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2019년 4월5일 중국 베이징의 한 공원에서 한족의 옷 ‘한푸’를 입고 기념 촬영을 하는 시민들.

〈환구시보〉는 1993년 창간된 중국 신문이다. 중국의 국수주의적 주장을 대변하는 매체로 악명 높다. ‘보수적’ ‘친정부적’이라는 말로는 이 신문의 성격을 온전히 수식하기 어렵다. ‘한국 가수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뱉은 말에 중국을 모독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라거나, ‘세계기구가 중국을 김치 종주국으로 공인했다’는 등 불가해한 이야기를 기사화하곤 한다.

2020년 하반기 들어 〈환구시보〉는 한국 연예인과 TV 프로그램을 공격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 8월 이 신문은 ‘가수 이효리씨가 마오쩌둥을 비하했다’고 보도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씨가 극 중 예명으로 “마오 어때요?”라고 발언한 일을 이렇게 해석한 것이다. 당시 중국인 누리꾼들은 그의 인스타그램에 몰려가 20만 개 가까운 댓글 공격을 감행했다. 프로그램 PD는 사과한 뒤 영상을 삭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효리씨는 SNS를 닫았다.

‘마오 사건’은 시작이었다. 두 달여 뒤에는 BTS(방탄소년단)가 타깃이 됐다. 2020년 10월7일 밴플리트상을 받는 자리에서 멤버 RM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남다르다. (…) (한·미)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남녀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밴플리트상은 한·미 친선협회인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환구시보〉는 RM의 소감을 두고 ‘항미원조(抗美援朝) 정신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의 희생을 무시했다’는 중국 누리꾼들의 비판을 소개했다. 〈뉴욕타임스〉 〈로이터통신〉 등 해외 언론이 기사를 비판하자 중국 외교부는 “역사를 거울 삼아 평화와 우호를 도모해야 한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환구시보〉는 기사를 내렸지만, 새로운 논란을 계속 불러일으켰다. 2020년 11월에는 걸그룹 블랙핑크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판다를 맨손으로 만졌다며 비난했다. 12월에도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화면에 타이완 국기와 중국 국기가 나란히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SNS에는 이 프로그램을 보이콧하겠다는 누리꾼들이 등장했다.

2020년 12월17일 〈환구시보〉는 단신으로 보도해온 건을 한데 모아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남한 가수들은 왜 중국을 계속 모욕해서 중국인 시청자에게 상처를 주는가?’가 제목이다. 기사에서 묘사하는 한국인은 ‘우물 안 개구리’다. 중국은 발전한 나라가 되었고 중국인의 수준도 높아졌는데 “한국 연예인들은 중국을 무시하고 경멸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영향을 많이 받아 중국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졌고”, 연예인들이 “너무 어릴 때 커리어를 시작해 (해외) 문화에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한국이 중국에 문화적 열등감을 표출하는 것일 수 있다”라는 중국인 학자의 말도 인용했다. “한국보다 공연비를 몇 배 더 버는 중국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선 태도를 고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한국 전통문화를 두고 공연한 시비가 반복된다. ‘한국 전통이라고 알려진 △△은 사실 중국 것’이라는 레퍼토리를 쓴다. 2020년 11월29일 〈환구시보〉는 “중국 쓰촨성식 김치가 국제표준화기구(ISO) 인가를 획득해 한국이 굴욕을 당했다”라고 보도했다(사실이 아니다. 이 인가는 해당 음식에만 적용될 뿐 한국 김치와 무관하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백과사전에는 “판소리는 지린성과 랴오닝성을 중심으로 퍼진 중국 문화”라는 구절이 있다. 아리랑, 부채춤에 대해서도 유사한 주장이 나온다. ‘조선족 문화이기 때문에 중국 문화’ ‘중국에서 전래됐으니 중국 문화’라는 논리다. 일각에선 2000년대 초 중국이 행한 동북공정에 빗대 ‘문화 공정’이란 말이 나온다.

ⓒ위키백과중국 쓰촨성식 김치.

자연스럽게 형성된 중화우월주의

최근 크게 불붙은 논란은 한복을 두고 벌어졌다. 중국 게임 〈샤이닝니키〉가 전선이 됐다. 캐릭터의 옷을 갈아입히는 게 주된 콘텐츠인 게임인데, 2020년 11월 초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기념으로 한복 의상을 출시했다. 그런데 그 직후, 일부 중국 누리꾼들은 이 의상을 “중국옷인 ‘한푸(漢服)’라고 표기하라”고 요구했다. ‘한복은 중국 소수민족인 조선족 의상이니 곧 중국옷’이고 ‘명나라 옷에서 비롯한 옷’이라는 것이다. 한국 누리꾼들이 이를 비판하자 게임사는 “우리 입장은 조국(중국)과 동일하다” “일부 (한국) 계정이 중국을 모욕했다”라며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개입해 “한복은 명나라에서 영향을 받은 옷”이라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국내 언론은 한복이 중국옷과 다르다는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 전통 복식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했다. 불과 며칠 사이 벌어진 일이다.

