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사람들은 선과 악이 싸워 결국 선이 승리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역사를 생각할 때도 선악의 관점에서 볼 때가 많다. 역사를 선이 승리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악행은 자신이 지고지순한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경우가 많다. 여기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적인 발상이 나온다.

13세기 중엽, 몽골 제국은 고려를 침략해 복속시키고 일본 정벌을 추진하면서 탐라(제주)를 직할령으로 삼았다. 일본 정벌을 추진하려면 많은 말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탐라에 말 목장을 만들었는데, 이를 관리하던 몽골인들이 목호다. 약 80년이 지난 후, 원 제국은 주원장이 이끄는 반란군 세력에 의해 베이징 북쪽으로 밀려났고, 고려 공민왕 또한 원의 직할령이 된 고려 영토를 되찾기로 결심한다. 한편 목호들은 80년 동안 주민들과 동화되어 섬 밖의 사람들이 볼 땐 ‘어느 것이 오랑캐이고 주민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최영을 지휘관으로 2만6000명의 원정군이 탐라에 나아갔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창과 방패가 바다를 메웠고, 간과 뇌수가 땅을 발랐다’고 할 정도로 제주 전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로 인해 당시 탐라 인구의 절반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호의 난’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4·3 사건이 수십 년 동안 육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중국-한반도-일본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제주도를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 한반도 본토에서 온 군대가 제주에 상륙하여 전쟁을 벌였다. 하나는 몽골 잔당의 반란을 진압한 사건으로, 다른 하나는 좌익 세력의 반란을 진압한 사건으로 명명되었다. 진압 과정 중 엄청난 수의 양민이 학살되었으나, 역사를 기록한 이들은 이를 승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어진 부수적 피해로 간주했다. 그러나 승리자의 관점이 아닌, 죽임당한 제주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역사는 전혀 달라진다.

650년 전 벌어진 목호의 난이 70년 전 4·3 사건으로 되풀이되었다. 훗날 또다시 참극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전해져야 한다. 만화가 정용연의 〈목호의 난-1374 제주〉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에 두고 작가의 상상을 가미한 팩션으로, 제주의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작품이다. 선과 악의 시대적 싸움에서 선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선과 악의 경계는 아주 얇을뿐더러 흑백으로 판단할 수 없는 명암도 있다.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 일은 쉽지만, 경계를 들여다보고 명암을 파악하는 일은 어렵다. 어렵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기자명 박해성 (만화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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