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는 말하는 원숭이가 나온다. 원숭이가 인간의 말을 하다니. 학술원의 연구 대상이 될 만하다. 어떻게 원숭이가 인간의 말을 유창하게 하게 되었을까. 원숭이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렇습니다. 저는 자유를 원치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습니다.” 우리에서 도망친들 살아갈 능력이 없다면, 어렵게 얻은 자유는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태를, 아니 나 자신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현명한 원숭이는 자기 안에 있는 원숭이의 본성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인간의 말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출구는 그런 방식으로만 열린다.  
 
지금 우리에게도 진정 필요한 것은 어쩌면 ‘출구’가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자유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충분히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자유는, 늘 희귀하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비장함과 결의,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이것들을 가질 수는 없으며, 자유를 얻기 위해 애를 쓴 사람 자신이 정작 그 자유를 맛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출구는 그것을 찾겠다는 의지와 상상력, 그리고 매번 실험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삶에는 거대한 이념보다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더 소중할 때가 많다.

 내가 몸담고 있는 ‘수유+너머’도, 상상력과 실험의 소산이다. 공부란 혼자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는 것, 혹은 학위를 받으면 교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니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했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이 모여서 서로의 앎을 나누고, 새로운 공부법을 발견해가며, 일상을 함께한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주십시오.”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고, 그것을 착취하는 누군가가 있는 자본주의적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할지 모른다. 어디엔가 고여 있는 것을 흐르게 하는 것, 즉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 가진 것이 없어서 나누어 줄 게 없으면 어쩌냐고? 누군가의 선물을 고맙게 받는 것도 선물이다.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는 줌으로써 맛보는 행복이 있으니까.

‘대가 없는 나눔’이 세계로 확장되기를…

자주 구경 가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인터넷 토론방 등에서 활동하던 논객들이 인터넷 실명제니, 사이버 모독죄니 하는 말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저항해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려는 모임이다. 카페는 그들에게 일종의 실험실이자 새로운 개념의 사이트를 구성하기 위한 아이디어 뱅크이다. 회원 가입을 하고, 뭔가 활동을 하면 등급에 따라 조금씩 콘텐츠를 공개하는 대다수 모임과 달리, 그 카페의 모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나눈다.

블룸버그 기사를 실시간 번역해서 올리는 사람도 있고, 경제 동향을 분석하는 사람도 있으며, 민감한 정치 사안에 대해 이슈 파이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가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물으면 댓글이 수십 개 달리고, 도움이 될 만한 일상 정보와 좋은 생각이 하루에도 100개 넘게 올라온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보물창고 같다. 인터넷을 통한 모임인 만큼 생각도 제각각이지만, 그것을 조정하고 풀어가는 어른스러움도 그들에게는 있다.

나는 그들의 실험이 ‘사이버 망명’ 형태로 종결되어 자족적 공동체의 틀 속으로 수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트의 세계에서만이라도 자유롭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트의 세계를 통해서 자신들의 정신인 ‘대가 없는 나눔’이 십진법의 세계로 확장되기를, 그들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위축된 삶들이 활기를 띠고 다양한 출구가 무수히 생겨났으면 좋겠다.

기자명 권용선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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