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경찰의 ‘피의사실 공표’ 사건을 쥐고만 있는 울산검찰
  • 장일호 기자
  • 호수 642
  • 승인 2020.01.0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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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피의사실 공표가 없는 세상의 미래다. 울산에서 시작된 피의사실공표죄 문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 정치권 공방 등이 얽히며 덩치를 키워왔다. 검찰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지난 12월24일 검찰 관계자가 울산지방경찰청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백판’은 쓸모없어졌고 ‘백브리핑’도 사라졌다. 경찰청 로고가 박힌 푸른 벽(백판)을 배경으로 두고 열리는 공식 브리핑은 물론 기자를 대상으로 한 비공식 브리핑(백브리핑)도 더 이상 없다. “시책 홍보나 미담이라면 몰라도 ‘피의’가 걸리는 사건은 대면 접촉해도 아예 입을 열지 않는다고 보시면 돼요.” 울산 지역 한 방송사 기자의 말이다. ‘굳이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지만’ 경찰이 관례적으로 확인해주던 사건·사고 피의자 연령이나 성별 같은 최소 정보조차 얻기 어려워졌다. “울산만의 일은 아니고 다른 지역 매체들도 자세히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기사 톤이 달라졌어요. 이를테면 요즘은 나이는 물론이고 ‘김씨’ ‘최씨’ 정도도 (경찰) 공식 채널에서 확인 안 해주니까 기사 주인공이 다 ‘A씨’예요.”

울산은 피의사실 공표가 없는 세상의 미래다. 기자들을 향한 울산지방경찰청의 ‘침묵’은 2019년 6월 시작됐다. 6월8일 울산지방검찰청은 변동기 광역수사대장을 포함해 울산지방경찰청 수사관 2명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검찰이 문제 삼은 건 1월22일 울산지방경찰청이 내놓은 800자 분량 보도자료였다. 위조한 약사면허증으로 부산·울산·경남 일대 약국에 취업한 30대 여성을 약사법 위반과 공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로 검거, 구속하고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전 보도자료와 형식이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이 형법 제126조(피의사실 공표)를 위반했다고 봤다.

1953년 형법 제정 이래 66년간 잠들어 있던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할 때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평가받던 이 법은 검찰 덕분에 기지개를 켰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피의사실 공표로 접수된 347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검찰의 이례적 대응에 울산지방경찰청은 일상적인 공보 활동이었다며 울산지검에 이의를 제기했고, 안건은 대검 산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까지 올라갔다.

ⓒ연합뉴스황운하 경찰인재개발원장이 지난 12월9일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북 콘서트를 열었다.

수사 계속 여부가 심의위 안건으로 올라온 건 2017년 위원회 설립 이후 처음이었다. 수사 개시와 진행, 구속영장 청구 등에 대한 법조계·학계·시민단체의 외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는 기구인 심의위는 2019년 7월22일 ‘계속 수사’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검찰이 경찰을 기소한다면 피의사실공표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첫 사례가 될 예정이었다. ‘본보기’를 목격한 침묵이 울산을 비롯한 전국 경찰청으로 번졌다. 기소 후 재판 결과에 따라 기존 수사 및 보도 관행 역시 큰 변화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다시 5개월이 지났다.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은 아직 사건을 기소하지 않았다. 울산지방경찰청 측에서 예상하고 있는 불기소 처분도 ‘아직’이다. 처리 기한에 제한이 없는 인지사건의 경우 검사 재량에 따라 사건을 묵힌다 한들 방법이 없다. 쥐고 있는 사건은 언제든 빼 쓸 수 있는 칼이 된다. 가짜 약사 사건 피의사실 공표 기소 문제와 관련해 울산지검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답할 수 없다”라고만 밝혔다.

검찰은 ‘고래고기’ 사건에만 유일하게 반응

최근 서울중앙지검이 울산경찰의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비리 수사를 이첩해갔다. 서울중앙지검은 청와대 하명 수사와 선거 개입 의혹이 있다고 보고 있다. 울산 지역은 한층 더 시끄러워졌지만 정작 지역 내 기자들은 검·경 취재 과정에서 “모른다” “수사 중이다”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듣는다. 아직 결론나지 않은 피의사실공표죄가 훌륭한 구실이 됐다. 울산 지역 내 또 다른 기자는 “울산지검이든 울산경찰청이든 취재 자체가 안 된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관련해서 내용을 흘리면 조·중·동이 ‘썰’을 풀고, 우리도 그거나 쳐다보고 있다. 그건 피의사실 공표 아닌가? 그나마 울산지검이 유일하게 반응하는 건 ‘고래고기 환부사건’뿐이다.” 울산지검은 고래고기 환부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응해 지난 12월에만 세 차례 입장을 내놓았다. 그나마도 새로운 내용은 없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의 반복이다.

