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넷플릭스 영화 〈올드 가드〉는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불멸자 그룹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멀게는 몇천 년 전부터 가깝게는 몇백 년 전까지, 각자 다른 시기에 부활한 네 불멸자는 상처를 자가 치유하며 거의 영원히 살아간다. 이 불멸자 그룹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물이자 리더는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하는 ‘앤디’다. 몇천 년 전부터 사용해온 커다란 도끼 ‘라브리스’를 늘 들고 다니는 데다 너무 오래 산 나머지 모든 전투 방법을 체득해버린 앤디는 말 그대로 강한 여성이지만, 이것으로 앤디를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아주 오래전 사랑하는 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리고, 왜 자신이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며 권태와 허무를 느낀다. 〈올드 가드〉에서 불멸이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다. 앤디는 고통을 생생히 느끼면서도 매번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는 운명, 인생의 끝을 알 수 없는 운명이란 어떤 점에서 도리어 형벌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운 여성인 앤디는 그동안 샤를리즈 테론이 맡아왔던 캐릭터들과 비슷한 맥락 위에 있다. 〈올드 가드〉가 공개된 시기와 비슷하게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밤쉘: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에서 샤를리즈 테론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폭스뉴스 앵커 메긴 켈리를 연기한다. 메긴 켈리는 폭스뉴스 회장 로저 에일스에게 오래전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지만, 동시에 “산타클로스는 무조건 백인”이라고 말해 흑인들의 항의를 받을 정도로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하는 여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다는 사실이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는 다른 여성들을 데리고 독재자 임모탄에게서 탈출을 감행했다 다시 돌아와 스스로 지도자가 되었고, 〈올드 가드〉의 앤디 또한 불멸자 그룹에 새로 합류한 여성 나일(키키 레인)과 함께 불멸자들의 생체 정보를 함부로 사용하려 하는 악인을 물리친다.

스크린 바깥의 세계에서도 샤를리즈 테론은 변화를 지지하고 이끈다. 많은 여성이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폭력 사실을 고발했을 때, 그는 SNS를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산업의 문화를 바꿀 것이며 자신은 그들 옆에 기꺼이 서서 도울 것임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2003년부터 프로덕션 ‘덴버 앤 데릴라’를 세워 자신과 다른 여성들을 위한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중이다. 덴버 앤 데릴라가 여성 주연의 〈밤쉘〉과 〈올드 가드〉 〈툴리〉 〈아토믹 블론드〉 〈다크 플레이스〉 등을 줄줄이 제작했다는 사실은 샤를리즈 테론의 지향점을 명확하게 가리킨다. 이런 세상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쉽지 않다’는 말이 ‘바꿀 수 없다’와 같지 않음을 그는 알고 있다.

기자명 황효진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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