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 일상 흔드는 몹쓸 호기심
  • 최은정 인턴 기자
  • 호수 74
  • 승인 2009.02.1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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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도 할아버지·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위는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 중인 서명 운동.

“할아버지·할머니를 영화 속의 할아버지·할머니로 놔두실 수는 없나요?” 2월3일 <워낭소리> 제작사 ‘느림보’는 인터넷 공식 블로그에 올린 ‘언론과 관객들에게 드리는 긴급 호소문’에서 이같이 말했다. 영화에 출연한 노부부를 향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 그들의 평온한 일상에 균열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개봉 후 주인공 노부부에게 세배를 드리러 간 이충렬 감독에게 최원균 할아버지는 대뜸 화부터 냈다. <워낭소리>를 보고 집을 찾아온 언론사 기자와 관광객들이 모두 이 감독이 보낸 사람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집에 심지어 “영화로 돈 많이 벌었을 텐데 나도 좀 달라”는 전화까지 걸려왔다고 이 감독은 말했다.

감독과 제작사의 호소에 누리꾼도 움직였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워낭소리> 할아버지를 괴롭히지 마세요’라는 서명 운동이 시작되었다. 2월6일까지 2800여 명이 참여했다. 누리꾼 ‘투덜이스머프’는 “다른 이의 소중한 삶이 호기심이나 관광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서명한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걱정하는 건 예전의 나쁜 기억 때문이다. 2000년 KBS 휴먼 다큐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산골 소녀 영자’는 1년 뒤 아버지를 잃었다. 방송 광고에까지 출연한 영자를 보고 집에 현금이 많을 거라 생각한 강도가 저지른 짓이었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집으로>의 김을분 할머니는 언론의 취재 공세와 관광객의 방문 때문에 결국 수십 년 살아온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개봉한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실제 주인공 엄기봉씨 역시 후원금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갈등으로 노모와 생이별해야 했다.

이 감독은 “최원균 할아버지가 싫어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가 할머니 잔소리, 다른 하나는 우리 제작진이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할아버지는 일을 방해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나온 영상을 보여드려도 잠깐 보다가 다시 일하러 가는 분이다. 그렇게 일만 아는 분께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돈 빌려달라는 전화를 거는 분은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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