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1월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취업 준비생이 면접 장소로 향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김혁중씨(가명·27)는 코로나19 관련 소식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몇 해 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 김씨는 온 가족이 살던 집에 혼자 남겨졌다. 전문대를 중퇴한 뒤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자연스럽게 외부와의 관계도 끊겼다.

생활비는 빚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홀로 지내는 김씨는 ‘코로나19로 인한 바깥세상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외부와 단절되는 비대면 일상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익숙하다고 했다.

문제는 자신의 삶을 개선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청년 일자리 감소 폭이 커지면서 김씨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고립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12월8일,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의뢰해 서울시 거주 청년(19~35세) 2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청년의 노동·일상·정신건강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기 위한 조사였다. 팬데믹으로 직장을 잃은 청년이 적지 않았다. 응답자 가운데 29.9%가 ‘2020년 2월 이후 실업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실업을 경험한 이들 가운데 82.5%는 자신의 실업 원인이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이 있다’고 응답했다.

학력이 낮을수록, 고용 형태가 불안정할수록,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고통의 크기는 컸다. 정규직 임금노동자 가운데 팬데믹 이후 실업을 경험했다는 비율은 16.4%였지만 프리랜서나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던 청년들은 응답자의 51.3%가 실업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고졸 이하 응답자 가운데 44.4%,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 이들 가운데 42.4%가 2020년 2월 이후 수입원을 잃었다고 응답했다. 조사 연구를 담당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남재욱 부연구위원은 “온라인 조사라는 한계가 있어서 표본추출이 완벽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학력과 고용형태, 기업 규모에 따라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고통의 격차가 크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통계청의 고용 지표도 청년층의 취업·실업 문제가 점차 악화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통계청이 11월11일 발표한 ‘2020년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 29세) 고용률은 42.3%로 전년 동월 대비 2%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전체 연령(15~64세) 고용률이 1.4%포인트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청년층의 고용률이 더 줄어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업률 역시 같은 기간 전체 연령대에서 0.7%포인트 상승했지만(3.0%→3.7%), 청년층은 1.1%포인트 상승해(7.2%→8.3%) 전체 평균을 끌어올렸다. 2019년 10월 472만5000명 규모였던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진학·가사노동 등을 이유로 일할 능력이 있어도 일하지 않는 인구)도 올해 10월에는 476만6000명으로 4만1000명가량 늘어났다.

청년실업의 양태는 일반적인 실업과 다른 관점으로 살펴봐야 한다. 청년층은 진로를 모색하고 장기적인 일자리를 찾아가는 일종의 ‘이행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주로 서비스업 분야에서 단기 일자리를 찾거나,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이직·전직이 잦은 편이다. 통계상 취업 상태에 놓여 있더라도 실제로는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이후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줄어들었고, 구직활동을 위한 다양한 기회와 수단도 사라졌다. 앞선 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2020년 2월 이후 ‘채용일정 연기 또는 취소(54.6%)’ ‘기업 채용 감축(64.8%)’ ‘단기 일자리 등 소득기회 감소(79%)’ ‘취업설명회, 채용박람회 등 연기 또는 취소(61.6%)’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런 구직 과정의 애로사항 가운데 단 한 가지라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은 87.4%에 달했다.

청년 세대는 이행기에 필요한 경제적 안전망을 대개 ‘부모 도움’ 또는 ‘아르바이트·단기 일자리’로 해결한다. 코로나19 이후 단기 일자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생활비 부담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가 주거를 이전하는 것이다. ‘주거비를 줄이기 위해 사는 곳을 이동했다’는 응답자도 11.7%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주거지를 변경한 이들 가운데 42.8%는 가족이나 지인과 주거를 합쳤고, 36.6%는 전보다 주거비 부담이 적은 곳으로 이동했다고 응답했다.

청년 10명 중 3.6명은 고졸 이하

월세·통신요금·보험료 등을 연체한 경험이 있다는 이들도 29.2%나 되었다. 이 역시 가구소득 250만원 이하(41.6%), 고졸 이하(45.8%), 전문대 재학/중퇴(48.1%) 계층에서 발생빈도가 높았다. 부모의 지원이 불가능한 경우, 단기 노동 터전을 잃은 청년의 실생활에 균열이 일어난다는 걸 보여준다. 12월8일 ‘코로나19 속 청년, 더 이상 시간이 없다’ 토론회에 참석한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코로나19의 충격은 평등하지 않다. 청년정책의 포커스는 대졸 미취업자에 맞춰 있지만 전체 청년 10명 중 3.6명은 고졸 이하다. 학력 수준이 낮을수록 관광·숙박·요식업·판매·특수고용·프리랜서처럼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영역에서 일한다. 이런 분야에 이미 들어가서 다쳤거나, 들어가는 것조차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경색 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지금의 청년층이 전 생애에 걸쳐 불평등을 경험하는 일종의 ‘코호트(동질 집단)’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업·미취업 청년층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음 세대와의 경쟁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여전히 기업들이 ‘고연령 신입사원’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남재욱 위원은 “현재 25~29세에 달하는 ‘이행 연령대’ 세대를 향후 10년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취업빙하기 세대(버블경제 직후 1993년부터 약 10년간 노동시장에 진입한 세대)’가 40대가 될 때까지 경제적 불평등에 시달리며 ‘프리터(정규직 대신 단기 일자리로 생계 유지)’나 ‘히키코모리(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 같은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지금 청년층의 이행을 추적하며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례 없는 시대, 전례 없는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대책 중 하나가 ‘고립’을 방지하는 것이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심리·정서적 고립감’이 위험수위에 달했다고 지적한다. 앞선 조사에서도 ‘2020년 2월 이후 한 번이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다는 생각한 적이 있나’라고 묻자, 약 26.8%가 ‘그렇다’는 응답을 남겼다. 이 역시 학력(고졸 이하 36.3%)과 가구소득(250만원 이하 35.9%)이 낮을수록 그렇다는 응답이 많았다.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우울증 자가진단(CES-D)’ 조사 결과 중증 우울 위험을 보인 비율도 36.3%에 달했다. ‘모두가 힘들다’는 이유로 방치하기에는 청년 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크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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