울산지검이 피의사실 공표를 꺼내든 배경도 고래고기 환부사건이 무관하지 않다. 2016년 4월 울산경찰은 밍크고래를 불법으로 포획한 포경업자와 유통업자 등을 구속하며 고래고기 27t을 압수했다. 검찰은 불법 포획 증거가 될 수 있는 DNA 분석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 일부 샘플을 분석한 결과만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고래고기 21t을 업자들에게 되돌려주었다(환부). 유통업자 측 변호인이 전 울산지검 검사라는 ‘전관’ 의혹도 불거졌다. 전관 의혹은 울산검찰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목이다. 해양 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2017년 9월 고래고기를 되돌려준 울산지검 황 아무개 검사를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2018년 6월27일 경찰은 고래고기 환부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검찰의 수사 비협조를 주요하게 언급했다. 송인택 당시 울산지검장이 취임한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2018년 8월 송 지검장은 검사장·차장검사·부장검사·평검사를 망라해 피의사실공표죄 연구모임을 꾸렸다. ‘사실상 방치돼온 피의사실공표죄를 앞으로는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라는 기조로 총 8차례 걸쳐 민·형사 사례 분석과 법리 토론·연구를 진행했다.

울산지검은 2018년 12월13일에는 울산지방경찰청과 각 경찰서, 울산시선관위와 각 선관위, 울산시청과 각 구·군, 소방서, 해양경찰서 등 울산·양산 지역 관련 기관 50여 곳에 공문을 보낸다. 별도의 고소나 고발 없이도 ‘피의사실 공표를 엄단하겠다’라는 방침을 담은 내용이었다. 당시 분위기에 대해 울산 지역 한 방송사 기자는 “시점이 묘하잖아요. 고래고기 환부사건 수사 관련해서 사실상 입을 막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죠”라고 말했다. 때는 마침 고래고기를 환부했던 황 아무개 검사가 1년간 해외 연수 후 복귀한 시점이기도 했다. 황 검사는 경찰의 출석 조사 요청을 두 차례 서면답변으로 대신했고 이후 인천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8년 11월29일 고래고기 환부사건을 지휘한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도 대전으로 발령받으면서 울산을 떠났다.

ⓒ연합뉴스 2019년 7월 퇴임한 송인택 울산지검장은 〈피의사실공표죄 연구〉를 펴냈다.

2019년 6월, 2년여에 걸친 고래고기 환부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별 소득 없이 마무리됐다. 송인택 울산지검장 역시 퇴임을 앞둔 시기였다. 울산 지역 검·경 갈등도 사그라들 거라 예상됐다. 하지만 6개월 전 검찰의 ‘경고’는 예상치 않았던 모습으로 나타났다. 경찰 수사 마무리 직후 검찰은 1월 발표된 약사법 위반 보도자료 건으로 피의사실 공표 카드를 꺼냈다. 검찰의 피의사실공표죄 피의자 중 한 사람인 변동기 울산광역수사대장은 고래고기 환부사건을 수사한 주역이기도 했다.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역시 이 점을 들어 자서전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에서 보복 수사 의혹을 제기한다. “피의사실공표죄를 엄격히 적용할 경우 검찰이 더 문제가 된다는 건 기자들이 더 잘 안다. 피의사실 공표를 문제 삼겠다면 자신들부터 조사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만약 언론의 시각대로 고래고기 환부사건에 대한 보복성 수사라면 너무도 치졸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앞서 울산지검이 또 다른 피의사실공표죄 의혹에 대해서는 이른바 ‘선처’한 것과 비교되기도 한다. 울산지검은 울산지방경찰청의 약사법 위반 관련 보도자료 발표를 피의사실 공표로 입건하기 앞서 5월 말에는 울산남부경찰서가 5월1일 발표한 아파트 털이범 검거 브리핑에 대해서도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지역지에서만 작게 다뤄졌던 당시 사건에 대해 검찰은 경찰에 공문을 보내 ‘피의사실 공표로 판단되니 경찰에서 자체 조치하고 그 결과를 검찰에 회신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피의사실 공표 기준 논란이 일었고, 일선 경찰들은 언론을 응대하지 않는 걸 ‘정답’처럼 여기게 됐다.

