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마케팅의 숨은 비밀
  • 이종태 기자
  • 호수 75
  • 승인 2009.02.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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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실직한 소비자의 차를 되돌려 받는 마케팅으로 미국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다. ‘현대 어슈어런스’의 작동 메커니즘을 알아본다.
   
ⓒ현대차 제공
‘현대 어슈어런스’의 광고 사진.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실시 중인 ‘현대 어슈어런스’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첫 번째가 의구심이라면, 두 번째는 분노다. 의구심이 ‘저런 방식의 서비스가 실제로 가능할까’라면, 분노는 ‘미국에 비해 국내 소비자를 차별한다’이다.

우선 첫 번째 반응(의구심)은, ‘현대 어슈어런스’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현대차와 워커웨이 보험사의 합작

‘현대 어슈어런스’의 적용을 받는 미국 소비자는 차를 구입한 지 1년 이내에 실직이나 개인 파산을 당하는 경우 해당 제품을 현대자동차에 돌려주면 된다. 그 이후의 할부금은 낼 필요가 없다. 가까운 미래에 실직이나 개인 파산을 당할지 모른다는, 소비자의 미래 리스크를 확실히 해결해줌으로써 판매 실적을 올리는 전략이다. 할부금 납부를 중단하는 것은 엄연한 금융계약 위반이지만 소비자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일은 절대 없다. 미국 소비자도 신용등급 하락엔 매우 예민한데 이 문제까지 해소해준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한마디로 정리하면 현대차가 회사 차원에서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객이 자동차 대금을 완납하지 않고 차량을 돌려준다면 현대차는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된다. 그런데 이 손실분을 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에서 현대차와 협약한 보험(중개)사가 바로 워커웨이 미국법인(Walkaway USA)이다. 이 회사는 Walkaway라는 이름 그대로 개인 파산·실업·해외 전근·사망 따위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변화시킬 만한 사고를 당하는 경우 그 당사자를 자동차와 연관된 채무에서 걸어(Walk) 나갈(Away) 수 있게 하는 보험상품을 판매해왔다. ‘현대차 어슈어런스’가 실시되기 훨씬 이전부터다.

이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소비자 A가 1만8000달러 상당의 B 차량을 구입해서 6개월 동안 매달 500달러씩 3000달러를 갚았다고 가정한다. A가 남은 기간에 갚아야 할 할부금은 모두 1만5000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다음 할부금을 납부하기 전에 A는 실직을 당해 B 차량을 자동차 회사에 반납하게 된다.

이 경우, 자동차 회사 처지에서는 해당 차량을 중고차 시장에 내다팔아 미납금인 1만5000달러 중 상당 부분을 회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B 차량의 중고차 시세가 1만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면 자동차 회사는 5000달러를 꼼짝없이 손해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당 자동차 회사가 워커웨이의 고객이라면 5000달러를 보상받을 수 있다. 이 5000달러를 GAP(Guaranteed Auto Protection)라고 하는데, ‘현대 어슈어런스’에서는 이 GAP가 7500달러를 넘으면 안 된다. 7500달러 이상은 소비자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보험 서비스를 받으려면 현대차는 워커웨이에 가입비나 할부 형태로 보험료를 내야 한다. 결국 ‘현대 어슈어런스’의 비결은 현대차 미국법인과 워커웨이의 회사 간 보험 계약인 것이다.

워커웨이는 이 방식을 ‘자동차 돌려주기 프로그램’(vehicle return program)이라고 부르는데 지난 2000년에 캐나다에서 처음 실시했다. 그동안 불의의 사고(실직, 개인 파산, 해외 전근 등)를 당한 자동차 소비자에게 보상한 규모가 3500만 달러에 이른다고 선전한다. 워커웨이는 2007년 9월에 미국으로 진출해 이런 보험 계약 방식으로 특허를 얻었으며 지금까지는 주로 신용조합 회원들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즉, 현대 어슈어런스는 ‘전혀 새로운 서비스’라기보다 워커웨이의 보험 노하우가 자동차회사 차원으로 확장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왜 안 되나

그렇다면 두 번째 반응(분노)은 근거가 상실되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현대차가 ‘자동차 돌려주기’ 계약을 맺을 만한 보험업체가 아직은 없고, 이와 관련된 금융기법이 개발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고차 시장이 미국만큼 발전된 상태에 있는지도 미지수다. 당장 실시하기는 어렵고 차별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문제는 ‘현대 어슈어런스’의 미래다. 현대차와 워커웨이는 이후 경기 변동이나 실업률에 대한 나름의 예측에 근거해서 이같은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을 터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워커웨이의 고객은 주로 신용조합 회원에 국한되었다. 현대차처럼 미국 전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거대 자동차 메이커와의 계약은 워커웨이로서도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예컨대 경기와 자동차 반환율이 양사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사태가 발생하고, 이를 워커웨이가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처한다면, 현대차는 창사 이후 가장 치명적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금융 위기 역시 투자은행들의 과학적(?) 예측에 대한 맹신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결국 현대자동차가 ‘현대 어슈어런스’로 미국 시장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세계 시장의 최강자로 등극하게 될지, 아니면 사상 초유의 위기에 놓이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세계 시장 상황이라는 외부 조건일 수밖에 없다. 1~2월의 실적만 보고 현대차의 미래를 섣불리 낙관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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