발표된 당중앙위 사업총화에서 유달리 SLBM 부분이 부각된 이유가 있다. 오는 2~3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에서 4월15일 북한의 태양절까지 한반도 정세는 매우 유동적이리라 보인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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