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에 등록된 어선 50척은 정해진 어장 내에서만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안전 어업 지도 및 중국 어선 단속을 하는 지도선이 저 멀리 보인다.
저녁은 삼겹살이었다. 꽃게는 이미 점심때 배에서 먹었다. 아침에 ‘무슨 여자가 밥을 그렇게 많이 먹느냐’고 기자를 구박했던 최명석 선장(49)은 점심때에는 ‘왜 수게를 집냐’고 나무라며 알이 꽉 찬 암게 껍데기를 기자에게 내밀었다. 삼겹살을 먹으면서는 계속 소주를 마신다고 혼났다. ‘눈칫밥이 더 맛있다’는 말이 맞나보다. 최 선장이 연방 구박하는데도 기자 입에는 무엇이든 많이 들어갔다. 연평도(인천 옹진군 연평면) 사람들은 대부분 최 선장 같았다. 외지인이라면 무조건 경계하고 무뚝뚝하게 대하면서도 속에 있는 인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물 가득 꽃게 올라오면 살 맛이 난다”

4월23일 융진호는 분명 풍어였다. 준비한 고무대야를 다 채웠지만 그물을 건져올릴 때마다 꽃게는 계속 올라왔다. 해가 져야 들어갈 거라던 선원들은 그물 11개를 건져보고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선체 청소를 시작했다. 최 선장은 “아직 철이 아니라 꽃게가 없다. 이만큼 잡아서는 어림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손은 고무대야에 들어가지 못한 꽃게에 자꾸만 물을 뿌리느라 바빴다. 어림잡아 꽃게만 1000만원어치 잡았다. 연평도에서 잡힌 꽃게를 모아 인천항으로 가져가는 이동선 선장은 “쟤는 만날 죽는 소리만 한다. 이 배가 연평도에서 이거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삼겹살을 굽는 동안 다른 배 선원들이 찾아와 친한 선원을 찾았다. 융진호 선원 강남선씨(59)는 “여기는 어떤 배가 얼마만큼 잡았는지 금방 소문이 난다. 좋은 어장이 어디인가 정보를 캐려고들 그런다”라고 말했다.

연평도에서는 1년에 6개월만 꽃게를 잡을 수 있다. 4~6월에 잡고, 7~8월은 ‘휴어기’라 쉬어야 한다. 그리고 9~11월에 또 잡는다. 봄에는 5월이나 되어야 꽃게가 잘 잡힌다. 대체로 봄보다는 가을에 잘 올라온다. 안 잡혀도 문제지만 꽃게가 너무 많이 잡혀도 연평도 사람들은 걱정이다. 지난 가을에는 너무 잡혀서 1kg에 2만원도 못 받았다. 10년 전에는 1kg에 3만원이 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중국산도 많고 냉동 꽃게도 많다.

이맘때면 연평도에 몰려드는 외지 선원들

이래도 손해, 저래도 손해라고 엄살을 떨지만 뱃사람은 꽃게가 많이 잡히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돈 많으면 배 타겠냐’던 원진석씨(35)는 소주를 몇 잔 들이켜고는 “그물 가득 꽃게 올라올 때가 제일 좋다. 그 맛에 배를 탄다”라고 말했다. 뜻밖에 풍어를 만난 이날 원씨는 배에서 신나게 뛰었다. 배 위로 올라오는 그물에 서서 손으로는 큰 꽃게를 떼어내고, 발로는 그물에 걸려오는 작은 가재 따위를 밟는 모습이 춤을 추는 듯했다. 밟힌 잡어들은 그물이 다시 물속에 들어갔을 때 미끼노릇을 한다.

꽃게잡이 철이면 연평도 주민들은 거의 매일 아침 배 위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배에서 꽃게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선원은 갑판 한쪽에 네 겹으로 이불을 쌓아두고 그물에서 떼어낸 꽃게를 안착시킨다. 혹시 서로 물어뜯을까봐 집게발 한쪽을 잘라 흐르는 물속에 담근다. 꽃게는 죽어도 안 되고, 다쳐도 안 된다. 꽃게 그물에는 50cm가 넘는 자연산 광어, 농어, 대구, 낙지, 간재미, 아귀 등 값나가는 생선이 심심치 않게 붙어 올라왔다. 광어는 지나가는 지도선에 두 마리를 인심 쓰고도 두 마리가 남았다. 처음에는 꽃게와 함께 물이 흐르는 고무대야에서 숨을 쉬던 생선은 꽃게가 많아지자 한 마리씩 밖으로 끌려나왔다. 마지막으로 대구를 끌어내면서 최 선장은 “대구야, 넌 죽지 마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선장은 선원뿐 아니라 배 안에 있는 모든 산 것의 생사를 결정한다.

