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생후 10개월부터 골프채를 휘둘렀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아들이 골프에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우즈는 전문화된 분야에서 조기교육과 재능의 결합으로 1인자가 된 사례다. 반면 ‘테니스 황제’ 페더러의 삶은 달랐다. 그의 유년기는 테니스만을 위한 삶과 거리가 멀었다. 다양한 스포츠를 접했고 또래와 크게 유리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의 부모는 오히려 그가 테니스에 과몰입하지 않도록 말리곤 했다. 충분히 다양한 분야를 체험하는 ‘샘플링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페더러는 테니스 훈련에 몰두했고, 어릴 때부터 테니스 조기교육을 받은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우즈의 삶이 조기 전문화의 결과라면, 페더러의 길은 늦깎이 제너럴리스트의 행보에 빗댈 수 있다. 이 두 천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는 간명한 메시지를 하나 던진 뒤 논의를 확장해간다. 현실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탐색을 거친 후에야 자신의 전문성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종적인 진로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행보도 궁극적으로는 도움이 되며, 오히려 한우물만 파는 편협한 전문가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입체적인 답을 내놓는다는 게 저자의 핵심 메시지다.

조기 전문화의 성과가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이는 분야는 대개 규칙과 변수가 통제되는 ‘친절한 세계’인 경우가 많다. 반면 실제 현실은 변수가 통제되지 않으며 융통성 있게 적응해나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실을 작가는 ‘사악한 세계’라고 부르는데, 자신의 범주(이 책에서는 ‘레인지’라고 표현)를 넓히는 게 사악한 세계에서 오류에 빠져들지 않게 한다고 설명한다.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고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는 전문화된 세상에서 제너럴리스트의 가치는 폄하되기 일쑤다. 현대 경영학·교육학 등에서 중시하는 ‘1만 시간의 법칙(한 가지를 제대로 해내려면 1만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이나 ‘그릿(Grit·일종의 투지와 끈기)’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자주 진로를 변경하거나 다양성을 고려하는 방식은 환영받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직무 적합도를 생각하고, 외부자의 시선을 가질 수 있으며, 익숙한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제너럴리스트의 삶이 ‘융통성 있는 열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모두가 김연아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아이들을 손흥민처럼 키울 수도 없다. 그러나 모두가 피겨스케이팅이나 축구처럼 규격화한 세계에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규격화한 필드에서 전개되는 노동은 이제 AI의 몫이 될지 모른다. 오히려 융통성 있게 답을 구하는 것, 변수를 이해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는 일이야말로 AI에 밀리지 않는 인간만의 경쟁력을 발현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