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국립오페라합창단이 해체되었다. 참 안타깝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거리를, 도시 전체를 자신들의 무대로 만들고,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더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어쩌면 이 정권에 감사해야 할까? 평범한 사람도 클래식 음악을 길거리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그러나 이건 아니다. 예술 활동과 감상의 공간이 반드시 특정 무대일 필요는 없지만, 그건 예술가 본인과 감상자가 선택할 문제이지 누군가에 의해 억지스럽게  연출될 상황은 아닌 것이다. 

역량이 뛰어난 합창단이었다고 한다. 국내외에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 공연을 보여주었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는 방문 공연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고 한다. 합창은 악보에 기입된 대로 음정을 발성하는 것 이상의 무엇, 나의 목소리와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조화로움을 부여해 새로운 선율을 창조해내는 예술 활동이다. 그렇기에 합창은, 개개인의 재능만으로는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멤버들은 최소 2년에서 7년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서로의 호흡과 감정과 소리를 예민하게 조율하며 함께 무대를 만들어왔고, 일정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 달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박봉의 계약직 노동자였던 그들은 하루아침에 무대와 생계 방편을 모두 잃어버렸다.

정부는 예산 부족을 핑계 삼지만 국립오페라단에 대한 예산은 오히려 늘었단다. 담당 공무원은 법 규정을 핑계 삼지만 제2, 제3의 합창단 창설 얘기도 나온다. 장관은 외국에는 사례가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국립오페라합창단은 많은 나라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것도 19세기 중반 이후로 지금까지 쭉. 자신이 책임져야 할 식구들을 몽땅 내쫓아버린 합창단 책임자는 외국에서 비싼 연출자와 배우들 모셔오랴, 판공비 펑펑 쓰랴, 친동생이 근무하는 회사에 특혜 주랴 몹시 바쁘신 모양이다. 문화와 관광을 동렬에 올려놓으며 문화예술로 관광 수입 좀 잡아보겠다는 정권이 이미 그 능력이 충분히 검증된 예술 인프라도 내팽개치면서 대체 무엇으로 수입을 올리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오페라합창단 위한 도네이션 운동을

예술을 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예술가가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뿐이다. 한 나라 혹은 공동체의 문화·예술은 흔치 않은 천재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유행 상품은 더더욱 아니다. 문화예술계 전체를 산업 논리로 보거나, 자기 선전의 도구로 삼으려는 정권 아래서는 어떤 문화예술도 건강하고 아름답게 존재할 수 없다.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표현할 자유가 있고, 감상자에게는 최고의 예술을 마음껏 향유할 권리, 그것을 통해 메마른 삶을 돌아보고 추스르며 더 나은 삶을 꿈꿀 권리가 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이 끝까지 싸우길 바란다. 거리에서 그들의 공연을 듣는 것도 즐겁지만, 무대 위의 공연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친구이자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밴드 ‘잡리스’의 말처럼, 세상에 지는 건 예술가가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극장 안에서 혹은 극장 밖에서 불안 없이 아름답게 울려퍼질 수 있도록, 헐벗은 삶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며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도록, 시민들이여, 당분간 거리에서 그들을 만나자. 그들을 위해, 아니 우리 자신의 예술적 자긍심을 위해 함께 도네이션(기부) 운동을 벌여보자.

기자명 권용선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