최명석 선장은 10년째 융진호를 탄다. 연평도에서 한 배를 오래 타는 일은 드물다. 선주는 철마다 자기 배에 오를 사람을 새로 뽑는다. 연평도 꽃게잡이 배의 크기는 9.77t. 선장 하나에 선원 4~5명이 붙는다. 선주를 보고 사람이 모이기도 하고, 배를 잘 모는 선장 아래 선원이 붙기도 한다. 손발이 잘 맞는 선원끼리 팀을 꾸려 선주를 찾기도 한다. 최 선장에 대한 융진호 선원들의 신뢰는 대단했다. 원진석씨는 “선장이 워낙 배를 잘 잡는다. 꽃게 나는 데를 잘 찾고 사람을 잘 다룬다. 위험한 일에도 잘 대처해 배에 사고가 없다”라고 철도 아닌데 풍어를 맞은 까닭을 분석했다. 반면 최 선장은 틈만 나면 선원들을 칭찬했다. “우리 배에는 일등 선원만 모였다. 전부 선장 출신이다. 다른 데에서 몇 천(만원)씩 얹어주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도 안 간다.”

배에서 꽃게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융진호 선원들이 그물에서 조심스럽게 꽃게를 떼어내고 있다
연평도 바로 아래에 있는 덕진도에서 나고 자란 최 선장과 달리 연평도 뱃사람은 이곳 출신이 드물다. 대부도에서 살던 이인수씨(69)는 4개월 전 연평도로 왔다. 그는 “우리 배는 전국구다. 강원·충청·인천 다 모였다”라고 말했다. 연평도 해양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임영호 순경은 “배 타는 사람 70%가 외지인이다. 전국에서 돈 벌러 온다. 요즈음에는 20대도 온다”라고 말했다. 꽃게철을 맞아 외지에서 온 선원에게 연평도는 ‘최북단 섬’이라는 의미는 없었다. ‘돈벌러 배 타는 곳’ 중 하나였다.

연평도에서 배를 타면 꽤 큰돈을 모을 수 있다. 수입이 짭짤한 데다 돈 쓸 일이 없다. 섬에 유흥업소가 없고, 선주가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융진호 선주 김광춘씨(47)는 “장화·장갑도 다 사주고 담뱃값까지 준다”라고 말했다. 배에서 난 수익은 선주와 선원이 6대4로 나눈다. 꽃게철이 시작되기 전에 500만~1000만원 사이 선수금을 주고 선원을 데려온다. 나머지는 철이 끝나면 준다. “꽃게가 잘 잡혀서 남은 돈에 웃돈까지 얹어주면 서로 기분이 좋다. 선수금만큼도 안 잡히면 다시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하다.” 김광춘씨의 말이다. 작년에는 서로 한몫씩 챙겼다. 겨울에 외지로 나갔던 선원들은 꽃게철이 다가오자 다시 연평도로 왔다.

오전 9시30분 갑판 위에서 꽃게찜과 병어회로 이른 점심을 먹는 선원들.
연평도 원주민은 주로 논농사를 짓고 민박과 식당을 한다. 이 섬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 중 절반은 군이나 경찰과 관련됐다. 연평도 한가운데 군부대가 있고 북쪽에는 가는 곳마다 군 시설이 있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아주머니들은 거의가 군인 가족이다. 연평도 민박집에는 요즘 방이 없다. 군 시설을 증강하느라 곳곳에 공사를 벌여놓아 인부들이 방을 다 차지했다.

