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소설을 ‘검열’하다니…
  • 김홍민 (출판사 북스피어 대표)
  • 호수 75
  • 승인 2009.02.13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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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안희태
지난해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 서적’.
문학사에서 중요한 취급을 받는 작품은 많지만, 정작 제대로 된 전집이 없는 한국 문학의 현실은 그간 여러 논자에 의해 지적돼왔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을 만드는 지식(지만지)’ 출판사가 펴낸 <한국 근현대문학 총서>는, 선정된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발표 당시 표기 형태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취지 역시 상당히 평가받을 만하다. 이번에 출간되는 총서에는, 최초의 전문 탐정 소설가로 평가되는 김내성의 <마인>과 1940년 일본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김사량의 작품집 등도 포함되어 있다.
당장 전질을 구입하기는 돈이 없어 곤란하지만, 관심이 가는 몇 권은 사봐도 좋을 듯싶어 목록을 갈무리해 두었다. 한데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기사가 눈에 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이유로 통일부의 출간 검증 절차가 필요한 황건의 <개마고원>은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소식이 소박하게나마 세상에 알려진 건, 해당 출판사의 편집자라고 밝힌 이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 덕분이다. 내용을 읽어보니, 이번 총서에 포함돼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소설가 황건의 <개마고원> 출간에 대해 통일부가 제동을 걸고 조건부 승인 방침을 밝힌 모양이다. 그 조건이란 대략 이렇다. ‘김일성’이 들어간 문장(“그 사이에 평양에는 북조선 인민위원회가 창설되고 김일성 장군이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을 삭제할 것, 남한군이나 미군을 ‘원쑤’라고 표기한 대목(“나는 조국의 이 엄중한 날에 원쑤에 대한 싸움보다도 나 개인을 위한”)을 삭제할 것,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이 들어간 문단(“피난 가다 숨은 두 녀자를 미국 놈들이 발견하고 겁탈하려 끌어냈던 것이며”) 전체를 들어낼 것. 하지만 <개마고원>은 이미 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국내에 들어와 있으며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가면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는 책일 뿐만 아니라, 20여 년 전에는 국내 다른 출판사에서 원본 그대로 출간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아고라’에 올라온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황건이라는 작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 <개마고원>이라는 책이 출간돼도 적극적으로 구입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신경숙의 소설이 팔리고 황석영의 소설이 엄청나게 나가는 것이 “한국 문학의 부활이고 축복”이라면, 황건의 <개마고원>이 당시 표기 그대로 출간되는 것 역시 한국 문학의 처지에서 볼 때 또 다른 의미의 부활이자 축복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아고라’를 비롯한 몇몇 게시판을 중심으로 누리꾼들의 “어이없다”는 반응이 속속 올라오고 있지만 며칠 사이에 유야무야 묻히는 가운데, 지만지 출판사는 이미 제작까지 마친 <개마고원>의 출간을 포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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