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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다시 시중은행에 현금을 꽂아넣기 시작했다. 양적완화 종료 이후 처음이다. 연준은 10월11일 낸 성명서에서 내년 1월까지 ‘레포 시장’에 지속적으로 현금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내년 2분기까지 매월 600억 달러 규모의 단기 재무부 채권(T-bill)을 매입할 계획이다.

한마디로 국채 매입을 통해 시중은행에 현금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연준이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부터 2014년 말까지 시행했던 양적완화가 연상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 조치는 양적완화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양적완화에서는 주로 장기 국채를 매입한 반면 이번 조치는 단기 국채를 매입하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금리 조정이 아니라 통화 추가 발행으로 시장에 개입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연준의 이번 조치는 지난달 중순 ‘레포 금리’의 일시적 폭등 때문이다. 레포 시장이란 금융기관들끼리 하루 만기로 현금과 증권을 거래하는 초단기 대출시장. 하루 30조 달러가 금융기관들 사이에 오간다(미국 GDP가 약 21조 달러다). 돈 많은 금융기관끼리 거래하는 만큼 금리는 시장금리 중에서 제일 낮은 편이다. 2%대였던 레포 금리가 지난달 중순 10%까지 치솟았다. 돈을 빌리려는 금융기관은 많은데, 빌려주려는 금융기관이 적었기 때문이다. 레포 시장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면, 금융기관들 역시 민간 경제에 자금을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 연준은 즉시 개입해서 불과 일주일 동안 2000억 달러를 금융기관에 쏟아부었다.

연준의 이번 조치는 양적완화와 같다면 같고 다르다면 다르다. 유의할 사실은 양적완화 종료 이후 연준의 정책 기조인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자산/부채) 축소’의 흐름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1조 달러 정도였다. 양적완화로 인해 2014년 말에는 4조500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연준의 노력으로 최근 4조 달러까지 줄었으나 이번 조치로 다시 팽창될 전망이다. ‘비전통적’ ‘일시적’ 통화정책으로 입안된 양적완화가 서서히 ‘전통적’ ‘영구적’ 정책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닐까? 좀 더 근본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20세기의 통화정책으로 지탱될 수 있는 시스템이기는 한가.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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