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중독사회
김태형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사람에게는 생존보다 존중, 물질적 풍요보다 건전하고 화목한 관계가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 경제는 수십 년간 성장해왔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지표는 과거 선망하던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삼시 세끼를 챙겨 먹고, 최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도 사람들은 자문한다. “왜 이렇게 살기 힘들고 계속 불안한 거야?” 저자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일 아침거리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자신의 이웃보다 더 잘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 문제는 ‘상대적 빈곤’, 즉 불평등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상대적 빈곤이 ‘존중 불안’을 유발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물질적 빈곤보다 낙오해서 존중받지 못하는 감각을 더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은 풍요로워졌으나 개인 간 불평등은 심화된 한국 사회를 저자는 ‘풍요-불화 사회’라고 명명했다.

 

 

 

 

 

 

 

 

다양성을 엮다
강호정 지음, 이음 펴냄

“인간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종도 현재 지구상에는 인간 자신밖에 없다.”

‘IT 생태계’ ‘기업 생태계’ 등 오늘날 ‘생태계’라는 용어는 여러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정작 과학 개념으로서 생태학은 창안된 지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플랑크톤부터 대형 어류까지, 호수 안에서 작동하는 ‘먹이망’을 연구한 게 시작이었다. 오늘날 생태학은 다양한 환경문제를 에너지 흐름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물질순환 과정을 규명한다. 산성비, 기후변화 등 환경 재해가 가시화되면서 생태학이란 말은 대중에게도 점차 익숙해졌다. 저자는 생태학의 기초부터 최신 의제까지, 쉽고 낯익은 사례를 동원해 소개한다. 인간의 멸종을 예견할 수 있을지, ‘녹조 라떼’의 원인이 무엇인지 등, 일상에서 나올 법한 물음에 대한 생태학적 답을 제공해준다. 책장을 넘길수록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 줄타기가 돋보이는 책.

 

 

 

 

 

 

 

 

랭킹
피터 에르디 지음, 김동규 옮김, 라이팅하우스 펴냄

“우리는 순위를 끌어올리려 현실을 왜곡하는 존재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벨상 수상자는 곧 해당 분야 정상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2018년까지 노벨상을 받은 총 935명 가운데 여성은 51명, 6%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성은 문학·물리학·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남성보다 열등하다?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성차별주의에 물들어 있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편견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 어느 단계에서 노벨상 수상 기회가 대폭 줄어드는지 정확히 지목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노벨상 이외에도 수많은 순위 시스템에 다양한 종류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다고 적었다. 공정한 평가 척도처럼 보이는 숫자들이 대개는 ‘주관을 객관화한 수치’에 불과하다는 게 책의 결론이다.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
윌리엄 보스트윅 지음, 박혜원 옮김, 글항아리 펴냄

“브루어는 역사의 벽에 붙어 있는 파리인 셈이고 맥주는 그들의 타임캡슐이다.”

맥주 비평가인 저자는 술을 마시는 게 직업이다. 마냥 부러울 줄 알았는데 책을 열어보니 그 일도 만만치 않다. 드라이하다, 스위트하다는 설명보다 ‘유칼립투스 숲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처럼 스모키하다’라고 평가해야 한단다. 다양한 맥주의 세계로 인도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맥주는 인류 최초로 레시피가 필요한 음식이었다. 자연 발효되어 우연히 만들어진 와인과 달리 맥주를 양조하는 데는 창조자가 늘 있었다. 저자는 “맥주잔마다 문화, 정치, 관습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말한다. 어떤 맥주 취향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문화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북유럽의 샤먼부터 농부, 공장을 소유했던 기업가, 미국 이민자 1세대까지 맥주의 ‘창조자’였던 이들을 만나며
그 기원을 파헤친다.

 

 

 

 

 

 

 

 

왜 전태일인가
송필경 지음, 살림터 펴냄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향한 연민.”

대구 하면 ‘TK’와 ‘보수’를 떠올린다. 하지만 해방 전후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다. 진보세력이 꿈틀댄 곳이다. 1970년 11월13일 오후 1시30분 ‘노동자도 인간’임을 선언한 전태일. 대구가 고향인데, 정작 대구에서 그의 존재는 잊혔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1985년 고향에서 치과병원을 개원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을 읽고 약자를 위한 연민의 소중함을 깨우친 저자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쓴 평전이다. 저자가 이사로 활동하는 ‘전태일의 친구들’은 전태일이 한때 살았던 대구 남산동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 책 수익금 전액이 기념관 건립에 보태진다.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지음, 북콤마 펴냄

“그전에 ‘존엄하게 살기’ 부분에서 어떻게 삶을 개선할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질병을 앓던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나 늙은 부부가 서로를 돌보다 힘에 부쳐 동반 자살을 했다는 기사에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이 있다. ‘저렇게 되느니 그전에 그냥 깔끔하게 죽고 싶다’라거나 ‘한국도 안락사 도입이 시급하다’는 댓글이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깔끔’한 도피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걸까. 모든 과정은 생략한 채 ‘그냥’ 갑자기 스위치를 끄듯 죽음을 선택하면 되는 걸까.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 5명이 스위스 조력자살 지원단체 ‘디그니타스’를 취재하며 엮어낸 이 책은 안락사에 대한 좀 더 풍성한 논의를 담고 있다. 비록 옳고 그름의 정답은 알 수 없더라도, 그것은 (‘그냥’ ‘깔끔하게’)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