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5주년이 지나도록 여수·순천 주민들이체감해온 설움은 남다르다.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그해 가을 일어났던 이른바 ‘여순반란사건’. 당시 이 지역의 수많은 주민은 덮어놓고 ‘불량 국민 취급’을 받아 떼죽음을 당했다. 이후 천형과도 같은 역사의 주홍글씨 아래서 한 많은 삶을 이어왔다. 여순사건 당시 이 지역에서 군경 우익단체가 자행한 야만적 살육의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 치유의 필요성을 공감받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일선에서 발로 뛰며 비인도적 국가폭력의 진실을 드러낸 이들 중에서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센터장 주철희 박사가 있다.

1965년 여수 태생인 주 박사에게 고향 여수는 애증의 무대다. 어릴 때부터 금기시되던 여순사건을 연구해 대학원에서 ‘예술을 통한 여순사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여순사건 실태조사와 연구를 벌이던 그는 내친김에 뿌리까지 손을 뻗었다. 3년 동안 발로 뛰어 일제강점기 여수 지역의 수탈과 저항의 역사를 그려냈다. 〈일제강점기, 여수를 말한다〉는 오늘날까지 여수 지역에 남겨진 일제의 군사기지 탐사 보고서 성격을 띠고 있다. 일제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여수에 구축한 군사기지에 관한 문헌을 검토하고 3년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그 흔적을 세상에 드러냈다. 주씨는 이 책에서 여수시 신월동 수상비행장으로 알려져 있던 여수 항공기지(해군 202부대)를 건설할 당시의 공사내역서와 ‘여수 항공기지 위치도’를 발굴했고 거문도의 ‘거문도 수비대 진지 배비 요도’도 발굴해 공개했다.

책이 ‘여수’에 한정되어 있지만 결코 여수 지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역을 막론하고 일제가 침략전쟁에 광분하여 저지른 끔찍한 역사를 통찰했다. 그래서 친일의 역사 청산과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한 매우 값진 작품으로 여겨진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