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장’ 공포의 시대 도래하다
  • 이종태 기자
  • 호수 74
  • 승인 2009.02.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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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추정대로 올해 ‘-4% 성장’을 기록하면 ‘실업대란 → 소비 감소 → 경기회복 지연 →경제성장률 추가 하락’이라는 최악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사회적 타협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 혁신’만이 해법
   
ⓒ시사IN 안희태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경제성장’ 국면에 진입함에 따라, 가계와 기업 등이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 전망이다. 사진은 폐쇄된 한 중소기업의 작업장 입구.
‘경상수지 흑자 500억 달러면 경제 위기는 해결된다.’ 외환 위기 사태로 한국 경제가 공황 상태로 몰렸던 1998년 초, 당시 전경련 회장이기도 했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이렇게 믿었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대안이다. 국가 부도로 인한 ‘마이너스 경제성장’쯤이야 더 많은 무역수지 흑자로 만회하면 되지 않겠는가. 더욱이 1990년대 후반기는 미국의 닷컴 열풍이 전세계적으로 수출품에 대한 수요를 한껏 띄우던 시기였으므로.

실제 -6.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1998년,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무려 403억 달러를 기록한다(비록 수입량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그 이듬해인 1999년, 한국 경제는 9.5% 성장으로 외환 위기 이전의 규모를 이미 웃돌게 되었다. 2000년에도 8.5%라는 놀라운 실적을 기록한다. 심지어 닷컴 버블의 폭발로 인한 전세계적인 경기침체기(2001~2002년)에도 한국은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으로 버텼다. 일시적 외환 유동성 문제로 인한 경제 위기 정도야 외부 환경이 괜찮은 한 수출 증대 등의 단순한(?) 대책으로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경제가 1998년 이후 비교적 순조롭게 항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 덕분이다. 미국으로 직수출하고, ‘세계의 공장’인 중국을 통해 간접적으로도 미국에 상품을 내다 팔았다. 그렇다면 미국인이 한국 등 동아시아의 상품을 그토록 많이 소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닷컴 버블이 터진 이후 미국 경제를 풍미한 끝에 최근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를 불러온 금융 버블 덕분이다. 한마디로 미국인은 ‘금융 연금술’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과잉 유동성을 방출했고, 이는 동아시아 상품에 대한 대규모 수요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 버블의 파열에 따른 현재의 지구적 금융 위기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동안 미국과 동아시아 사이에 존재하던 공존공영의 틀이 산산조각났다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동아시아도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 버블의 수혜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번영은 미국이든 동아시아든 주로 상류층에 집중되었으나, 국가 전체 차원에서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공존공영의 틀이 파괴된 결과 중 하나가 바로, 국제통화기금(IMF)의 2009년 한국 GDP 성장률 추정치인 ‘-4%’다. 경제성장률(실질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즉 ‘음의 수치’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경제 규모(GDP) 그 자체가 오히려 축소된다는 의미다. 경제 규모 지표 중 하나인 GDP(국내총생산)는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가치를 의미한다. 그리고 GDP 성장, 즉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가치’가 증가한다는 것은 이에 직결되는 경제활동(투자·고용·소비) 역시 많아지고 활발해진다는 뜻이다. 이처럼 경제성장률은 고용·소비 등 그 나라 서민의 생활 수준과 밀접한 개념이다.

“일자리 150만 개 줄어든다”


물론 GDP가 성장한다고 해서 그 나라 국민의 생활의 질이 반드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GDP 성장률이 인구 증가율보다 충분히 높지 않다면 국민 개개인의 생활수준은 이전보다 더 악화될 수 있다. 혹은 경제성장이 고용의 규모나 질을 오히려 열악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양극화만 깊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GDP 성장이라는 현상은 아무래도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늘어나고, 그만큼 고용·소비 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해당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좀더 커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이에 비해 마이너스 경제성장은 경제 규모가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이다. 즉, 전년도보다 적은 규모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며, 이에 따라 국민의 생활수준 역시 전반적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경우, 1998년 이후 10여 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왔으나 중상층 이하 시민의 생활 수준과 만족도가 오히려 낮아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경제성장의 영향은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2분기 이상 계속되는 경우를 경제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리세션(recession)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미 지난해 4분기에 -5.6%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IMF는 올해 1~3분기 사이에도 한국이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시현하리라 추정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리세션에 해당한다.

