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자리에 눈먼 자 장관 자리도 잃다
  • 이종태 기자
  • 호수 625
  • 승인 2019.09.1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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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천하를 노리고 분란을 일으켰으나 여의치 않다. 이탈리아 극우 정당 ‘동맹당(Lega)’의 대표인 마테오 살비니(47)가 내각에서 쫓겨날지 모를 운명에 처했다. 지난해 6월1일 그는 이탈리아의 부총리 겸 내무장관에 취임했다. 그해 3월 총선에서 동맹당이 제3당으로 떠오르면서 최다 득표 정당인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과 연정을 결성한 덕분이다. 총리는 오성운동 측 인사인 주세페 콘테에게 돌아갔다.

불안한 동거였다. 동맹당과 오성운동은 반(反)이민-반(反)유럽연합 성향의 반체제 정당이란 점에서 통했다. 그러나 오성운동이 직접민주주의, 생태주의, 기본소득제 등을 표방하는 좌파 성향인 반면 동맹당은 민족주의, 보호무역, 감세, 동성결혼 반대, 성매매 합법화, 총기규제 완화 등을 추구하는 극우 정당이다.

지지자들로부터 ‘대장’이라 불리는 살비니는 존재감에서 콘테 총리를 압도했다. 초강경 반이민 조치로 인기몰이에 나섰다. 취임하자마자 지중해 건너편 아프리카 북단의 튀니지 정부를 겨냥해 “유럽 이주의 유일한 목표가 범죄인 자들을 내보낸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난민 구조선 아쿠아리우스(Aquarius)호의 이탈리아 입항을 거부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었다. 아프리카 출신 이주자들을 “새로운 노예”라고 비웃더니, 이탈리아 내의 집시들을 전수조사해서 비국적자를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집시의 국적이 이탈리아인 경우엔 “불행하게도 추방하지 못한다”라고 아쉬움을 표명하면서 전국을 공포와 분노로 들끓게 했다. 이탈리아에서 인종 등록 방식의 인구조사는 명백한 위헌이다. 연정 파트너인 오성운동마저 해당 조치를 철회하라고 살비니를 압박했다.

2019년 들어 연정 내부에서 회복 불가능한 균열이 발생했다. 이탈리아 북서부의 토리노와 프랑스 리옹을 잇는 고속철도 건설사업 때문이다. 생태주의자들이 많은 오성운동은 환경 파괴를 이유로 반대했으나 동맹당은 프로젝트를 강행하려고 했다. 동맹당의 지지자들은 토리노 등 이탈리아 북부의 산업지대에 밀집해 있다. 이런 가운데 동맹당의 지지율이 오성운동을 추월하게 되자 살비니는 총리 자리에 야심을 갖게 된다. 지난 8월 초 콘테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하며 ‘9월 의회 해산, 10월 총선’을 외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8월20일, 콘테 총리는 “살비니가 정치적 사익을 위해 나라 전체를 정치적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무책임하고, 무모하며, 무섭고, 무례하다”라고 격렬히 비난하면서 사임 의사를 밝혔다. 드디어 연정이 붕괴되었다.

살비니의 운은 여기까지인 것으로 보인다. 8월27일 현재 오성운동 측이 의석수 2위 정당으로 중도 좌파인 민주당과 연정 구성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만약 양당이 연정을 구성할 경우, 동맹당은 내각에서 쫓겨난다. 살비니의 의도적 연정 해체 시도를 비난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동맹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혹 떼려다 혹 붙인다’는 경구는 이런 경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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