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주의는 세계를 공멸로 몰고 갈 것인가
  • 이종태 기자
  • 호수 76
  • 승인 2009.02.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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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가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통과시키면서 ‘보호주의 공포’라는 망령이 지구를 떠돌고 있다. 세계의 유력 언론은 보호주의 때문에 지구 경제가 망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한다. 정말 그럴까.
“보호주의는 누구도 보호하지 못한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에게도 그렇다.”

지난 1월 말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 이른바 ‘금융보호주의’(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투자 혹은 대출하던 자금을 국내로 돌리는 현상)에 대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개탄이다. 그러나 브라운 총리에게 이런 발언을 내뱉을 자격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최근 해외 대출 규모를 가장 급속하게 줄이고 있는 나라가 바로 세계적 금융 허브라는 영국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은행가협회 데이비드 둑스 이사는, 영국 기업과 가계(해외가 아니라)에 대출하라는 정부 압력을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금융보호주의와 ‘바이 아메리카’

   
ⓒAP Photo
2009년 1월29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 포럼)에서 블레어가 연설을 하고 있다.
금융보호주의는 왜 위험한가. 그동안 선진국과 개도국(중국·동남아·동유럽 따위의 ‘신흥시장’) 사이에 작동하던 ‘자금과 재화의 흐름’을 해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선진국은 개도국에 자금을 대출하거나 투자하고, 개도국에서는 이 자금으로 값싼 소비재를 만들어 선진국에 수출해왔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에 따르면, 이로 인해 2002~2007년 사이 세계 각국이 다른 나라에 대출하거나 저축한 자금의 규모는 9000억 달러에서 6조 달러로 7배나 상승했다. 이 같은 ‘자금-재화 흐름의 틀’이 해체되어 지구적 경기 침체가 깊어질 수 있다는 염려가 ‘금융보호주의’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다. 국제금융협회는 동유럽에 유입되는 해외 자금의 규모가 2008년의 2540억 달러에서 올해엔 300억 달러로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렇게 스위스에서 금융 부문의 보호주의가 새로운 ‘지구의 공적(公敵)’으로 부상하는 시기, 미국에서는 다른 형태의 보호주의가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미국의 경기 부양 법안에 포함되어 있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조항이 그것이다.

이 조항의 핵심 내용은,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공공사업의 경우 미국산 제품만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도로·다리 같은 사회 기간 시설의 원자재인 철강·시멘트 등이다.

이 같은 내용의 ‘바이 아메리카’는 미국 하원에서 논의된 이후 줄곧 엄청난 비난과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우선 미국의 보호주의에 대해 세계는 끔찍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1929년 증시 대폭락 이후 법제화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수천 종의 품목에 대해 수입관세를 평균 60% 인상함)이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의 연이은 보복 관세 조치→교역량 격감→세계대전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시의 미국 대통령인 후버 역시 스무트-홀리법 제정 직후인 1930년, ‘바이 아메리카’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파이낸셜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세계 유력 경제지들은 “의회가 무역 전쟁을 원한다” “보호주의자가 집권했다고 전세계에 광고한 격이다” “네 이웃을 거지로 만들라(beggar thy neighbor)” 등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정치권을 질타했다.

세계 전체의 보호주의는 지속 불가능

   
ⓒReuters=Newsis
‘바이 아메리카’의 주요 목적은 미국 내 철강산업 등에서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위는 미국 제철소.
지구화된 세계경제 환경에서 모든 나라가 한결같이 극단적인 보호주의 정책을 취한다면, 장기적으로 심각한 상황이 초래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개별 국가 차원에서는 보호주의 정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문제다. 개별 국가들은 불황기에는 자국 경제에 공적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정책은 공적 자금이 ‘국민’을 위해 활용된다고 할 때만(예컨대 일자리 창출) 정치적으로 정당화된다. 거듭해서 보호주의를 공격해온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바이 아메리카’를 용인한 것은 이 조항을 거부했다가는 경기 부양 패키지 전체가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수 있다고 걱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금융보호주의’를 질타한 고든 브라운 총리의 영국 정부가 사실상 해외 대출을 국내 대출로 돌리라고 자국 은행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보호주의에 대한 일방적 비난은 비현실적이며 무용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보호주의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면, 이를 무조건 막기보다 보호주의 정책의 기한이나 종류를 제한하는 세계적 ‘협의 틀’을 만드는 것이 나은 방안이라는 것이다. 예일 대학 제프리 갈튼 교수는 “‘보호주의 나빠’라고 악만 쓸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보호주의를 제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한편 보호주의가 이후의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바이 아메리카’가 세계 공황으로 이어지던 1930년대와 현재의 세계 환경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 원인으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된 세계 경제 통합을 들 수 있다. 세계 경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초국적 기업들은 이미 전 지구 차원에서 원료를 조달하고 생산하며 판매한다. 이들에게 ‘바이 아메리카’류의 정책은 오히려 재앙일 뿐이므로 보호주의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벼랑 끝 위기에 처해 있는 포드· GM·크라이슬러 이 빅 3가 미국 정부에 요구한 것은 관세 인상이 아니라 구제금융이었다.

또한 미국의 보호주의에 따라 중국의 수출이 급감하는 경우 최대 피해자는 미국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수출 흑자를 끌어와 자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메워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수출 흑자가 급감하면 이론상으로는 미국의 국가 부도가 염려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금융보호주의와 ‘바이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최근의 ‘보호주의 공포’는 지나치게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천대 이찬근 교수는 미국의 ‘바이 아메리카’ 정책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보호주의로 인한 미국의 이익보다 손해가 훨씬 크다. ‘바이 아메리카’는 일종의 ‘정치 바람’에서 빚어진 미국의 자충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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