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 사업이 진행 중인 강원도 춘천시 중도 전경.

춘천대교를 건너 중도(中島)에 진입하자 먼 곳에 갈색 형체가 보였다. 중도유적지킴본부 이정희 대표는 “고라니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5월부터 중도에 천막을 치고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섬 한편에서 공사 중인 레고랜드에 반대하는 농성이다. 레고랜드는 블록 장난감 레고(LEGO)를 소재로 한 테마파크로 내년 7월에 개장할 예정이다. 공사장 울타리 안쪽에는 놀이기구로 추정되는 색색의 시설물이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이 섬에 대규모 선사시대 유적지가 묻혀 있다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는 “레고랜드 공사 현장 바로 밑에 문화재가 있다.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공사인데 주말에도 쉬지 않고 한다”라고 말했다. 6년간 일었던 여러 잡음에 더해 최근 국정감사에서 새로운 문제까지 제기되며 레고랜드 갈등은 격화되고 있다.

중도는 1967년 의암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인공섬이다. 논밭이던 이곳은 1980년대 들어 관광단지로 개발되었다. 섬 전체가 풀과 나무로 덮여 있어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봄·가을에는 캠핑 명소로 이름이 높았다. 2012년 강원도가 레고랜드 조성을 추진하면서 캠핑장은 폐쇄됐다.

춘천 중도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나온 지 40년이 넘었다. 시작은 1977년 국립중앙박물관 조사였다. 의암댐 건설 이후 의암호의 수위 변동이 심해지면서 땅이 깎인 게 계기였다. 침식으로 지층 단면이 드러나면서 오랜 기간 땅 밑에 잠들어 있던 문화재가 노출된 것이다. 이어진 조사에서 토기와 고인돌, 반달돌칼, 돌도끼 등이 나왔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는 ‘중도식 토기’라고 따로 이름 붙일 정도로 고고학적 가치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학계는 중도식 토기가 한반도 중부 세력이 중국 전국시대 문화권 및 한반도 북부 지역 문화권과 교류한 과정을 드러낸다고 본다.

레고랜드 유치는 강원도지사들의 숙원 사업이다. 처음 유치 계획을 세웠던 것은 2008년 김진선 전 지사로, 레고랜드 운영사인 멀린엔터테인먼트 본사를 직접 방문했다. 그러나 당시 강원도와 멀린엔터테인먼트는 투자 조건 문제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광재 전 지사도 레고랜드 유치를 추진했다. 이 전 지사는 직접 로스앤젤레스 레고랜드를 방문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으나 역시 투자 조건이 발목을 잡았다. 강원도는 2011년 최문순 지사 때에 멀린엔터테인먼트와 레고랜드 개발사업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당시 계획된 개장 시점은 2015년 상반기였다. 발표 당시 최 지사는 레고랜드가 “올림픽 못지않게 강원도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진 과정에서 최 지사는 주한 덴마크 대사를 만나 레고랜드춘천 유치의 협조를 당부했다. 덴마크는 레고그룹 본사가 있는 곳이다.

ⓒEPA독일 귄츠부르크에 위치한 레고랜드. 레고랜드는 프랜차이즈 테마파크다.

문화재 보호의 다양한 옵션

레고랜드는 프랜차이즈 테마파크다. 2012년 강원도는 레고랜드가 200만명 이상 관광객과 1만 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춘천 중도가 선사시대 유적지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굳이 이곳에 레고랜드를 유치한 까닭은 무엇일까?

춘천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매장된 문화재 규모가 이 정도로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이 드물었다”라고 말한다. 착공을 앞둔 2014년 매장문화재 발굴 전문기관 5곳의 1차 발굴조사 때 1400여 기의 청동기 유구(주거지·무덤· 사원 등 움직일 수 없는 문화재)가 나왔다. 고인돌 101기, 집터 917기, 구덩이 355기 등 대규모 마을 유적이었다. 단일 유적으로는 한반도 최대 규모였으나 레고랜드 건설을 확정한 강원도와 개발사로서는 ‘암초’였다. 일부 시민단체가 레고랜드 건설을 백지화하고 문화재를 완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건 1차 발굴조사 이후의 일이다.

