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난’ 대한항공, 최후의 승자는?
  • 이종태 기자
  • 호수 649
  • 승인 2020.02.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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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 회장을 필두로 한 대한항공 창업자 가족 측과 사모펀드 KCGI와 손잡은 ‘가족의 배신자’ 조현아 전 부사장의 대결이 점입가경이다. 가족 측이 주총에서 승리해도 미래는 불투명하다.
ⓒ연합뉴스지난해 4월16일 열린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영결식. 왼쪽부터 당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전무.

재벌 창업자 가족이 주주총회에서 경영권을 박탈당하는 사건이 실제로 발생할지도 모른다. 3월25일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다. 한진칼은 한진그룹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지주회사다. 대한항공 주식의 29.96%, 진에어의 60.01%, 한진의 23.62%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진칼을 지배하는 이는 누구인가? 고 조양호 회장의 가족이다. 조양호 가족의 지분을 보면,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한진칼 주식의 6.49%,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6.52%, 조현민 한진칼 전무 6.47%, 조 전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5.31% 등이다. 조양호 가족을 지지하는 특수관계자(계열사, 임원) 지분(4.15%)까지 합치면 모두 28.94%. 조양호 가족은 대한항공 등 계열사의 지분까지 직접 가질 필요가 없다.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한진칼의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한진칼만 지키면 된다. 그러나 지난해 조양호 가족의 탄탄해 보였던 성채에 균열이 생기고 만다.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가 10.81%라는 결코 적지 않은 지분으로 성벽을 타고 오르면서부터다. 심지어 국민연금공단(당시 7.16%)까지 가세했다. 그해 3월29일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의 핵심 의제는 ‘사내이사(해당 기업의 상근자로 경영 전반을 관리)의 임기 연장’이었다. 당시 사내이사는 조양호 대표이사 회장, 조원태 사장, 석태수 대표이사 사장 등이었는데, 석 사장의 임기가 종료된 시점이다. 당연히 조양호 일가는 조 회장의 최측근인 석 사장의 재임을 희망했다. 경영권이란 사실 ‘우리 편을 사내이사로 앉힐 수 있는 권리’다. 그러나 KCGI는 석 사장의 퇴임을 요구했다. 국민연금공단은 범죄 혐의자가 사내이사 자리를 유지할 수 없도록 정관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 중이던 조양호 당시 회장을 겨냥한 것이 명백했다. 그러나 지난해 주총에서는 조양호 가족이 끝내 승리했다. 개표 결과, KCGI와 국민연금공단의 안건이 둘 다 통과되지 않았다.

올해도 한진칼 주총이 열린다. 3월25일이다. 지난해보다 훨씬 첨예하고 중요한 문제가 걸렸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장 여부다. 조양호 가족에게 결코 유리한 싸움이 아니다. 가족이 분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조양호 회장이 타계한 뒤 가족 내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원태씨가 그룹 회장직을 승계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조현아씨는 임원 자리로 복귀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난해 12월 말, 동생(조원태)을 공개적으로 비난한다. “조원태 대표이사가 공공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왔고, 지금도 가족 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조원태 회장이 어머니(이명희)의 집을 찾아가 가재도구를 파손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가족 내에서 은밀하게 벌어졌을 이 사건이 현장 사진과 함께 언론으로 흘러나온 것도 범상치 않은 일이다.

조원태, KCGI 요구 수용하며 조현아 공격

현실은 가끔 상상을 뛰어넘는다. 조양호 가족의 분쟁이 그랬다. 지난 1월31일,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KCGI 및 반도건설과 함께 ‘(3자 주주 연합의) 공동 입장문’을 발표한 것이다. 3자는 “국민의 기업인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의 현재 경영 상황이 심각한 위기 상황이며” “현재의 경영진에 의하여는 개선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전문경영인 제도의 도입을 포함한 기존 경영방식의 혁신 및 경영효율화를 통하려 주주 가치를 제고하겠다”라는 것이었다. KCGI가 누군가? 지난해 주총에서 한진그룹의 가족경영에 도전했던 그 사모펀드다. 반도건설은 지난해 말부터 한진칼의 지분을 매입하다가 급기야 지난 1월10일에는 한진칼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이 회사의 권홍사 회장은 조양호 전 회장과 친분을 쌓아온 사이다.

