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지음, 수오서재 펴냄

“손잡을 수 없어서/ 포옹할 수 없어서// 무더운 여름날/ 고마움을 어찌할지 모르겠다(〈덕분에〉).”

2010년 9월 충남 당진의 한 철강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1600℃가 넘는 쇳물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시인 제페토는 해당 기사의 댓글에 시로 기록을 남겼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이 제목은 시인 제페토가 2010~2015년에 쓴 댓글 시를 모은 시집의 표제작이 되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미화되었다〉가 나왔다. 2015~2020년에 쓴 댓글 시를 모았다. 그사이, 우리 사회는 촛불혁명과 대통령 탄핵을 겪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하고, 페미니즘이 이끄는 사회 변화를 지켜보았다. 또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세상에 번졌다. 제페토는 마음을 흔드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댓글난에 글을 썼다. 나란히 실린 기사와 댓글 시를 통해 한국 사회를 반추해볼 수 있다.

 

 

 

 

 

 

 

 

딸아이의 언어생활탐구
박진명 지음, 호밀밭 펴냄

“(엄마)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해. (지호) 아니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어서도’ 사랑해지~.”

일곱 살 딸아이가 무릎을 칠 만한 표현을 할 때마다 무뎌진 감각이 깨어났다. 아빠인 저자는 상황에 맞지도 않은 엉뚱한 말과 여운이 남는 말, 개그 같은 말들을 틈틈이 기록했다. 별자리는 어떻게 생기느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이는 이렇게 답한다. “밤이 깜깜해지면 별이 나타나잖아? 그러면 별들이 하나, 둘, 셋 나타나. 그 별들이 짝을 짓잖아, 그럼 별자리가 돼.” 아빠는 옹알이를 하던 아이의 말이 늘수록 한 우주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는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지은이는 아이에게 잘 설명해주기 위해 하나하나 깊이 생각하면서 세상을 더 명료하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관찰하는 동안 아이도 오랫동안 아빠를 관찰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는 말에는 서로를 향한 애정과 세심한 시선이 녹아 있다.

 

 

 

 

 

 

 

 

동네 의사와 기본소득
정상훈 지음, 루아크 펴냄

“기본소득이 있다면, 우리 삶은 지금보다 훨씬 느긋해지고 건강해질 것이다.”

코로나19가 인류에게 가르쳐준 교훈이 있다면, ‘모두가 안전해야 나도 안전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심해질수록, 타인의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방치할수록 개개인의 삶이 함께 요동친다. 동네 의원에서 ‘대진 의사(원장 대신 진료하는 의사)’로 일하는 지은이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면서 기본소득의 중요성을 떠올렸다. ‘아프면 3~4일 쉬어라’던 질병관리청의 지침이 무색하게 진료실에는 아파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드러낸 현실 아래에는 돈 버는 노동에 대한 압박과 먹고사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본소득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우리에게 기본소득이 있다면, 어쩌면 다음에 찾아올 감염병은 덜 잔인하게 맞이할지도 모른다.

 

 

 

 

 

 

 

 

프랑스 왕실의 근친혼 이야기
김동섭 지음, 푸른역사 펴냄

“근친혼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 배경에는 정치·경제적 이유가 있었다.”

근친혼은 중세 유럽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다. 다수 군주가 친인척 배우자를 맞아들였고, 왕가는 각종 유전 질병에 시달렸다. 합스부르크, 카페 등 유수 왕가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질녀를 아내로 맞고, 작은할아버지를 남편으로 삼는다. 친족들에게 분배된 영지와 재산을 도로 통합하려는 상속 전략이었다. 중세 교회가 근친혼을 금지한 것 역시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는 시각이 있다. 세속 군주의 권력이 교회를 초월하면서 근친혼 촌수도 가까워진다. 책은 카페 왕조와 발루아 왕조, 부르봉 왕조로 이어지는 프랑스 왕가의 주요 근친혼 사례를 다룬다. 교회의 제지에도 근친혼이 성행하고, 그 결과 왕가의 후손들이 단명하면서 왕조가 무너지는 사이클이 보인다.

 

 

 

 

 

 

 

 

빛의 핵심
고재현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우주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빛은 진공 속에서 1초에 30만㎞를 날아간다.”

한때 책 제목에서 어떻게든 물리학 냄새를 지우려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 몇몇 용감한 물리학자들이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해 물리학을 친숙하게 만들어냈고, 한국어로 물리학 대중서를 써낼 수 있는 전문가 작가의 층도 두꺼워졌다. 이제 물리학은 꽤 많은 독자가 흥미를 갖는 콘텐츠다. 고재현 교수(한림대)도 물리학 대중서 필자로 주목받아온 연구자다. 10대 청소년 대상 과학책을 몇 권 쓴 뒤 〈빛의 핵심〉을 내놓아 기대에 부응했다. 책은 빛의 물리학적 속성으로 시작해서 그 지식이 현대인의 실생활에 응용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간다. 빛의 물리학을 읽다 보면 세상의 빛깔이 다르게 느껴진다.

 

 

 

 

 

 

 

 

조용한 희망
스테퍼니 랜드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

“내 아이는 노숙인 쉼터에서 걸음마를 배웠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가던 스테퍼니 랜드는 짧은 연애로 계획에 없는 임신을 하게 된다. 남자친구는 그를 학대하는 사람이었다. 스테퍼니와 그의 딸 미아는 집을 나와 노숙인 쉼터에서 지내게 된다. 스테퍼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하고, “타인의 삶이 완벽해 보이도록 쓸고 닦는 동안 나의 존재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유령과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몬태나 주립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자신이 6년 동안 가사도우미로 지내며 겪었던 사회적 약자의 삶을 생생히 증언한다. 책의 제목인 ‘조용한 희망’은 절망의 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의미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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