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9월10일 제주 신산리 앞바다에서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면 활주로가 시작될 곳이다.

열세 살부터 전복을 땄다. 남편도 같은 마을 사람이었다. 덕분에 평생 제주 신산리 앞바다를 떠날 일이 없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로 키운 자식들은 모두 육지로, 해외로 떠났지만 강형년씨(75)는 여전히 신산리 앞바다에서 물질을 한다.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면 활주로가 시작될 곳이다.

오전 내내 물질을 한 강씨의 망사리(그물망)에는 보말(바다고둥)뿐이었다. 그가 느끼기에 바다에서 소라와 전복이 나지 않게 된 건 5~6년 전부터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제주공항 근처 제주하수처리장에서 정화되지 않은 폐수가 곧장 바다로 방출되는 모습을 찍어 내보낸 때도 그 무렵인 2016년 9월이었다. 정화시설이 노후한 데다 처리 용량도 초과한 상태였다. 2016년 상반기 중 제주하수처리장에서 처리 가능한 수준의 폐수가 배출된 날은 단 5일뿐이었다.

쓰레기도 이미 적정 처리 수준을 넘긴 상황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제주도는 주민 1인당 생활폐기물 배출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서울특별시에 사는 주민 한 명이 하루에 쓰레기 1㎏을 배출했다면, 제주도는 2㎏를 배출했다. 2019년 3월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북부소각장에서 감당하지 못한 쓰레기가 필리핀 민다나오섬으로 불법 수출된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청정 제주’는 어쩌다 폐수와 오물로 뒤덮이게 됐을까. 제주도는 2013년 ‘연 1000만 관광객’ 신기록을 세웠다. 저비용항공기 운항이 늘어나고 중국 관광객이 즐겨 찾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세계적 휴양지인 발리(제주도 면적 3배)나 하와이(15배)조차 연 1000만 관광객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수치다.

관광객이 밀려들자 국토교통부(국토부)는 2013년 8월 ‘제주 항공수요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18년부터 현 제주공항의 활주로가 혼잡해지기 시작할 것이며, 2035년에는 연간 이용객이 4549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이를 기반으로 국토부는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를 진행했다. 당시 검토된 방법은 세 가지였다. (1)현 제주공항을 확장하는 방법 (2)현 제주공항을 폐쇄하고 큰 공항을 새로 짓는 방법 (3)현 제주공항을 그대로 두고 제2공항을 짓는 방법. 연구를 수행한 용역팀은 이 중에서 제2공항 건설을 최적의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를 최적의 후보지로 제안했다.

2015년 11월10일 국토부는 성산읍 신산리에 제2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제주공항 부지 100만 평보다 1.5배 넓은 150만 평 규모였다. 3.2㎞ 길이 활주로가 신산리에서 시작해 난산리를 거쳐 수산리에서 끝나는 계획이었다. 

주민들은 ‘제주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대책위)’를 만들었다. 제2공항 예정 부지에 들어가는 5개 마을 중 반대 의견을 채택한 신산리, 난산리, 수산리 3개 마을이 연대했다. 2017년 10월 대책위는 제주도청 앞에 천막을 쳤다. 난산리 주민 김경배씨가 42일 동안 단식에 들어갔다. 결국 국토부는 2018년 6월 사전타당성 검토를 재검증하기로 했다.

주민들은 재검증조차 투명하게 진행되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이에 대책위는 국토부와 공동으로 재검증 과정을 감시할 수 있는 검토위원회를 꾸렸다. 하지만 활동 기간이 짧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2018년 12월 검토위 활동이 일방적으로 종료되자 난산리 주민 김경배씨는 다시 단식에 들어갔다. 여기에 제주도의회, 지역구 의원, 여당까지 나서자 결국 2019년 4월 국토부는 애초 합의한 대로 검토위 활동을 연장하기로 했다.

다시 열린 검토위에서는 뜻밖의 이슈가 튀어나왔다. 사전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하도급 연구용역으로 수행됐던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보고서가 공개된 것이다. 당시 국토부가 용역이 끝난 뒤 보안업무 규정에 따라 삭제했다고 말한 보고서였다. 해당 보고서는 ‘현 제주공항의 항공시스템을 개선하고 보조 활주로를 활용할 경우,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예측한 2035년 기준 이용객 45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사전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폐기된 ‘현 제주공항 확장’ 방안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현 공항 확장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제2공항 건설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그림3〉 참조). 결국 국토부와 제주도는 10월19~20일 토론회를 열어 ADPI 보고서에 언급된 ‘현 공황 확충 방안’의 실현 가능성을 다루기로 합의했다. 박찬식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은 ‘확장이냐 신설이냐’라는 질문 자체를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ADPI 보고서 내용처럼 현 제주공항에 더 많은 비행기를 띄운다면 그 주변 지역의 소음 피해도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확장이든 신설이든 관광객을 더 받겠다는 걸 전제로 하거든요. 그 전제가 옳은가부터 따져봐야 해요.” 관광객을 더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첫 단추부터 제주도민이 결정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대 관광객 수’와 ‘적정 관광객 수’는 다른 문제다. 전자는 수치로 추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지만, 후자는 해당 지역의 환경수용력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제주도뿐만 아니라 제2공항 사업을 추진하는 국토부 역시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한다. 2019년 5월 제2공항 관련 공개토론회에서 “제주도가 연간 4500만 이용객을 받을 수 있다는 검토가 된 상태에서 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건가”라는 질문에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 수요를 추정할 때 그런 부분은 저희가 반영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공항은 활주로 완공이 전부인 시설이 아니다. 공항을 지으면 그만큼 더 들어오는 관광객을 받기 위해 호텔·식당·도로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항은 개발의 결과이자 개발의 시작이기도 하다.

2020년 10월 현재 제주 제2공항 사업은 환경부로부터 전략환경영향평가 동의만 얻으면 첫 삽을 뜨게 된다.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대책위는 국토부와 제주도에 공론화 조사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순히 찬반만 묻는 주민투표보다 신고리 5·6호기를 결정했던 것과 같은 숙의형 민주주의 방식을 희망한다. 제2공항 활주로가 시작되는 신산리 주민 강석호씨(76)는 주민들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도지사도 다른 데 출마하면 그만이고, 국토부 공무원도 퇴직하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평생 여기서 살아갈 거야. 그 뒷감당은 우리 주민들이 해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결정을 해야지.”

※더 자세한 내용은 이번 주 발행된 〈시사IN〉 684호 기사 '제주 제2공항 건설 뒷감당은 누가 하나'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기자명 제주/글 나경희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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