건설공사 도중 문화재가 나왔다면 법적으로 후속 조치를 결정하는 기관은 문화재청이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매장문화재법)에 따라 “매장문화재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은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바와 달리 매장문화재법은 붓으로 흙을 털어내 박물관으로 가져가는 것만 문화재 보호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이 법 제14조 1호는 “문화재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발굴 전 상태로 복토(覆土)하여 보존하거나 외부에 노출시켜 보존하는 것(현지 보존)”도 문화재청장이 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정한다. 이 밖에 이전 보존(박물관 등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보존하는 것)과 기록 보존(발굴조사 결과를 정리하고 그 기록을 보존하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였다. ‘복토’란 노출된 문화재를 흙으로 도로 덮어 땅에 묻는다는 의미다. 반드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지표와 문화재 사이를 마사토나 모래 등 충전재로 채워 유적이 훼손되지 않게 보호해야 한다. 문화재청의 결정은 복토 보존과 이전 보존의 결합 방식이었다. 2000여 년 전의 문화재 위에 놀이기구를 짓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정해진 절차를 거친다면 그 자체로 위법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재 보존을 가장 우선으로 여긴다면 복토 보존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습기와 식생 등으로 인한 부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산하 기구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복토 보존 방식은 ‘플랜 B’다. 유적을 생각하면 개발행위 자체를 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는 게 제일 좋다. (문화재가 있는 곳에) 건설을 전면 금지하면 건설사나 지자체가 억울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복토 보존이라는 방식을 허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온전히 보존되더라도 ‘활용’ 측면이 문제라고 말했다. “복토 보존한 문화재는 전시할 수 없다. 그저 지표에 ‘청동기 집터’라는 팻말을 세우거나 모조품을 전시하는 정도다. 유적을 전시하는 것만 한 효과를 내기가 불가능하다.” 복토 보존은 합법적이고 흔히 사용되는 문화재 보존 기법이지만 토지개발이 전제인 기법인 만큼 한계도 명확하다고 말했다.

2014년 중도 유적에 대한 문화재청의 결정도 레고랜드 개발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환호(청동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까지 활용된 도랑으로 마을을 외침으로부터 방어하는 데에 쓰였다)와 주거지 유적은 복토 보존하고 고인돌은 이전 보존하도록 했다. 보존·전시하는 문화재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2016년 문화재청과 강원도는 환호를 추가로 보존하기로 했다. 레고랜드 개발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강원중도개발공사는 레고랜드 내부에 ‘유적공원’을 설치해 고인돌과 환호를 비롯한 중도 문화재를 전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발굴된 고인돌은 현재 중도 한편에 있는 비닐하우스형 보호시설 안에 임시로 보관 중이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결정이 난 뒤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놀이공원 아래 묻힌 문화재가 훼손될 것이라는 비판만은 아니다. 춘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의 오동철 운영위원장은 “테마파크 자체도 정상적으로 갈 수가 없다. 복토 보존한 지하를 파낼 수 없어서다”라고 말했다. 중도의 복토된 문화재는 현재 2m 두께 흙으로 덮여 있다. 공사 과정에서 문화재가 묻힌 2m 아래로는 땅을 파지 않는 것이 문화재청의 레고랜드 승인 조건 중 하나였다. 2016년 심의 당시 강원도 스스로 문화재위원회에 ‘허니셀’ 공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건물을 짓기 전 기초를 다지는 방식으로 지반에 벌집 모양 구조물을 까는 방식이다. 땅속 깊이 박는 말뚝(pile)을 대신하는 공법이다. 그런데 지난 6월 강원중도개발공사는 돌연 레고랜드 호텔과 전망타워 건물의 시공법을 바꾸겠다는 신청서를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했다. 지반이 약해서 안정성을 위해 말뚝을 박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재위원회는 불허 결정을 내렸다.

ⓒ연합뉴스레고랜드 유치는 강원도지사들의 숙원 사업이었다. 최문순 지사(왼쪽) 역시 이 사업이 “올림픽 못지않게 강원도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 보존과 별개의 내부 비리 문제도 불거졌다. 2015년 감사원 감사 결과, 시행사 엘엘개발(현 강원중도개발공사)로부터 강원도 소속 공무원들이 여비 명목의 돈을 받은 일이 있었다. 엘엘개발 전 총괄개발대표 민 아무개씨는 11억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약 5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욱재 전 춘천부시장도 연루되었다. 2018년 4월26일 대법원은 이 전 부시장에 대해 뇌물죄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확정했다. 민 대표로부터 양복과 양주 등을 수수한 혐의였다.