선장도 배의 움직임을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곳이 연평도다. 섬에 등록된 어선 50척은 지도함정 16척이 평균 2마일(3.2km) 간격으로 둘러싼 사각형 어장 안에서만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사각형 어장 북쪽으로는 북한이라 갈 수 없고, 남쪽에서는 인천 배만 고기를 잡을 수 있다. 봄 꽃게는 어장 서쪽에서 많이 잡히고, 가을꽃게는 동쪽에서 잘 잡힌다. 꽃게 잡는 맛에 배를 타는 선원이라면 지도선의 눈을 피해 선을 넘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하다. 그 때문에 연평도 모든 지도선과 어선이 주파수를 공유하는 무선통신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기 전에 선 안으로 들어오라”는 지도선과 “물때 맞춰 내려가겠다”라며 온갖 핑계를 대는 어선 간의 신경전이 하루종일 벌어진다. 연평도에서 배 타는 사람들은 “함정 16척 띄울 돈을 그냥 우리한테 달라. 그러면 우리 모두 꽃게 안 잡아도 살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꽃게는 너무 많이 잡혀도 적게 잡혀도 손해다. 지난해 가을 꽃게 1kg 가격은 2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연평면 어촌계장은 융진호 선주 김광춘씨다. 그는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 수소문 끝에 연평도에서 그와 얼굴을 맞댔지만 얼굴을 모르는 기자에게 “어촌계장 지금 자리에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취재진에 대한 경계가 심하다. 그는 “매번 언론이 꼬여서 취재에 응해주면 ‘연평도 위험하다’는 기사만 쓴다. 기사를 본 친척들한테서 위험한 데 살지 말고 (육지로) 나오라는 전화가 빗발친다. 나이 먹어서 객지 나가 뭘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기사 끝에 ‘연평도는 평온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쓸 거 다 안다”라고 말했다.

김 계장을 만나기 이틀 전에도 연평도에 중국 어선이 나타나 긴장감이 감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곳에서 4년째 민박집을 운영하는 오수우씨(60)는 “내가 봤는데 중국 배 안 왔다. 오면 다 보인다”라며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날 중국 어선이 오기는 왔다. 김 계장과 오씨를 만난 당일에도 중국 어선 4척이 해군에 나포되어 해경에 넘겨졌다. 그래도 주민들은 “내 눈으로 안 봤으면 안 온 것이고 와도 무서울 게 없다”라고 말했다. 해군이 중국 어선을 나포한 시각에도 학생은 학교에 갔고, 어부는 다음 날 배 탈 준비를 했다.

“북한, 군사력 증강 힘쓰는 게 차라리 다행”

오씨는 북쪽 바다 건너 섬 하나를 가리켰다. ‘돌섬’이라 불리는 그곳은 중국 어선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다. 예전에는 중국 선원들이 배를 세워놓고 밥을 지어 먹기도 했다. NLL(북방한계선) 바로 북쪽에 있어서 남한 국적 배가 가도 불법이다. 연평도 사람들은 “남한 배가 못 가는 곳에서 중국 어선이 꽃게 잡고 밥 먹는 것이 분하기는 하지만 무섭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3년 전에는 융진호가 남한 어장을 침범한 중국 어선 4척을 직접 끌고 온 일도 있다. 아직도 나무 선체를 쓰는 중국 배는 ‘잘 나가는’ 엔진이 달린 융진호에 속수무책으로 끌려왔다. “배 안은 돼지우리 같고, 선원들은 못 먹은 데다 씻지 않아 노숙자가 따로 없었다. 불쌍할 정도였다”라고 김광춘 계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김 계장과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라디오에서 개성공단과 관련된 뉴스가 나왔다. 남북 간 대화가 오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김 계장은 말이 없었다. 걱정해서가 아닌 듯했다. “남북 문제에 관심이 없다”라고 그는 말했다. “북한이 서해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는 데 힘을 쏟아 차라리 다행이다. 그 힘으로 수산 자원을 개발했으면 우리가 잡을 꽃게도 없었을 거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파고(파도가 칠 때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 사이의 높이)가 3m를 넘으면 배가 바다에 나갈 수 없다. 연이은 폭풍우에 연평도 배는 4월20~21일 이틀간 전부 선착장에 묶여 있었다. 파고가 2.5m로 내려앉은 4월22일, 겨우 출항한 연평도 어선도 대부분 오전에 뱃머리를 돌려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김 계장은 “이런 날은 꽃게도 안 잡히고 괜히 무리하다 사람만 다친다”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순이 넘은 김씨가 배에서 목을 다쳐 헬기를 타고 인천으로 이송됐다. 사람들은 ‘이러다 노인네 죽어나오는 건 아니냐’며 걱정했다. 2000명도 살지 않는 작은 섬 연평도에는 무수한 생사의 갈림길이 있었다. 북한의 위협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기자명 박근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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