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 없는 코끼리가 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스리랑카에서, 남아프리카에서 점점 더 많은 코끼리가 상아를 포기한 채로 태어난다. 인간의 밀렵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죽음이 반복되는 동안 코끼리들은 차라리 퇴화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런 식이라면 상어는 지느러미를, 밍크는 털가죽을, 거위는 간을, 곰은 담낭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몸의 일부를 잃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다행일까. 잃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전부인 동물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코끼리가 엄니를 포기하는 슬픈 현실을 숀 탠의 〈이너 시티 이야기〉는 기묘한 판타지로 비튼다.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물다섯 종류의 동물 이야기들은 현실이 아니지만 하나같이 진실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인간의 세계와 동물의 세계가 조각난 꿈처럼 뒤섞여 있다. 빌딩 꼭대기에 사슴이 사는 숲이 있는가 하면, 80층 빌딩 전체가 악어들이 사는 늪지다. 낮에는 나비 수억 마리가 빛의 파도처럼 무리 지어 도시에 날아들고, 밤에는 텅 빈 도로 위로 죽은 말의 영혼들이 질주한다. 하늘에서는 새끼 범고래가 어미의 목소리를 들으며 외로이 헤엄치고, 고속도로 위에서는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코뿔소가 인간의 총에 맞아 죽어간다. 누군가의 방에서는 햄이 저며지듯 돼지가 조금씩 몸을 잃어가고, 또 누군가의 거실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큰 고양이에게 지친 삶을 위로받는 엄마와 딸이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이너 시티’에서 일어난다.

곰들은 담낭을 포기하는 대신 인간의 말을 배운다. 발언권을 얻은 곰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곰들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자신의 고통과 인간의 탐욕에 대해 곰들은 할 말이 많다. 당연히 소송은 인간에게 불리하다. 그간 쌓은 업보가 좀 많은가. 손해와 채무도 막대하다. 고발당하고 보상하고 종내는 공평하게 나눠야 할 테니 누군가는 뒤늦은 후회를 할 테지만 또 누군가는 약이 오르고 속이 쓰릴 것이다. 다행히 이런 식의 문제를 해결할 아주 쉽고 익숙한 방법이 있다. 인간은 영리하니까.

그렇게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곰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양심의 가책은 없다. 때마침 밀실에서 졸속 처리된 ‘정의’에 관한 법안 덕분이다. 다시 세상은 질서를 유지하고 평화를 되찾는다. 인간들은 안도한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곧 소들이 변호사와 함께 법원으로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이거다. 바로 이런 결말 때문에 내가
숀 탠을 좋아한다. 그림책과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이 이야기들 속에서 숀 탠은 이런 식의 짜릿한 결말을 하나의 문장이나 그림으로 보여준다.

스물다섯 번째 동물은 인간

‘이너 시티’는 행정학 용어로, 낮에는 밀집되었던 인구가 밤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거주 기능을 상실한 도시를 뜻한다. 온전한 삶의 장소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된 도시는 관계가 조각나버린 지금 이 세계의 은유이기도 하다. 도시의 황량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배경으로 한 이 기묘한 동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다정한 악몽 같다. 깰 수 없거나, 깨고 싶지 않은. 스물다섯 번째 동물은 인간이다. 마지막 동물의 이야기까지 읽고 나서야 비로소 책의 첫 문장이 선명해진다.

‘세상의 동물들은 고유한 이유로 존재한다.’ - 엘리스 워커

기자명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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