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는 축소되었지만, ‘장자연 리스트’ 등장인물들의 인권은 어찌나 잘 보호되는지 여기가 과연 앰네스티에서 인권 침해 실태를 근심한 나라가 맞는지 몹시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침해되어도 되는 인권 따로 있고, 침해되면 안 되는 인권 따로 있는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는 것을 ‘눈 가리고 아웅’으로라도 모른 척할 수 없는 나라, 봄이 왔지만 돈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검게 탄 육신으로 증명한 채 죽어간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은 봄 햇살이야 따뜻하건 말건 여전히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나라,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조가 4년째 싸우고 있는 이 나라에서 ‘힘센 아저씨’들이 서로를 지켜주는 벽은 이토록 두껍다.

아무리 예뻐도 ‘부자 아빠’ 없으면 무용지물

우리는 흔히 ‘연대’를 말하고 또 꿈꾸지만, 이 연대라는 놈은 그 아저씨들 사이에 있는 연대가 진짜다. 힘세고 돈 많은 아저씨들은 서로를 얼마나 소중하게 지켜주는지, 장자연 몇 명이 죽어나가도 도무지 흔들릴 성싶지 않다. 아마 그것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그것은 가장 튼튼했고, 또 튼튼할 연대니까.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젊은 여자아이의 삶은, 특히 얼굴이 좀 예쁘장한 아이의 삶은 얼마나 편할까. 그리고 ‘된장녀’ 따위 이름을 붙이면서 그녀들을 미워하기는 너무나 쉽다. 그 끓어오르는 증오의 이유는 대부분 그녀들이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고 뭔가를 얻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예쁜 계집애로 태어나봐야 그렇게 부러움 섞인 증오를 받으면서 살려면 ‘부자 아빠’ 없이는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유력 일간지 기자의 귀띔에 따르면 성상납과 술접대 등을 강요받는 여성 연예인의 경우 한부모 가정이나 고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제보를 받았다고 한다. 장자연도 그랬다.

여자애들은 알랑대기만 하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다. 실상은 예쁘면 건드리는 바람에 손 타서 성질만 버리고, 못생기고 뚱뚱하면 그런 대로 구박받아서 성질만 버리는 게 여자애들의 삶이다. 예쁘장하면 간혹 뭔가 얻는 수도 있겠지만, 장자연이 그랬듯 받은 것보다 훨씬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다 떡고물 얻어 먹어봤자 그것도 몇 년이면 그만, 나이 들었다고 뒷방으로 꺼지거나 알아서 박박 기어야 하는 삶이 기다린다. 남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누구나 싸움 잘하고 학벌 좋고 인망 두텁고 돈 잘 벌고 집안까지 좋은 ‘엄친아’가 될 수 없듯이, 젊은 여자 중에도 ‘된장녀’라고 손가락질받을 만큼 잘 먹고 잘사는 여자는 극히 드물다. 나이가 들수록 전자오락처럼 스테이지만 바꾸어 지옥이 계속된다. 부자 아빠나 부자 오빠를 찾을 때까지.

심지어 여자애들은 그 눈곱만 한 떡고물을 가지고, 혹은 부자 아빠나 부자 아빠 후보를 두고 서로 경쟁하면서 그 과정에서 다치고 희생된다. 간혹 발랑 까진 신입생 여자애들이 어수룩한 복학생 등쳐 먹거나 소개팅에 나온 여자가 제 지갑 한번 안 열었다고 해서 젊은 여자의 인생이 다 그렇게 누워서 떡 먹듯 수월한 것이 아니다. 그녀들의 지옥이란 아무도 그 따위 것이 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을뿐더러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으려는 곳이기 때문에 한층 더 어둡다. 그 지옥에 갔다 와봤거나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여자애들은 그저 마음 아파하는 수밖에 없다. 저 힘센 아저씨들의 연대와 달리 우리 같은 계집애들이 할 수 있는 연대는 고작해야 장자연이 스무 살 남짓한 후배 연예인을 대신해 접대 나간 거라든가, 지금의 나처럼 화내면서 울어주는 수밖에 없으니까. 아, 캄캄하다.

기자명 김현진 (에세이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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