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혼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학원 가고, 과외 선생님이 매주 오고, 유학을 가는 게 무슨 의미인지 솔직히 잘 몰랐다. 혼자서 뭔가 할 수 있게 된다는 건 돈을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피아노곡을 배우고 싶으면 악보를 뽑아 교회 피아노로 연습했다. 예배를 마치고 다들 밥 먹고 있을 때 조지 윈스턴이니 히사이시 조의 악보를 인터넷 어딘가에서 구해다 주보용 프린터로 뽑아서 쳤다. 아무도 내가 뭘 치는지, 지난주보다 얼마나 잘하게 되었는지 관심이 없었다.

커서 보니 ‘남들’이 어릴 때 흔하게 했다는 수영·태권도·발레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영어·수학 점수가 반토막이 나도 단과 학원조차 다녀본 적 없는데 피아노만을 학원에서 배우게 된 것은 매우 기능적인 이유에서였다. 공짜로 피아노를 가르쳐주던 학원 원장님도 독실한 신도였기 때문에 나를 반주자로 만드는 데까지만 관심이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그럴듯한 뉴에이지 소품을 몇 곡은 치고 싶다고, 피아노 전공자로 성장하는 친구들이 모차르트, 쇼팽을 점점 잘 치게 될 때 나도 그렇게 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용기 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더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혼자 연습했다.

‘불굴의 의지’는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문화에 녹아들며,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며 뭔가를 배우고 성장한다는 개념이 희박한 채로 자라왔다. 그게 나를 묘하게 꼬인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실수의 흔적을 내보이는 것을 싫어하고, 남에게 배우기 어려워하는 사람.

내가 사회 전반의 압력과 요구를 떠나 ‘어떻게 살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페미니즘에 대해 고심한 이후였다. 어쩌면 피아노를 잘 치려 노력한 건 이성애적 관점에서는 자원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공무원도 전문직도 되지 않고, ‘좋은 남자’와 결혼을 안 하고도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며, 밥벌이도 전공도 아닌 취미를 세 가지쯤 가지고 싶다. 내 욕망을 풀어나가는 사람으로 사는 건 응원과 격려가 주어지기는커녕 뭔가 하나라도 하고 나면 제대로 한 것이 맞는지, 혹시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된 건 아닌지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좀 더 지나고 보니 알게 된 것은, 많은 여성이 이런 괴로움을 겪다가 알아서 ‘찌그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욕망들이 안 보이도록.

고백하면, 이런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 것은 내게 관심을 가져준 여자들이었다. 이제는 정말 고립됐다고 생각할 때 도움을 주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더 잘할 수 있게 자원을 보태준 언니들이 있었다. 그런 도움이 고맙긴 하지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잘 몰랐다. 언니들은 내가 조금씩 답례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기다려줬다. 틀리거나 실수하면 다신 기회가 없을 줄 아는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연락하고, 다음 기회가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세상 그 무엇도 ‘불굴의 의지’로 혼자 해낼 수 있지 않다. 그랬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오로지 관계 안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살 기회를 얻는다.

어제는 할 일 목록에 ‘어떻게 살지 생각해보기’라고 적어두고 고민을 했다. 바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품이 넓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얘기다. 실수와 실패가 과정인 삶에서 영원히 미완성일 타인들과, 사회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들과 기꺼이 함께하는 사람. 공장의 부품처럼 사람들을 쓰고, 제 기능을 못하는 사람을 버리는 ‘공정’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욕망을 탐구하며, 틀리거나 실수하는 게 당연하고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 그런 사회에 어울리는 일원으로 미리 살며 용기를 키우는 경험을 더 많은 여자들과 나누고 싶다.

기자명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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