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3월11일 경기도 문화의전당에서 온라인 생중계되는 연극 〈브라보 엄사장〉의 리허설 모습.

“브라보!” “브라바!” 배우들이 노래를 마치자 채팅창에 글귀가 올라왔다. 9월16일 저녁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온라인 공연에 대한 환호였다. 공연이 끝난 뒤 “다음에 유료로 공연해도 보러 올게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네이버TV는 이날 〈세빌리아의 이발사〉 외에도 연극·뮤지컬 등 공연 4개를 같은 시간대에 송출했다. 조회수는 3000에서 최대 2만까지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온라인 공연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9월 한 달간 매일 서너 편 이상의 공연이 네이버TV, V라이브 등 플랫폼에서 온라인으로 방영됐다. 음악 콘서트뿐만 아니라 뮤지컬, 오페라, 연극, 무용 등 공연장 밖에서 보기 어려웠던 공연 생중계도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무료 공연이다. “안방 1열” 공연은 반응이 좋다. “(채팅으로) 수다 떨면서 보는 게 새로운 경험”이라는 이도 있고, “오페라는 처음인데 배우들의 실력이 출중해서 놀랍다”는 이도 보였다.

정작 무료 공연을 하게 된 제작자들은 울상이다. 처음부터 무료·온라인으로 기획된 공연은 거의 없다. 정부가 발표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하필 공연계 대목인 9월과 겹쳐 오프라인 공연이 대거 취소되는 바람에 벌어진 사고에 가깝다. 수개월 이상 준비 끝에 좌석 예매까지 마친 공연이 막을 올릴 수 없게 되면서 피치 못하게 온라인으로 상영한 것이다. 무용 공연을 온라인으로 무료 상영한 한 극단 관계자는 “공연이 취소되면서 티켓을 전부 환불했다. 상영 플랫폼 쪽에서 돈을 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그쪽에 스트리밍 비용을 냈다”라고 말했다. 공짜 공연의 실상은 참사의 부산물이다.

유료 온라인 공연이 없지는 않다. 아이돌 스타들이 출연하는 작품들은 특히 주목받았다. 뮤지컬 〈귀환〉(9월24~26일), 뮤지컬 〈모차르트!〉(10월3~4일), 〈광염소나타〉(9월18~27일)가 대표적이다. 각각 EXO 출신 도경수, JYJ 출신 김준수, 슈퍼주니어 출신 려욱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팬들을 겨냥해 배우들의 사진이 담긴 프로그램북을 따로 증정하는 공연도 있다.

ⓒ연합뉴스2019년 9월 뮤지컬 〈귀환〉 제작 보고회에서 배우들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연보다 큰 호응 얻기도

아이돌 멤버들을 내세운 몇몇 대작들은 오프라인 공연보다 더 큰 호응을 얻기도 한다. 유료 공연은 표를 예매한 관객에게 각각 ‘관람 코드’를 제공하고, 코드를 입력한 접속자만 생중계 웹페이지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가운데 치고 나간 공연은 뮤지컬 〈귀환〉이다. ‘인터파크 티켓’ 예매 랭킹 기준 9월 첫째 주와 둘째 주 모두 압도적 1위를 〈귀환〉이 차지했다. 뮤지컬 부문에서는 판매점유율 33.6%, 전체 공연 가운데 22.6%로, 2·3위를 합친 것보다 점유율이 높다. 이 작품에는 도경수 외에도 김민석(EXO), 윤지성(워너원), 이홍기(FT 아일랜드) 등이 출연한다. 좌석수 제한이 없는 온라인 공연이 각 스타들의 국내외 팬덤을 흡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온라인 유료 공연의 장래성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도 아이돌 공연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온라인 라이브 콘서트가 예상보다 더 큰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지난 6월14일 열린 방탄소년단의 〈방방콘 더 라이브〉 공연은 국내외 온라인 시청자 75만명 이상을 끌어모았다. 이 공연 관람권은 2만9000원에서 3만9000원. 오프라인 공연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일반 공연장 객석의 수십 배에 달하는 관객 수를 따져보면 벌어들인 수익은 더 높을 가능성이 높다. 비결은 해외 팬덤 유입이었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세계 107개 지역의 관객들이 이 콘서트를 관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10월10일과 11일에도 온라인 유료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정부는 온라인 공연 인프라를 더 확충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9월1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발표한 2021년 예산안에는 온라인 케이팝 공연 제작 지원에 290억원을 편성하는 계획이 들어갔다. 스튜디오 조성 지원에 200억원, 공연 제작 지원에 90억원이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팀에 지원할 예정이다.

그런데 방탄소년단 콘서트 같은 몇 개 사례를 넘어, 유료 온라인 공연이 정말 ‘뉴노멀’이 될 수 있을까? 희망적 요소도 있다. 협소한 공연장 밖에 있는 무제한에 가까운 사람들이, 세계 어디에서나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작지 않은 강점이다. 한정된 티켓을 구매하느라 예매 사이트에서 경쟁할 필요도 없고 웃돈을 얹어 암표를 거래하는 일도 사라진다. 해외시장의 잠재적 수요도 충족할 수 있다. 한국 밖에는 케이팝 아이돌 스타들이 출연하는 모든 콘텐츠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공익에도 이롭다. 온라인 공연은 수도권과 지방의 문화시설 격차를 줄이는 데도 기여한다.

