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노르웨이 오슬로에서 1월17일 한 남성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노르웨이발 백신 기사가 며칠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노르웨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사람 가운데 23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다. 1월15일 23명으로 시작한 뉴스는 1월17일 29명, 1월19일 33명으로 점점 숫자를 불려나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외신 보도를 인용한 기사들이 “노르웨이 백신 접종 후 사망자 속출” “노르웨이 잇단 백신 사망” “노르웨이 백신 쇼크” 같은 제목을 달고 줄줄이 이어졌다.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까지 키우자 1월19일 노르웨이 보건 당국은 일종의 ‘해명 글’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골자는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백신 부작용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으로 예방접종에 들어간 노르웨이는 요양원 거주자를 우선 대상자로 선정해 백신을 접종해왔다. 1월14일 노르웨이 의약청(NMA)은 ‘코로나 백신 부작용 의심 사례 주간 보고서’를 발행하며 4만3740명에게 백신을 접종했으며 사망 사례 23건이 보고되었다고 발표했다. 바로 이 보고서가 전 세계로 퍼진 ‘노르웨이발 백신 기사’의 발단이었다.

1월19일 해명 글에서 노르웨이 공공보건연구소의 책임 연구자인 와틀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전체 그림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요양원 거주자들은 코로나19에 걸리면 사망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우선 접종 대상자가 되었다. 요양원 거주자의 대부분은 심각한 기저질환이 있거나 삶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평균적으로 요양원 거주자 300명이 매주 사망한다.” 즉 시간 순서상의 ‘선후관계’로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뒤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지, 인과관계로서 코로나19 백신을 맞아 사망에 이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서 설명이 그쳤다면 모든 것이 명쾌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르웨이 공중보건연구소는 해명 글에 이와 같이 여지를 남겼다. “고령에 극도로 허약한 노인의 경우는 흔한 부작용일지라도 건강을 악화시킬지도 모른다.”

백신의 흔한 부작용이란 임상시험 참가자들에게 빈번하게 나타난 가벼운 증상들을 뜻한다. 주로 발열이나 메스꺼움 등으로 이는 백신이 신체의 면역반응을 자극해 나타나는 증상이다.

국내 언론은 외신 보도를 이용해 노르웨이 백신 사망자 뉴스를 줄줄이 전파했다.

인과관계가 아니라 단순한 선후관계

사실 1월14일 보고서에서 언론의 관심이 쏠렸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노르웨이 의약청에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 매주 부작용 의심 사례를 노르웨이어와 영어 두 버전으로 공개하고 있다. 1월14일 공개한 보고서의 취지도 1월19일의 해명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르웨이 요양원에서는 (백신과 무관하게) 매일 평균 45명이 사망한다. 지금까지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들은 대부분 백신과 연관성은 의심되지 않으며 환자가 가지고 있던 기저질환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사망 사례까지 보고서에 포함하는 이유는 (정보의)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A4 용지 3장짜리 보고서에서 한 줄의 문장이 문제의 빌미가 되었다. “그러나 매우 허약한 환자의 경우, 백신으로 인한 경증의 부작용이라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체 이 한 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국내 전문가들은 관련 데이터가 공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실하게 결론 내리기 어렵다고 단서를 달면서 “노르웨이 관련된 언론 보도도 지난해 국내 인플루엔자 백신 보도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즉 백신 접종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아니라 단순히 시간적인 선후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백신 접종 후 사망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기사화됐다는 것이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그런 위험은 백신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의료 행위 모두에 뒤따른다”라고 말했다. “90대 노인이 건강검진에서 대장내시경을 받는다면 기본적으로 위험을 동반한다. 지금 백신이 이슈가 되고 사람들 관심이 쏠리며 눈에 띄어서 그렇지, 의료 행위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위험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백신의 경우는 그 위험이 훨씬 낮다고 볼 수 있다.”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나이가 많고 건강상태가 매우 안 좋은 환자들에게 백신이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인과성(백신 ‘때문에’ 사망)을 뜻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아주 고령인 분들이 심혈관계 질환을 심하게 앓고 있는 경우, 열이 나면 심근경색이 악화될 수도 있다. 노르웨이에서 굳이 코멘트를 한 것도 그런 의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백신 접종 이외의 다른 이유로도 열이 날 수 있지 않나. 이런 경우를 백신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좀 어렵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도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의 경우 거의 혈관이 다 막혀가는 시점에서 조그마한 무언가가 툭 건드리면서 그걸 막는 경우가 있다. 백신 접종 후 생기는 가벼운 발열이나 근육통이 그렇게 툭 건드리는 작용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걸 인과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환자가 감기에 걸렸어도 벌어졌을 일이고, 혹은 조금만 시간이 경과했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을 텐데.”