ⓒ시사IN 윤무영이욱연 서강대 교수는 한복과 한푸의 차이점 중 하나가 ‘입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한푸 논란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옷은 한족 민족주의를 증진하려는 특정 목적하에 ‘계발된 전통’이다. 공식적으로 한푸란 청나라 이전 중국 대륙 사람들이 입던 전통 복식 전체를 의미한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 의상 치파오(旗袍)는 정통인 양 행세한 가짜이고, 한족의 옷 한푸가 진짜 중국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푸는 중국인들에게도 낯선 옷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중국 내 일부 민족주의적 민간단체들이 한푸를 장려했지만, 좀처럼 유행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사극이 인기를 끌자, “베이징 시민들이 한푸를 ‘대장금 옷’ ‘한복’ 등으로 오인했다”는 기사가 남아 있다. 2010년엔 반일 시위를 하던 중국 남성들이 지나가던 여성의 한푸를 강제로 벗겨 불태운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여성이 입은 한푸를 기모노로 착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푸는 중국인들에게도 낯선 복식이었다. 더욱이 이른바 한푸의 전통이 단절된 시점도 청나라가 아니다. 다름 아닌 마오쩌둥 시대에 사라졌다. 2019년 1월 기사에서 한푸 유행을 다룬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적었다. “청나라 시대에는 한족 전통 대부분이 존속했다. 중국 전통이 가장 급격히 깨진 시기는 공산당 치하의 첫 수십년간이다. 좌파적 광신 때문에 청색 옷이나 녹색 인민복을 입는 것이 가장 안전하게 여겨졌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봉건 잔재로 몰려 도태된 복식이 돌연 중화민족주의와 애국의 상징으로 재발견된 것이다.

홀대받던 한푸의 위상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높아졌다. 당국에서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공청단은 2018년 ‘중국 전통의상의 날’을 제정하고, 온라인에 한푸를 입고 사진을 찍도록 캠페인을 벌였다. 젊은이들 사이에 특히 인기가 높다. 명절이나 결혼식 등 특별한 행사에서 선호하는 한복과 달리, 한푸는 일상복으로 입는 사람이 많다.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이욱연 교수는 한복과 한푸의 차이가 또 있다고 말했다. “입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한푸는 민족주의적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해 입는 이들이 다수다.” 10년 전 한푸를 기모노로 오인해 불태웠던 이들과 오늘날 이 옷을 입는 이들의 목표가 같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한푸를 입으며 위진남북조 조상들과 정신적 유대감을 느낀다”는 중국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조선왕조를 떠올리며 한복을 입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에 민족주의를 조장한 건 공산당이다. 민족주의는 일개 사조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도입한 통치 이념에 가깝다. 배경은 공산주의의 쇠락이다. 시장화 노선에 들어서고 성공을 거둘수록 공산주의는 지배력을 잃어갔다. 1989년 톈안먼 사태가 터지자 공산당의 권위까지 흔들렸다. 이때 인민을 결속하기 위해 공산당이 대체재로 꺼내든 이데올로기가 민족주의다 (〈시사IN〉 제437호 ‘타이완 깃발로 중국을 흔들다’ 참조). 정부 방침에 따라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중국 젊은이들은 강한 민족주의 교육을 받게 된다.

특히 1995년 이후 태어난 이들은 ‘지우우허우(九五后, 95후)’ 세대라고 불린다. 〈환구시보〉가 즐겨 인용하는 극단적 누리꾼들이 대부분 여기 속한다. 이욱연 교수는 지우우허우 세대가 ‘분청(愤青:분노한 청년들)’이라고 알려진 1980년대생 ‘바링허우(八零后, 80후)’ 세대와는 사뭇 다르다고 했다. 양쪽 다 민족주의적이고 반외세적인 성향은 비슷하다. 그런데 개혁·개방 후유증의 여파를 직간접으로 겪었던 바링허우 세대와 달리, 지금의 20대 젊은이들은 친정부적 색채가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바링허우의 민족주의가 사회적 불만을 외부에 돌린 결과에 가깝다면, 지우우허우의 민족주의는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중화우월주의다.

일각에서 상상하는 바와 달리, 이 교수는 중국 20대의 가치관이 ‘세뇌’에 가까운 민족주의 교육 탓은 아니라고 말했다. 중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이 올라간 게 더 직접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우우허우 세대의 특징을 이렇게 묘사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순탄하게 살았다. ‘한 자녀 정책’이 완전히 자리 잡아 취업 걱정 없이 유복하게 생활했고,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고 달 뒷면에 우주선을 보내는 모습을 보는 등 국가적 자긍심을 키울 기회가 많았다. 1980년대생 ‘분청’들과 달리 이들은 서구에 열등감이 없다. 세계적 금융위기 가운데서도 중국 경제는 건재했고,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서구 선진국이 맥을 추지 못하는 것도 목격했다.” 그는 이전 세대에 비해 20대 중국인의 민족주의가 더 위험하다고 본다. 이들은 주변국을 오만한 자세로 내려다보는 패권주의에 매몰돼 있다. 여차하면 주변국과의 충돌까지 불사할 기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연합뉴스2020년 9월9일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스타에비뉴에 설치된 BTS 대형 사진.