레고랜드 사업의 계약 조건이 강원도에 불리하다는 비판도 있다. 선사시대 문화재 보존을 일부 희생하고 도민 세금이 수백억원 단위로 드는 사업인데 운영사인 멀린엔터테인먼트에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는 것이다. 당초 강원도와 멀린엔터테인먼트의 계약에 따르면 강원도는 800억원을 투자하고 수익 30.8%를 가져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7월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지분이 3%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멀린 측이 추가 투자(초기 3000억원, 추가 2270억원)한 대가로 알려졌다.

10월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범수, 김용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멀린의 총투자금은 245억원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최문순 지사는 “현재까지 실제 입금된 금액은 245억원이지만 현물 투자 등 사업이 진행되면서 추가 투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대수익이 3%로 변경된 것에 대해 최 지사는 “도에서 투자하기로 했는데 멀린이 직접 투자하기로 해 임대수익 구조가 변경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0월12일 국정감사에서는 도종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레고랜드 부지 일부의 유물과 유적 조사가 생략됐다고 지적하자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레고랜드를 둘러싸고 온갖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지역 민심의 주류가 레고랜드 백지화는 아니었다. 레고랜드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여럿 생겨나고 이듬해까지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으나 전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레고랜드가 들어서면 춘천에 일자리가 생기고 지가가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시위에서 이들은 레고랜드 반대 단체들이 “시민의 꿈 짓밟는” “춘천시민 살인 행위”를 한다는 표어를 내걸었다. 지금도 춘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레고랜드 백지화 주장을 비난·조롱하는 누리꾼들이 있다.

ⓒ시사IN 신선영10월22일 중도유적지킴본부 회원들이 건설 현장에 천막을 치고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공사판’에서 입증되는 문화재의 가치

레고랜드 사업 추진 초기부터 반대운동을 해온 오동철 운영위원장은 “지금 춘천 여론은 ‘자포자기’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사업 추진 초창기 ‘문화재 보존을 위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측과 ‘지역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측이 대립했지만, 지금은 너무 오랫동안 많은 논란이 제기되어 모두 관심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지역 민심을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여론 동향에 민감한 정치인들의 공약이다. 레고랜드는 주요 의제가 아니었다. 간혹 ‘레고랜드 전면 백지화’를 공약하는 지역 정치인도 등장했지만 당선은 늘 레고랜드 개발을 전제로 ‘연계효과 확보’를 말하는 후보들 몫이었다. 최근 몇 년간 매해 국정감사에서 레고랜드 개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개발 도중 문화재가 나와서 갈등을 빚은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매장된 문화재의 가치는 이처럼 ‘공사판’에서 우연히 입증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조사나 기록을 통해 문화재가 묻혀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땅 밖으로 나와야 그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발굴이다. 1997년 말 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던 풍납동 일대에서 백제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와 긴급 발굴에 나선 것이다. 이전까지 풍납토성은 몽촌토성을 방어하는 성이라고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 공사를 중단하고 정밀 발굴이 진행된 뒤 ‘풍납토성이 바로 백제 도성인 하남 위례성’이라는 견해가 힘을 받게 되었다. 고고학계는 환호했지만 지역 주민들은 생각이 달랐다. 재건축조합 관계자 일부가 백제 유적을 파괴하고 흙으로 덮어버렸다. 그러나 결국 공사는 좌절되었다. 풍납토성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근래 진행되고 있는 유사 사례는 경남 창원의 제2안민터널 공사다. 2016년 착공한 터널인데, 공사 절반이 진행된 지난 9월 무덤군과 유물 등 대규모 문화재가 발견됐다. 문화재청이 현장에서 연 전문가 검토회의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삼국시대 복합 유적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공사는 전면 중단된 상태다. 제2안민터널 조기 개통은 허성무 창원시장의 공약이며, 이 지역 교통정체를 해소할 대표적 기반 시설로 꼽혀왔다. 안민터널 유적이 레고랜드와 풍납토성 중 어떤 길을 따를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작지 않은 갈등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기자명 춘천·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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