이처럼 “기존 대주주 가족의 일원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많은 고민 끝에(공동 합의문)” KCGI·반도건설과 함께 주주 연합을 구성함으로써 세력관계가 크게 변동되었다. 한진칼에서 KCGI(17.29%), 반도건설(8.29%), 조 전 부사장(6.49%)의 지분을 합치면 32.07%에 달한다. 조양호 가족의 지분은 기존 28.94%에서 조 전 부사장의 몫을 뺀 22.45%로 줄어드는데, 여기에 비교적 굳건한 동맹 세력인 델타항공(10%)을 고려하면 32.45%다. 어느 쪽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호각지세. 3월25일의 ‘결승전’까지 최선을 다해서 나머지 주주(36% 정도)들의 표심을 얻어내야 한다. ‘나머지 주주’ 중에 눈에 띄는 기관은 카카오(1%), 국민연금(지난해 주총 당시의 7.16%에서 2.9%로 하락) 등이다.

KCGI 측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한진그룹 계열사(특히 대한항공)들의 ‘주주가치(주주들이 주식 보유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를 높일 수 있는 나름의 방안을 투척해왔다. 한진그룹의 호텔·레저 등 비주력 사업 부문을 “원점부터 재검토(매각으로 현금화해서 부채비율을 낮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업지배구조 혁신’ 등이다.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해서는, 예컨대 회장, 사장 등 사내이사들이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신규 투자, 매각, 인수·합병 등)을 내리기 전에 사전심의를 받아야 하는 조직(지배구조위원회)이 있다면 어떨까. 더욱이 이 지배구조위원회에 조양호 가족 및 관계자들이 한 명 이상 들어가기 힘들다면? 임원을 추천하는 조직(임원추천위원회)에 조양호 일가로부터 독립적인 외부인(사외이사)들이 참여한다면, 가족이 회장, 사장, 부사장을 계속 맡을 수 있을까? 3자 연합의 슬로건인 ‘전문경영인’은 사실상 ‘조양호 가족 이외의 경영인’을 의미한다. 3자 연합의 한 축이 조현아 전 부사장이라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조원태 회장은 3자 연합에 맞서 ‘나머지 주주’들의 표를 끌어와야 한다. 종래의 KCGI 측 요구도 일부 수용했다. 2월6일 열린 대한항공 이사회에서 서울 송현동 부지와 왕산마리나 등 호텔·레저 부문의 일부 자산을 올해 내로 매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호텔·레저 부문을 주도해왔다는 측면을 감안하면, ‘배신자’가 복귀할 근거지를 제거해버리는 방식의 공격이기도 하다. 다음 날 열린 한진칼 이사회의 결정 사항까지 고려하면, 지배구조에서도 일대 혁신을 선언하고 있다. 경영진의 결정을 사전 심의하는 거버넌스위원회, 임원들의 봉급을 관장하는 보상위원회의 전원을 사외이사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외이사를 뽑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까지 사외이사로 구성하겠다고 한다. 조양호 가족 차원에서는 계열사 운영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낮추겠다고 스스로 선언한 셈이다.

양측 모두 3월25일 주총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기는 힘들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조양호 가족 측이 가까스로 이긴다 해도 불안 요인까지 제거하기는 힘들다. KCGI 측이 이미 주총 이후의 국면에 대비해서 한진칼 지분을 늘릴 채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1월 초에 1000억원을 목표로 새로운 사모펀드를 만들었다. 3월 주총 이후에도 조양호 가족의 성채에 대한 공격이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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