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고치는 데 재미 들렸나
  • 김은남 기자
  • 호수 75
  • 승인 2009.02.1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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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 교사들이 뿔났다. 아직 시행해보지도 않은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을 교과부가 뜯어고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교과부는 왜 ‘헌법’이나 다름없다는 교육과정을 흔들려는 것일까.
   
ⓒ교육희망 유영민 기자
2월9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정조 어찰 299통을 새로 발굴해 공개했다.
역사 교과서에 이어 이번에는 사회 과목이다. 교과부가 중등 사회과 교육과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면서 교육계가 혼란에 빠졌다. 교육과정은 흔히 교육계의 헌법에 비유된다. 정부가 행정고시한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가 집필되고 가르칠 내용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이것이 유린될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국사회교사모임 김원태 부회장(산본고 교사)은 “어찌 보면 역사 교과서 수정보다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쿠데타적 교육과정 변경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지난 1월22일 사회과 교육과정 개정안 공청회를 개최하고 2월6일 사회과 교육과정심의회를 열어 교육과정 수정안을 검토하는 등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수순을 일사천리로 밟아가는 중이다.

이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전국사회교사모임·전국역사교사모임·한국역사연구회 등 41개 단체로 구성된 ‘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사회 교육과정 개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교과부가 아직 교육 현장에 적용되지도 않은 교육과정을 바꾸려 한다고 비판했다. 교과부가 현재 개정하려는 교육과정은 제7차 교육과정(1997~2007)을 손본 것으로, 2007년 2월 고시되어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이라 불린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은 2011년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하게끔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출판사들은 필자를 섭외해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새 사회 교과서를 집필 중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교과부가 교육과정을 고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교과서 집필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경제 교육 강화 이유로 개정 추진

아직 시행하지도 않은 교육과정을 교과부가 고치겠다고 나선 가장 큰 이유는 경제 교육이다. 1월22일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홍후조 교수(고려대·교육학)는 경제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비해 현행 교육과정이 상대적으로 경제 교육을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1 사회 교육과정을 통합형 주제 방식으로 바꾼 것 또한 도마에 올랐다. 사회 과목은 지리·역사·일반사회 등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중 일반사회 영역을 살펴보면, 2007년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단원을 ‘문화·정의·세계화·인권·삶의 질’이라는 5개 통합형 주제로 구성하게 되어 있다. 통합형 사고 능력을 성숙시킨다는 취지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법’ 등 분과형 주제로 나뉘어 있던 과거와 달리 통합형 주제로 단원을 나눈 것이다.

이에 대해 사회과 교육과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도적으로 제기해온 김진영 교수(강원대·사회교육)는, 한국처럼 교과 간 경계가 뚜렷한 환경에서는 통합형 주제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김 교수는 시행도 해보지 않은 교육과정을 왜 개정하느냐 하는 비판에 대해 교과서 개발이 이미 끝난 상태에서 개정하는 것보다는 지금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교육과정 개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 교육이나 통합형·분과형 주제에 관한 논란은 이번에 처음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논란을 모두 수렴해야 하기에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데는 3~4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회과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의 경우도 2004년 기초 연구를 시작하고, 2005년 교육과정 개정 시안이 나온 이래 10여 차례 공청회·심의회를 거친 끝에 확정됐다. 박사급 연구원 10여 명을 포함, 전문가 30여 명이 매달려 탄생시킨 결과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통합형 주제로 단원을 정하는 것을 놓고 벌어진 논란만도 1년 넘게 이어졌다. 일반 사회과 교사를 상대로 설문 조사도 벌였다. 조사 결과 70%가 넘는 교사가 통합형 주제에 찬성했고, 이 방향으로 개정이 추진됐다. 그런데 이것이 하루아침에 다시 뒤집힌 것이다. 이혁규 교수(청주교대·사회교육)는 논의 기간이나 개발에 참여한 인원, 공청회 횟수 따위를 따져볼 때 현재 교과부가 추진하는 교육과정 개정은 졸속 개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담당자는 “교육과정을 전면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 수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릴 까닭이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사회과 교사들은 생각이 다르다. 사회 교과서 집필 작업에 참여 중인 권재원씨(풍성중 교사)는 고1 사회과 교육과정의 경우 골간이 완전히 바뀐 셈이라고 지적했다. 통합형에서 분과형으로 돌아가고, 경제 단원을 강화한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테면 ‘삶의 질’ 단원. 일단 교과부가 제시한 개정안에는 ‘경제성장과 삶의 질’로 단원명이 바뀌어 있다. 그뿐만 아니다. 삶의 질이 다양한 요인에 의해 이뤄진다고 기술한 현행안과 달리 개정안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요인임을 인식한다”라고 못박고 있다. 성장제일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셈이다. 전국사회교사모임 장경주 회장은 ‘정의’와 ‘인권’ 두 개로 나뉘어 있던 단원을 ‘인권 및 사회 정의와 법’으로 통합한 데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 단원에서는 기본권 보장과 더불어 이를 제한받을 수도 있음이 여러 차례 강조돼 있다. ‘개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가 불법행위나 범죄 등으로 나타남을 이해한다’는 항목도 있다. 현 정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법치’에 대한 강조가 인권 단원과 뒤섞여 혼동을 일으키는 양상이다.

“혈세 낭비한 교과부 책임자 문책해야”

공대위는 교과부가 이렇게 졸속 개정을 추진한 데 정치적 배경이 있다고 주장한다. 곧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교과부가 일부 경제계와 경제교육 강화론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들여 무리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경제계와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 학자들은 현행 사회·경제 교과서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왔다. 부정확한 서술·해석이 많고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담고 있다는 것 등이 그 이유였다. 교과부가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직권 수정을 지시한 뒤 이들의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지난해 12월15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역사 및 경제교과서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김진영 교수는 현행 사회·경제 교과서와 교육과정이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성과는 물론이고 한국 경제가 거둔 성과에 대해서도 더욱 강조해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부는 정치적 배경설을 일축했다. 교과부 담당자는 “과거부터 여러 차례 지적돼왔고 예상됐던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육과정 일부를 개정하려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형준 교수(성신여대·경제교육)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할 일이라고 일갈했다. 무려 4년에 걸쳐 연구·개발 작업을 해놓고도 문제점이 뻔히 예상되는 교육과정을 내놓음으로써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면 교과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부터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문책을 당했다는 공무원은 아직 없다. 교과부는 교과서 집필이 늦어져 빚어질 혼선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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