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 될까?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630
  • 승인 2019.10.2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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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우크라이나 의혹’을 빌미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탄핵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민주당이 탄핵을 정략적으로 끌고 가면 내년 대선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AP Photo9월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의 선거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의혹을 받아 특검 수사로 위기에 몰렸지만 살아남았다. ‘러시아 게이트’를 넘긴 그가 다시 탄핵 위협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는 도중 민주당 대선 후보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 아들의 비위 의혹을 조사해달라고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월 종료된 러시아 게이트 특검 당시부터 대통령 탄핵을 벼르던 민주당이 결국 칼을 빼들었다. 최대한 신속하게 탄핵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에서는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우크라이나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사건에 연루된 국무부 고위 관료 5명에 대해서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진술서를 받기 위한 절차를 시작했다. 하원은 청문회 및 관련자 진술을 마무리한 뒤 이르면 10월 말 혹은 11월까지 탄핵안을 마련해 본회의에 회부할 계획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국무부 관리들의 진술서를 받아내려는 하원에 일단 반기를 든 상태여서 다소 차질이 예상된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고발자가 폭로하면서 시작되었다. 정보기관에서 일한다는 이 내부고발자는 8월12일 상·하원 정보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7월25일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자신의 국내 정적 가운데 한 사람과 그 아들의 의혹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라고 폭로했다. 그는 자신이 6명 이상의 백악관 관료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내부고발자가 언급한 ‘국내 정적’이란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바이든 전 부통령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문제는 녹취록의 내용이 내부고발자의 주장과 흡사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바이든 의혹’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2016년 미국 부통령인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빅토르 쇼킨 검찰총장을 해임하라고 압박했다. 해임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대출 보증(10억 달러 규모)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했다.’ 2016년 당시 쇼킨 검찰총장은 우크라이나 최대 가스회사의 비위 혐의를 수사하고 있었다. 그 회사에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인 헌터가 이사로 재직 중이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아들이 근무하는 회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총장 해임을 압박했다는 의혹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쇼킨 검찰총장의 해임을 촉구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쇼킨 검찰총장이 ‘부패와의 전쟁’에 미온적이라는 이유였다고 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의회는 2016년 3월 쇼킨 총장을 표결로 해임했다.

ⓒReuter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왼쪽)과 그의 아들 헌터 바이든.

여론은 트럼프 탄핵 조사에 ‘우호적’

미국 주요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바이든 의혹’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내년 대선의 유력 주자인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정치적 흠집을 내서 재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 며칠 전 우크라이나에 대한 4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을 보류한 것도 조사 협조를 얻어내려는 압박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조사 요청과 군사원조를 직접 연계해 언급하진 않았다. 백악관은 “대가성도, 압력도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랜든 엘리아슨 전 연방검사는 <워싱턴포스트>에 “통화 내용 자체로 볼 때 명시적 대가성으로 간주하긴 어렵다. 그러나 (대가성에) 거의 근접했다고 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내부고발자는 10월 중 비공개로 하원 청문회에 출석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내부고발자 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고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와 국무부 고위 인사들을 줄줄이 청문회에 불러내려고 한다.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 최근 사임한 커트 볼커 국무부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 주재 미국 대표 등이다.

하원의 탄핵 조사 시작에 여론은 우호적이다. 9월29일 CBS 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찬성 55%, 반대 45%였다. 9월30일 CNN 여론조사에서는 탄핵 찬성률이 47%로 나왔다. 로버트 뮬러 특검의 조사 결과가 나오던 지난 5월의 탄핵 찬성률(41%)보다 높다. 하지만 탄핵 반대율도 45%여서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CNN은 “지난 5월에 비해 찬성률이 높아진 것은 중도 유권자들과 친공화당 유권자가 찬성 여론에 가세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이 정면승부나 다름없는 탄핵 카드를 꺼냈지만 실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질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 탄핵안이 설사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에서 통과되어도 공화당이 포진한 상원을 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원에서 가결된 탄핵안이 상원을 통과하려면 상원의원 100명 중 적어도 6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상원의원은 공화당 53명, 민주 4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민주당이 최소한 13명의 공화당 의원을 설득해야 탄핵안이 통과된다. 탄핵에 동조하는 공화당 의원은 현재 단 한 명도 없다.

민주당이 탄핵을 너무 정략적으로 끌고 가면 내년 선거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1998년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 인턴과의 성추문이 터진 뒤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이 탄핵안은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탄핵을 주도한 공화당은 그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크게 패했다.

이번 사태가 터진 뒤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에는 큰 변동이 없다. 하원이 탄핵 조사를 시작한 이후인 9월27~30일 해리스X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3%로 종전에 비해 별 차이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정도 지지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기 호황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제럴드 세이브 정치부장은 “공화당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놓았던 탄핵 발의의 덫에 스스로 걸려든 바 있다. 이번엔 민주당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하원에서 시작된 대통령 탄핵이 민주·공화 양당 모두에게 언제든 자신을 겨누는 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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