논란 와중인 2019년 7월19일 퇴임한 송인택 울산지검장은 퇴임 직전인 7월11일 피의사실공표죄 연구모임의 성과를 모아 총 286쪽 분량의 〈피의사실공표죄 연구〉라는 책을 발간했다. 책은 비매품으로 1000부만 찍어 검찰 내부 교육용으로 배포했다. 주요 사건 범인 검거, 국민 의혹 및 불안 해소, 유사 범죄 예방 등을 이유로 피의사실을 불가피하게 공표하는 경우 검찰은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경찰은 경찰청 훈령인 ‘경찰 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규정된 요건과 절차를 준수해 수사 내용을 공개하게 되어 있다. 울산지검은 이 준칙과 규칙의 예외규정이 폭넓어 피의사실 공표 피해를 방지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고 봤다. 송 지검장은 발간사에서 “피의사실 공표의 위법성 조각 사유는 엄격하고 좁게 해석돼야 한다”라고 썼다. 울산경찰의 약사법 위반 관련 보도자료도 ‘좁게 해석하면’ 그 일환으로 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울산에서 시작된 피의사실공표죄 문제는 여러 사건이 얽히며 검·경 수사권 조정 ‘대리전’처럼 여겨졌고, 그사이 ‘조국 대란’을 거치면서 논란의 덩치를 키워왔다. 송인택 지검장은 퇴임 전 2019년 5월 국회의원 전원에게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대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울산지검이 내놓은 〈피의사실공표죄 연구〉 내용 역시 원칙적으로는 ‘옳은’ 이야기지만 현실에 적용해보면 검찰 스스로가 가장 적극적으로 어기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밖으로 향한 거울을 뒤집어 스스로를 비춰야 하는 지적인 셈이다.

정치 공방에 묻힌 핵심 질문들

2019년 5월27일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03년과 2013년 각각 수사를 받은 송두율 교수와 이석기 전 의원 사건,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관련 검찰 수사에서 피의사실 공표가 두드러졌다고 밝히면서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피의사실을 흘려 피의자를 압박하고 여론전을 펼치는 등 관행적으로 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반대로 언론 보도가 수사에 부담이 될 경우에는 피의사실 공표를 내세워 취재를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권고와 이를 바탕으로 한 후속조치는 ‘조국 대란’을 거치는 동안 빛이 바랬다. 정치적 공방 때문에 정작 피의사실 공표 이슈를 다룰 때 물어야 할 핵심 질문들은 모두 사라진다. 대표적으로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다. 수사 과정에서 나오는 검·경 보도자료나 브리핑, 취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사기관의 확인 절차 모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할 수 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가 규정하고 있는 ‘일정한 요건하에 수사 중인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한 경우와도 부딪친다.

ⓒ시사IN 이명익지난 12월12일 한국언론학회와 한국기자협회 공동 주최로 ‘조국 보도를 되돌아보다’ 세미나가 열렸다.

실질적으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기소와 처벌이 전무한 까닭도 살펴봐야 한다. 피의사실 공표는 사실상 ‘자기집행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법이다. 법이 규정하고 있는 범죄행위의 주체인 검찰과 경찰이 공소 제기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권과 기소독점권을 갖고 있는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를 하는 경우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울산 사례처럼 검찰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검찰에 불리한 경찰 수사를 통제하는 수단처럼 쓰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어떻게 분리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논의가 부족하다(〈피의사실공표죄의 합리적 적용방안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9년 7월).

언론의 보도 관행 역시 피의사실 공표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12월12일 한국언론학회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조국 보도를 되돌아보다’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한국 언론이 ‘전지적 검찰시점’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권 논설위원은 피의자나 피고인, 참고인 등의 행동은 물론이고 그 동기와 목적까지 검찰 관점에서 설명하는 언론보도가 검찰 수사의 기본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법조 기사에는 ‘검찰에 따르면’ ‘검찰은… 보고 있다’ 같은 상투적인 표현이 많다. 빠르고, 편리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내가 1993년 법조에 첫발을 디뎠을 때 배웠던 이 기사체가 30년이 다 되도록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논문 〈방송 법조뉴스의 품질 연구〉(한국방송학보, 2016)가 2000~2014년 14년간 나온 검찰 뉴스 710개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보도 시점은 기소 이전의 수사 단계에 89.6%가 쏠려 있었고, 기소 이후인 재판 단계 관련 보도는 10.4%에 불과했다. 검찰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검찰은 피의사실을 오늘은 A 언론, 내일은 B 언론에 흘리며 기자실에 등록된 출입 매체에 ‘단독’을 나눠주는 시스템으로 출입 언론사 전체를 관리하고 끌고 간다. ‘잘 따라오면 언젠가 나도 단독을 받을 수 있다’라는 목표가 출입기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권 논설위원은 취재 시스템을 출입처가 아니라 이슈 중심으로 옮기고 재판 단계의 보도 비중을 확대하자고 제안한다. “수사 단계에 주목하는 언론의 보도 관행이 ‘소환=구속=유죄’라는 등식을 만들고 있다. 언론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검찰과 피고인이 증거와 진술을 놓고 다투는 재판 단계다. 단기간 내 투자비용을 뽑아내려는 욕심만 버리면 재판 단계도 얼마든지 가독성 있게 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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