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왜 아픈지 알아낸다는 것
  •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 호수 631
  • 승인 2019.10.2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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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생기는 원인을 판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질병을 예방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선 원인, 인과성, 기여 요인에 관한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
ⓒ신용재김미선씨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다발성경화증이 발생해 시각장애를 앓았다. 그는 재판을 거쳐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얼마 전 다른 일 때문에 만난 노무사가 답답한 일이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전자산업에서 교대근무를 하는 여성 노동자가 유방암에 걸려 산재 보상을 청구했는데 산재 승인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두 가지가 쟁점이었다. 교대근무 기간이 충분히 길지 않고,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야간작업을 포함하는 교대근무가 ‘인체발암성 추정 요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실험 동물에서는 발암성의 충분한 근거가 확인되었고, 인간에게서는 그 근거가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일주기(circadian) 리듬의 혼란으로 인한 내분비계 교란이 주요 기전이고, 일정 기간 이상 야간근무를 하는 경우 유방암과 전립선암, 대장암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활용된 역학 연구들 중에는 유명한 미국 간호사 연구가 있다. 연구는 월 최소 3회 이상 야간근무를 하는 경우를 야간 교대근무로 정의하고, 다른 요인들을 보정한 상태에서 교대근무를 전혀 하지 않는 집단과 암 발생률을 비교했다. 교대근무 연수가 길어질수록 유방암의 상대위험도가 증가했고, 특히 20년 이상인 경우 뚜렷한 위험 증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연구들도 교대근무의 기간이 상당히 길었을 때 유방암 위험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들에 비추어볼 때, 교대근무 기간이 충분히 길지 않다면 유방암의 업무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유방암은 가족력이 중요한 위험요인이다. 특히 1촌 이내 여성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는 경우 유방암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잘 알려진 BRCA 유전자의 경우, 변이가 있는 사람이 80세까지 산다고 하면 10명 중 최대 7명이 유방암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앤절리나 졸리가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은 것도 바로 이 유전자 때문이었다. 그러니 유방암이 발병한 노동자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다면 이 사례는 업무보다 가족력 혹은 유전적 소인 때문이라는 논리다. 표면적으로 그럴듯해 보인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 입구의 풍경.

세계 최초 메탄올 중독 사건의 원인

무엇이 질병의 발병에 기여했는지 원인을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질병의 원인은 보물찾기 놀이처럼 숨겨진 상태로, 발견되기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학술적 차원과 실천적 차원에서 맥락을 고려해야 하고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선 건강 위험은 위해(hazard)와 노출(exposure)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야간근무 1회가 인체에 미치는 위해는 비슷할 수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노출되느냐에 따라 건강 위험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충분한 인력으로 3교대를 하면서 한 달에 세 번 야간근무를 하고 야간근무 후에는 이틀을 완전히 쉬는 근로환경에서 20년 동안 일한 간호사를 생각해보자. 반면 인력이 부족해서 월 8회 이상 야간근무를 해야 하고, 밤 근무를 마친 후 퇴근해서 겨우 하루만 쉬었다 바로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생활을 5년 동안 반복한 간호사가 있다. 심지어 5년 동안 주야 맞교대를 하며 화학물질을 다루는 생산 현장에서 일한 노동자가 있다. 이들의 교대근무 기간이 5년밖에 안 되니까 위험이 훨씬 적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노동환경이 상당히 다른 해외 역학 연구가 추정한 상대위험도를 한국에 그대로 갖다 쓸 수 없는 이유이다. 교대근무라는 위해뿐 아니라, 그 노출의 강도를 반드시 같이 고려해야 한다.

국내에서 발생했던 2-브로모프로판(2-bromopropane), 메탄올 중독 사건은 환경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서 특정 물질이나 위험요인 자체의 속성만이 아니라 노출의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2-브로모프로판은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알려진 프레온의 대체물질이다. 국내의 한 제조업체가 1994년 이를 도입해 공정에 사용한 지 1년 만에 여성 노동자 11명이 월경 중단, 2명은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렸다. 추가 역학조사에서 남녀 노동자 28명의 생식기능 저하도 확인되었다. 당시 이 사건은 2-브로모프로판에 의한 세계 최초의 직업병 보고 사례였다. 그동안 세계적으로 건강 문제가 보고된 적이 없었고, 또 한국에서만 이 물질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사건이 터졌을까? 환기시설이나 보호구 같은 기본적 안전보건 장비도 없이 ‘그냥 막’ 썼기 때문이다.