노르웨이 의약청이 1월14일 발표한 백신 의심 사례 보고서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봐도 ‘백신과 사망 사이에 인과성은 없어 보이지만 혹시라도 병약한 노인들에게는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우니 접종하는 의료진이 주의를 기울여라’ 하는 조심스러운 당부로 읽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왜 유독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사망 사례만이 이런 설화를 겪게 된 것일까? 미국·영국 등 노르웨이보다 먼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들도 있고, 대부분의 나라가 요양원에 거주하는 노인들부터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데 말이다. 유럽의 의료 상황에 대해 잘 아는 한 보건 경제학자는 ‘보고 편향(reporting bias)’ 가능성에 대해서 말했다. “노르웨이를 비롯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공중보건이나 보건복지 분야의 수준이 매우 높다. 노르웨이 의약청이 코로나19 모니터링을 상당히 꼼꼼히 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고 편향’이란 집계되고 수집되는 정보가 더 널리 알려지는 현상을 뜻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노르웨이 의약청은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해 보고되는 부작용 의심 사례를 매주 보고서로 공개하고 있다. 노르웨이 의약청은 보고서 발간 취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노르웨이는 새로운 백신에 대한 모든 부작용 의심 사례를 보고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인과관계가 매우 낮아 보이는 경우에도 의심되는 부작용을 보고한다. (노르웨이) 시민들은 코로나19 백신과 관련된 부작용 사례가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될 것을 약속받았다. 노르웨이 의약청은 매주 리포트를 발간할 것이다.”

이런 사정들을 종합해보면 노르웨이 보건 당국은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상당히 모범적으로 시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작용 의심 사례를 신고하는 문턱을 낮추고, 접수된 사례들을 정부 주도로 조사하며, 가능성이 낮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위험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는 공중보건 강국다운 면모가 엿보인다. 그러나 노르웨이 보건 당국이 시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공개한 보고서는 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맥락이 생략된 외신 보도를 통해 사망자 수 같은 단편 정보들만 부각된 채 전 세계로 전파되며 불안을 부추기는 결과를 냈다.

ⓒ연합뉴스정은경 중앙방역 대책본부장이 지난해 10월 인플루엔자 예방접종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 사망 사례와 비슷

이는 한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 충분히 되풀이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내 보건의료계에서도 그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원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인플루엔자 백신 때 사망 사례를 두고 벌어졌던 상황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다. 이를 노르웨이에서 먼저 경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우려 때문에 요양원에 계신 분들부터 접종하겠다는 현재의 계획을 재고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의학적으로는 이분들을 우선 접종해야 한다는 판단이 맞다. 그런데 만약 사망 사례들이 이슈가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접종을 저해할 위험을 무시할 수가 없다. 백신에 대한 신뢰가 확실하고, 사망 사례가 나와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다.”

노르웨이의 사례는 보건 당국이 이상반응 감시체계를 철저히 구축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백신 신뢰를 키울 수 없다는 점을 앞서 보여준 셈이다. 결국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신뢰를 키우려면 두 손을 마주쳐 박수를 치듯 정부의 투명한 정보 제공과 언론의 과학적이고 신중한 보도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 점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국내 언론이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백신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지난해 인플루엔자 백신 사태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스포츠 중계처럼 백신을 맞고 몇 명이 사망했다는 식의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외국에서 벌어진 일도 이렇게 기사가 나오는데 앞으로 국내에 백신이 들어와 비슷한 일이 생기면 과연 우리 언론들이 어떻게 기사를 쓸지 요즘 상황을 보면 걱정스럽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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