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플 권리’를 성찰하다
  • 김영화 기자
  • 호수 625
  • 승인 2019.09.10 11: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한진희 지음, 동녘 펴냄

병원 가는 게 싫어서 자주 미루는 편이다. 산부인과 ‘굴욕의자’라든가 뇌를 찌르는 것 같은 치과 신경치료가 싫어서만은 아니다. 병원에 다녀온 날이면 늘 무기력했다.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라며 독설을 날리는 의사가 없더라도 의사의 병명 ‘선고’ 앞에서, 여섯 자릿수의 치료비 앞에서, 스스로를 나무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느꼈던 익숙한 감정들이 스쳤다. 왜 아픈 것은 유독 개인의 탓이 될까. ‘건강관리’라는 말은 늘 옳고 또 쉽지만 정작 아픈 사람들에게는 자책감을 심는 말이다. 한국이 얼마나 건강 강박적인 사회인지, 그리고 얼마나 질병에 대한 낙인을 찍는지는 아프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우울증은 성격이 예민해서 걸린다는 편견과, 여성 질환은 성적으로 문란해서 걸린다는 인식 때문에 환자들은 병원을 나서면서 입을 다문다.

저자는 사소하고도 평범한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사회단체 활동가인 저자는 2009년 팔레스타인으로 구호 활동을 갔다가 건강이 악화됐다. 그 후 10년간 투병과 완치 사이에 있는 ‘경계의 몸’으로 지내면서, 아픈 몸에 대한 서사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다. 병에 걸린다는 것은 ‘어항 속에 돌 하나 더 얹어지는 것이 아니라 핏물 한 컵이 부어지면서 그 물의 밀도가 변하고 그에 따라 생태계가 바뀌는 일’이었다.

질병은 삶에 대한 배신일까. 저자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대신 불안과 함께 사는 법을 터득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 제목은 10년간 질병을 관찰하며 느낀 것을 요약한 한 문장이다. 더 나아가 질병권을 주장한다. 건강권과 비슷하지만 잘 아플 권리를 강조한 용어다. ‘우리의 질병 이야기가 고립되지 않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픈 몸에 대한 혐오를 뚫고 나온 통찰이 한국 사회의 빈 곳을 찌른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