2016년 메탄올 실명 사건도 비슷하다. 메탄올은 가장 단순한 알코올 화합물이고 인체 독성도 잘 알려져 있다. 우발적 사고나 범죄가 아니면 메탄올 중독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이를테면 유명 관광지에서 범죄조직이 가짜 술을 만들면서 에탄올 대신 저렴한 메탄올을 사용하는 바람에 관광객이 실명했다는 해외 단신, 애주가들이 차량 유리 세정액을 술로 오인해서 마셨다는 화제성 뉴스, 혹은 작업 현장에서 실수로 용기를 쏟아 메탄올에 노출되었다는 정도가 예상 가능한 범위였다. 휴대전화를 만들던 청년 여럿이 메탄올에 중독되어 실명에 이르렀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노동자들이 착오로 메탄올을 마신 건 아닐까 생각했다. 메탄올 증기로 가득 찬 작업장에서 호흡을 통해 이 정도 중독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두 사건에서 2-브로모프로판과 메탄올 자체는 죄가 없다. 이 물질들의 독성이 한국에서만 특별히 극악무도했던 것은 아니지 않나. 작업위험성에 대한 노동자 교육은 물론 배기장치와 보호 장비도 없이 노동자들이 일해야 했던 작업환경, 미흡한 규제 집행이야말로 건강 위험의 진정한 ‘원인’인 셈이다.

ⓒ보건의료노조 제공2013년 11월 보건의료노조가 병원 노동자에게 유방암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가족력은 어떤가? 가족력은 다른 무엇보다 주요한 암의 기여 요인인가? 현실에서 대부분의 질병은 단일 요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들의 기여에 의해 발생한다. 중피종이 발견되면 자동으로 과거 석면 노출을 의심하는 것처럼 비교적 원인-결과의 특이도가 높은 몇몇 예외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질병은 그렇지 않다. 이를 두고 ‘질병의 다요인설’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가족력 혹은 유전적 소인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유전이 더 중요할까, 환경요인이 더 중요할까? 이 대답이 항상 고정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도 ‘맥락’이 작동한다.

역학 분야에서는 유전과 환경요인의 상대적 중요성을 설명하는 예시로 페닐케톤뇨증(Phenylketonuria, PKU)이라는 선천성 대사질환 사례를 흔히 인용한다. PKU는 페닐알라닌 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결함 때문에 페닐알라닌과 그 대사산물이 몸에 축적되는 질환이다. 오랜 시간 누적되면 지능 저하와 색소 피부침착 등 여러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 PKU 유전자 결함을 타고났다 해도 페닐알라닌이 함유되지 않은 특수 분유를 먹고 페닐알라닌 제한 식이를 하게 되면 정상 유전자를 지닌 이들과 비슷한 건강 상태를 누릴 수 있다. PKU의 원인은 분명 유전자 이상이지만, 교정 가능한 요인이 개입되면서 기여 요인 판단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만일 어떤 인구집단에서 PKU 유전자 변이를 모두 제거할 수 있다면 PKU 발병 사례를 100% 예방할 수 있을 테고, 이 경우에는 누가 뭐래도 유전자가 100% 기여 요인이다. 모두가 페닐알라닌 없는 식이를 하는 지역사회라면, 인구 중 몇 명이 PKU 이상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는지에 상관없이 PKU 발병을 100%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에는 식이가 100% 기여 요인이다. 모두가 페닐알라닌을 많이 섭취하는 지역사회에서 몇몇 사람들만 PKU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다면, 이 집단에서 관찰되는 PKU 발병의 변이는 전적으로 유전자 때문이지 식이 탓은 아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에게 PKU 유전자 결함이 있고 페닐알라닌 섭취에서만 차이가 있다면, 이 경우에는 유전자가 아니라 식이가 결정적 기여 요인이 된다.

