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2019년 3월2일 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 당시 호찌민 묘를 참배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미국 대선 전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의 불씨를 살리려는 정부의 ‘안타까운’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 계획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확진(10월2일)으로 불가피하게 취소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애초 10월4~6일 도쿄에서 열리는 ‘쿼드(QUAD-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등 4개국)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후 10월7일 몽골을 거쳐 서울에 와서 8일까지 1박2일 체류할 예정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은 우리 정부가 지난 9월 초부터 ‘종전선언’을 화두로 물밑에서 전개해온 북·미 대화 중재 노력의 꼭짓점에 해당하는 일정이었다. 정부 주변에서는 그의 방한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판문점에서 폼페이오와 김여정 회담이 실현되거나 그의 방한 메시지를 발판으로 김여정이 워싱턴을 방문할 가능성까지 거론돼왔다(〈시사IN〉 제681호 “북한의 도발 중단은 ‘압박’ 아닌 ‘선물’ 때문” 참조). 이른바 ‘10월의 리틀 서프라이즈’ 시나리오.

그동안 언급돼온 ‘10월의 서프라이즈(옥토버 서프라이즈)’는 3차 북·미 정상회담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은 일정상 촉박하기 때문에 그 아래 단계인 김여정의 깜짝 방미 가능성이 거론돼왔다. 그래서 ‘리틀(little·작은)’이라는 말을 앞에 붙인 신조어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 9월21일 저녁 북한 해상에서 벌어진 우리 측 민간인 피살 사건으로 순조롭게 추진되는 듯 보였던 ‘10월의 평화 이벤트’에 첫 번째 난관이 조성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전례 없는 신속한 사과로 파고를 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난데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그 여파로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 일정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난관이 덮친 셈이다.

그래도 정부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는 얘기가 정부 주변에서 들려온다. 10월 말에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을 다시 추진한다는 것이다. 10월3일(현지 시각) 미국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의 아시아 방문 일정 축소를 발표하면서 “폼페이오 장관은 10월에 아시아 재방문을 예상하고 있으며 일정을 다시 잡기 위해 작업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10월 중에 한국 방문 일정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 ‘작업’하겠다는 얘기다.

ⓒAP Photo10월2일 크로아티아를 방문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10월 중 재방한과 관련해 현재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방안은 매년 10월20일께 한·미 간에 정례적으로 열리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활용하는 것이다. 한·미 국방장관이 주체인 SCM을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2+2)’로 확대해 폼페이오 장관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2+2)’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시작해 2년에 한 번씩 4차례 열렸으나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을 끝으로 열리지 않았다. 2017년 6월30일 문재인 정부 들어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2+2 회의의 정례화’ 합의가 이뤄진 바 있는데 이번에 그것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이 다시 실현돼 한·미 양국이 종전선언을 비롯한 대북 메시지를 내놓는다 해도 그 파괴력은 이전에 비해 많이 약화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방한이 다시 추진된다면 현재로서는 한·미 SCM이 정례적으로 열려온 10월20일께가 유력한데 그로부터 2주 뒤가 미국 대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확실하게 승기를 잡은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바이든 후보에게 열세인 상황이 계속된다면 추진하는 쪽도 힘을 받기 어렵고 북쪽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이 다시 성사된다 해도 국무장관으로서 임기를 마무리하는 ‘이별여행’이 되거나 미국 대선까지 남은 기간 북한의 도발을 관리하는 선을 벗어나기 힘들리라 예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23일 새벽 제75차 유엔총회 연설을 하기 직전, 북한 해역에서 발생한 한국 측 민간인 피살 사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통전부를 통해 신속하게 사과함으로써 사태 확산을 막은 점이나 10월2일 그동안 잠적하다시피 했던 김여정의 공개 활동을 일부러 노출한 것 등을 볼 때 북측도 ‘10월의 서프라이즈’를 기대감을 갖고 지켜봐온 것으로 판단된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시한 종전선언 구상은 사실 지난 7월10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밝힌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여정은 당시 담화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제재 완화’라는 기존 방식 대신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를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종전선언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출발점이 된 한국전쟁이 이제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김여정 담화가 요구한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북·미 대화를 재개할 명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부 외교안보 당국은 이 같은 종전선언 아이디어로 북·미 양국을 다시 한자리에 마주앉게 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거듭해왔다. 9월8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코로나19와 홍수·태풍 피해를 위로하는 친서를 비밀리에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이튿날인 9월9일 서훈 안보실장은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안보실장과 통화해 “향후 수개월이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 공감하고 빠른 시일 내 대면 협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당일 이미 최종건 외교부 차관이 방미 일정을 시작해 미국 국무부 측과 의사 타진이 이뤄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9월15일 종전선언과 동북아 공동방역 등을 키워드로 한 대통령의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대한 녹화가 진행되었다. 9월17~20일 방미한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을 통해 미국 조야에 대한 배경 설명이 다시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9월27일부터 30일까지 방미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실무 조율까지 마쳤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셈이다.

이도훈 본부장과 회담한 비건 부장관은 “북한과의 외교 진전을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논의했다”라며 ‘북한의 관여’를 촉구했다.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DVD를 구하고 싶다’는 김여정의 동참을 촉구하는 손짓이었다. 그리하여 10월2일 김여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으나 이번에는 코로나19가 발길을 붙잡은 셈이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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