그러나 공연계가 그간 온라인 공연에 뛰어들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 ‘온라인 공연이 공연인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학계에서는 연극 공연의 본질을 ‘라이브니스(liveness)’라고 본다. ‘현장성’이라고 번역되는 개념인데, ‘연기자와 관객이 같은 시공간에서, 즉각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것’이 전제다. 공연을 카메라나 마이크 따위 매개물을 통해 전달해도 되는지, 공연이 끝나고 녹화로 보존해도 되는지를 두고는 학자들의 견해가 갈린다. 라이브니스는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 이론이 아니다. 수익과 직결된다. 사람들은 현장을 즐기기 위해 공연을 본다. 배우와 눈을 맞추고 있다는 의식, 다른 팬과 ‘떼창’하면서 느끼는 소속감 따위는 공연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다. 이 즉흥적이고 희소한 경험에 맛들인 사람들이 온라인 공연에도 지갑을 열지에 대해 의문을 지닌 사람이 많다.

창단 70년 만에 첫 온라인 공연 〈불꽃놀이〉(9월25~26일)를 올린 국립극단 관계자는 ‘라이브니스’를 포기하는 제작자들이 어떤 난관을 마주하는지 들려줬다.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 공연처럼 당초 오프라인 공연으로 기획됐다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방향을 튼 사례다.

〈불꽃놀이〉는 현장 관객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연극이다. 객석은 무대를 둘러싸고 있다. 배우는 사방의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객석과 무대를 넘나드는 구조로 전개된다. 본래 6월부터 7월까지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번번이 연기됐다. 극단에서 온라인 공연을 검토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플랜 B’로 온라인 공연을 위한 영상 작업에 들어갔지만,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극단 관계자는 “내부에서 영상화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다. 카메라로 찍었을 때에도 이 공연이 제대로 표현될지 의문을 가지는 이들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공연은 영상화가 전제인데, 관객과 상호작용이 중요한 작품은 영상화 과정에서 본래의 작품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 온라인 공연을 결정한 까닭은 달리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작 공연이 이렇게 없어지는 것보다 낫다고 의견이 모였다.” 다만 온라인판 편집을 위해 촬영 스태프들은 카메라를 들고 객석에 앉았다. ‘관객 시점’을 구현하려는 노력이었다.

당장 닥치는 문제는 수익이다. 국립극단은 당초 〈불꽃놀이〉 표를 3만원에 판매할 예정이었지만,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2500원으로 값을 낮췄다. 〈불꽃놀이〉보다 비싼 공연들 역시 오프라인 공연 관람권의 20% 정도에 온라인 관람권을 판매한다. 문제는 온라인 공연이 오프라인 공연보다 비용이 더 든다는 것이다. 대관료, 출연료는 그대로 나가는 상태에서 촬영과 송출 비용이 더해진다. 푯값이 떨어지는 이유는 제작비와 무관하다. 오로지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국내 관객은 온라인 공연 경험을 오프라인 공연보다 낮게 평가한다. 결국 온라인 공연은 그간 한국 공연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해외 관객을 동원해야 성공한다.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쌓은 공연이거나 케이팝 스타들을 동원한 공연이 아닌 이상 당장 수익을 내기 힘들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조동춘 SM엔터테인먼트 센터장이 2020 콘텐츠산업포럼에서 온라인 콘서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관람료 절반은 해외 인프라로 빠져

그런데 해외 관객을 모아 흥행하는 일종의 수출 모델도 좀 더 들여다보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캐스팅 비용이 첫 번째 난관이다. 아이돌 스타들을 대거 캐스팅한 뮤지컬 〈귀환〉은 예외적 사례다. 이 공연은 ‘6·25전쟁 70주년 육군 창작 뮤지컬’로 기획된 특수한 극으로, 포진한 주연 남성 스타들은 모두 군인 신분이다. 민간인 출연자 외에는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티켓 파워’가 있는 스타들을 대거 앞세우면서도 출연료를 절감한 것이다. 캐스팅에 간접적으로 관여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 유료 온라인 공연은 〈귀환〉이나 〈모차르트!〉 정도로 아이돌 스타를 내세우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것도 해외 팬들을 겨냥해서 ‘스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해야 살아남는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출연료를 아낀 〈귀환〉조차 또 다른 비용 때문에 수익을 많이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외 온라인 유통 구조 때문이다. 공연을 해외에 송출하기 위해서는 현지 인터넷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국내 상영 플랫폼에도 수수료가 붙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귀환〉 온라인 관람권 2만5000원 중 절반은 해외 인프라에 들어간다. 그는 “국내 상영 플랫폼 수수료와 배급 비용 등을 빼면 제작사가 가져가는 건 장당 3000원도 채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연계 다른 관계자들처럼 〈귀환〉 제작사 역시 코로나19가 한풀 꺾이기만을 기다리며 공연을 연기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종식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주연배우들의 제대일이었고, 어쩔 수 없이 온라인 공연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 공연으로 해외시장을 두드리려는 대형 제작사는 유통정책을 주문한다. 9월18일 ‘2020 콘텐츠산업포럼 음악포럼’에서 조동춘 SM엔터테인먼트 센터장은 “바뀐 환경에서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을 어떻게 전달할지가 핵심이다. (정부가) 유통구조 정책과 각 플레이어들의 고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중계방송’ 이상의 온라인 공연을 만들기 위해 AR(증강현실) 기술을 접목할 예정이다. 조 센터장은 콘서트 도중 아이돌 멤버들의 모습이 커지거나 주변에 호랑이가 튀어나오는 등 그래픽 요소를 추가하는 영상을 소개했다.

중소 규모 업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는 “진흥보다는 구호 정책에 초점을 맞출 시점”이라고 말했다. 고 대표는 “될 만한 사업을 지원하는 것보다 업계에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피해를 보상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오프라인 공연이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지원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여기지만, 새로운 형식의 온라인 공연도 모색하고 있다. 내키지 않는 실험을 수행하게 된 사람이 문화·예술계에는 적지 않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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