유전이 질병 발병의 ‘필요조건’인 것은 맞지만, 인구집단 수준에서 볼 때, 유전자와 환경요인을 완벽히 떼어내서 각각의 기여 정도를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황희 정승의 판결처럼 이쪽 말도 옳고 저쪽 말도 옳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원인의 인구집단 기여 정도는 맥락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게 측정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개인 수준에서 각각의 기여 정도를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핵균에 감염되지 않고는 결핵이라는 질환에 걸리지 않지만(필요조건), 결핵균에 감염되었다고 모두 결핵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영양과 면역 상태 같은 환경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충분조건). 유방암의 경우 가족력이 있어야만 유방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고, 유전적 소인이 있다고 해서 모두 유방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유전적 요인의 기여는 대부분 환경이라는 맥락 안에서만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가족력이 유방암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것이 다른 요인, 특히 작업환경 요인의 효과를 배제하는 단서로 쓰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전적 소인과 무관하게 작업환경이나 생활습관 요인이 암의 발병에 기여할 수도 있고, 또한 이러한 요인들이 유전적 소인과 상호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유방암의 유전적 소인이 큰 노동자가 교대근무와 화학물질 유해환경에, 그것도 첫 임신 전 젊은 나이에 노출된다면 유방암 위험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이때 결정적 기여 요인은 유전자인가, 작업환경인가? 우리는 질병의 여러 원인 중 반드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유전과 환경, 그리고 ‘맥락’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건이 시공간적으로 인접해 있고, 선행하는 A 사건에 의해 B가 발생하며, 만일 A 사건이 없었더라면 B가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에 A는 B의 원인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실에서는 어떤 사건 B가 발생하는 데 A만 작용하지 않고 C·D·E가 함께 작동한다. 때로는 Z라는 요인이 함께 있어야만 A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또한 A라는 요인이 분명히 원인이지만 심층 기저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A 사건이 B의 발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X나 Y 같은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원인 규명의 과정이 실험실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어떻게 연구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현실을 놓고도 원인에 대한 판단과 대책이 달라질 수 있다. 생각해보자. 가난한 한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어린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대조 집단을 구상해야 할까? 만일 부유한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어린이를 대조 집단으로 삼는다면, 비교는 ‘가난한 한부모 대 부유한 양친’이 될 것이고 어린이 불건강의 원인(위험요인)은 아마도 ‘가난한 한부모’가 될 것이다. 대책은 무엇인가? 홀로된 부모에게 부유한 배우자라도 맺어주어야 하는 것일까? 이번에는 똑같은 한부모 빈곤가정 어린이인데 국내가 아니라 사회보장 제도가 잘 갖춰진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어린이와 비교해보자. 이 경우 비교는 ‘부실한 복지정책 대 잘 갖춰진 복지정책’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어린이 불건강의 원인은 ‘부실한 복지정책’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아동복지 정책의 강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을 다루는 대부분의 연구는 엄밀한 과학적 평가 따로,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설계 자체가 사회적 맥락 속에 배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 담배를 한 갑씩 피우는 사회에서 역학 연구를 한다면, 코호트 연구를 하든 환자 대조군 연구를 하든 담배가 폐암의 원인임을 발견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폐암 발생의 차이는 오로지 개인의 취약성, 즉 유전적 요인이나 완전히 운에 의해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흡연율이 훨씬 낮은 다른 인구집단과 비교한다면,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점은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고, 또 그 대응으로 담배 규제 정책을 펼칠 수 있다. 현실에서는 담배가 폐암의 원인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똑같이 담배 피우는 사람들만을 두고 이런저런 다양한 연구를 하며 원인을 찾아 헤매는 것 같은 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마치 어두운 밤길에 떨어뜨린 물건을 찾기 위해 물건을 흘린 장소가 아니라 가로등 밑에서만 헤매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특정 요인의 절대적 효과, 개별적인 원인주의 접근에 기울어져 있고, 그 원인이 작동하는 환경이나 연구 근거의 맥락에 대해서는 주의를 덜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업무상 자살에 대한 법원의 산재 인정 판결문에는 비슷한 문구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과거에 우울증을 앓은 전력이나 업무 외에 이러한 증상을 유발한 만한 다른 유인이 발견되지 않은 점” “다른 지병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았기에 업무상 스트레스를 제외하고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자살을 결심할 만큼의 우울증 악화 요인을 찾기 어렵다.” 다른 위험요인은 없이 오로지 업무와 관련된 위험요인만 있어야 업무 관련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과거에 우울증을 앓았거나(즉 생물학적 자살 소인이 이미 존재하거나),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같은 다른 위험요인이 있다면 그 죽음은 업무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힘든데 직장에서의 어려움이 겹쳤다든가, 평소 우울 성향이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악화되어 자살에 이르렀다면 업무 연관성이 없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과학은 객관적인 정답을 제시하며,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판단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의 영역과 사회적 가치판단의 영역을 분리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접근이 타당한 분야도 있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 보건과 복지 분야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적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먼저 질병의 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지식이 아직 부족하고, 또 생물학적 우연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예측의 불확실성이 크다. 메탄올 실명 사건처럼 노출 상황이 학문적 상식을 벗어나기도 하며, 대조집단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문제의 원인 진단과 대처의 지점이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 우리가 사회적 관점에서 질병을 예방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원인, 인과성, 기여 요인에 대한 생각의 폭을 훨씬 더 넓혀야 한다. 이건 연구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맥락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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