“중국이 수출하는 건 TV, 오븐, 구두뿐”

그런데 유독 문화 분야만은 중국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중국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5000년 된 전통문화를 자랑하지만 가장 귀한 유산의 일부를 ‘혁명’이라는 명목으로 깨부쉈다. 그것도 국부 마오쩌둥의 프로젝트였다. 봉건 잔재와 부르주아 문화를 척결한다고 일으킨 운동이 한족의 전통문화까지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중국 학자들은 한족보다 소수민족의 문화가 더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탄한다. 글로벌 차원에서 중국 대중문화의 위상이 높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중국 콘텐츠는 중국 내에서만 돈을 벌어들이며, 국제적 영향력은 거의 발휘하지 못한다. BTS 등 한국 아이돌 그룹을 베낀 ‘짝퉁’ 뮤지션들이 급조된다. 한한령(限韓令:2016년 사드 배치 이후 한류 콘텐츠 유통을 제한한 보복 조치)에도 불구하고 한류는 중국 내에서 활개치고 있다. 반한 감정이 높은 지우우허우 세대는 한국 예능과 드라마를 불법으로 다운로드해가며 소비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중국 문화계의 오랜 숙원은 대외 수출이다. 문화 수출은 정부 차원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2007년 공산당 대회에서 ‘중국 문화의 해외 진출’이란 목표를 처음 명시한 이후 꾸준히 세부 전략을 세우고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 한한령의 직접적 계기는 사드 배치지만, ‘한류의 기세를 꺾고 중국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중국공산당의 문제의식은 뿌리가 더 깊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문화가 세계에 나가면 시장을 선점한 한국 문화의 아류로만 비칠 수도 있다고 본다.

경제적 면만 보자면 중국 문화 콘텐츠는 굳이 수출을 노리지 않아도 된다. 인구 14억 내수시장만 겨냥해도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영화산업을 보자. 2020년 중국에서 수익을 가장 많이 낸 영화는 〈800〉이다. 1937년 중국군과 일본군의 전투를 다룬 민족주의 성향 영화다. 4억6130만 달러(약 5100억원)를 벌어들인 이 영화는 2020년 세계 박스오피스 1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총수익의 대부분인 4억6000만 달러는 중국 내에서 나왔다. 또한 〈800〉이 글로벌 1위 기록을 세운 것 역시 코로나19로 전 세계의 영화 관람객 수가 크게 줄어든 영향이 크다. 〈어벤져스:엔드게임〉 〈겨울왕국 2〉 〈스타워즈 에피소드 9〉 등 대작이 즐비했던 2019년에도 중국 애니메이션 〈나타지마동강세〉는 세계 박스오피스 12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수익 대부분을 중국에서 올렸다.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쉬즈위안은 2012년 책 〈독재의 유혹〉에서, 낙후한 문화에 대한 중국인의 고민을 묘사했다. “중국인들은 (중국의) 경제적 성취가 세계에서 그에 상응하는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끝도 없이 외래문화를 소비하는 나라는 진정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됐다.” 혁명을 추구하고 원자탄을 제조하고 금전을 모았던 이유가 그랬듯, 세계의 “존경을 받기 위해” 문화를 수출하려 한다고 썼다. 쉬즈위안에 따르면 문화적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는 것은 중국 정부와 사회의 공동 목표다. ‘한류 때리기’와 ‘전통 훔치기’에 혈안이 된 젊은이들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중국 문화 앞에는 근본적 난관이 있다. 해외 진출의 주된 목적이 돈벌이라면 문화 상품이 가야 할 길은 간단하다. 보편적 취향에 맞추되 고유한 개성을 살리면 된다. 한류가 이렇게 성공했다. 중국 영화 전문가인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는 “중국 문화는 언제나 이데올로기 강화가 1순위 목표다. 산업은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수익 창출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국제적 프로파간다를 위해 수출을 노린다는 이야기다. 중국 문화는 세계인의 수요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 세계에 중국을 맞추는 게 아니라, 중국에 세계를 맞추려는 듯한 콘텐츠가 정부 지원을 받는다. 제작과 판매 과정에서 이중 삼중으로 검열을 거쳐 작품은 너덜너덜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해외에 진출한, 위대한 중국인이 세계를 구하는 영화(〈특수부대 전랑 2〉)는, 중국인들의 예상과 달리 세계인의 웃음을 유발한다.

중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의 발상지 중 하나이지만, 정작 중국 문화의 발전 가능성은 박하게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2000년대 초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중국위협론’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이 수출하는 건 TV나 오븐, 구두뿐 사상이나 혁신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2011년 “중국 문화는 자유로운 사상의 교환과 경쟁을 가로막아 창의력이 떨어진다. 문화적 족쇄를 풀려면 5000년 중국 역사의 전통과 맞서야 한다”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인구와 자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낯선 문제에 부딪힌 중국은, 도무지 존중하기 어려운 풍모만 자꾸 내보이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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