이런 마이너스 성장 혹은 리세션은 시민의 삶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울 것인가. 우선 대량 실업이 염려된다. 2000년 이후 한국 경제는 매년 3~5%, 심지어 7%대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이에 따른 고용 규모와 질은 시민에게 매우 불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런데 마이너스 경제성장이란 것은 그동안의 불만을 우습게 만들 소지가 크다. 지금까지는 경제활동 가능 인구에 비해 일자리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게 늘어났을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 닥칠 현상은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이 -1%일 때는 일자리 12만 개, -2%일 때는 18만 개가 줄어든다고 한다. 이 연구원은 -4%인 경우는 아예 예로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현재 각종 연구소와 언론에서는 40만 개에서 150만 개 감소까지 다양한 추정이 제기된다. 연구원 측에서 사용하는 취업유발계수·노동탄력성 등의 지표가 현실의 다양한 변화를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일자리가 줄어들면 민간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한국 경제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이후 계속 하락하는 추세로, 지난해 하반기에는 48% 정도였다. 특히 2007년 이후 민간 소비의 분기별 성장률은 경제성장률보다 지속적으로 낮았으며, 지난해 2분기에는 -0.2%, 4분기에는 -4.8%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는 더욱 열악해질 것이 확실하며, 이런 민간 소비의 부진은 경기회복이 매우 어렵거나 지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위기의 자영업자, 비상구조차 없다

더욱이 올해 이후 민간 소비의 부진을 더욱 부추길 결정적 요인이 있다. 바로 역방향의 자산효과다(자신이 보유한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는 경우 소비를 늘리고, 반대의 경우에는 소비를 줄이는 경향).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인의 경제생활에 나타난 큰 변화 중 하나는 보유 자산 중 주식·채권 등 금융자산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증권시장이 비교적 활황을 누리는 기간 동안 금융자산의 가치 상승은 민간 소비를 늘리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리먼브러더스가 사실상 파산한 이후 본격화한 금융자산 가치의 하락은 이미 민간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걱정되는 제2의 미국발 금융 위기가 현실화되면 내수 침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해질 수 있다. 이 밖에도 대량 해고가 강행되거나 주택건설 경기가 경착륙하는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민간소비 부문의 침체와 이에 따른 경제성장률의 추가 하락이 염려된다. 민간소비 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이미 1998년 이후 최악의 수치인 -4.8%를 기록한 바 있다.
   
ⓒ시사IN 윤무영
일용직 노동자들이 서울 남구로역 주변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줄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민간 소비의 부진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계층은 자영업자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2월 현재 한국의 비임금 근로자(자영업자)는 700만여 명에 이르는데, 이 부문의 부진은 사회적 갈등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 중에는 고용 부문(직장)에서 밀려나 최종적인 비상구로 자영업을 선택한 경우가 많고, 또 가게 운영을 포기하는 경우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등 급격한 지위 하락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비임금 근로자 규모는 지난해 12월에만 9만7000여 명 줄어든 상태인데 이 중 상당 부분이 폐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외에도 본격적 경기하강이 시작되지도 않은 2009년 2월 현재, 당연한 이야기지만 설비투자나 기업 부도 등의 주요 지표 역시 한결같이 매우 음울한 조짐을 나타낸다.

물론 IMF는 내년에는 한국이 G20 국가 중 가장 높은 4.2% GDP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 줄어든 경제 규모가 1년 만에 지난해 수준으로 회복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전세계적 경기 침체가 올해 하반기부터 반전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추정에서 비롯되는 전망일 뿐이다. IMF는 지난 1월28일 발간한 <세계경제전망>(WEO)에서 올 4분기 이후 세계 경제의 반전을 예상하면서도 “이런 전망의 불확실성은 예외적으로(unusually) 크다”라고 ‘자백’한다.

   
ⓒ연합뉴스
2000년 국민·주택은행 노동조합의 농성을 ‘진압’하는 경찰 헬기 모습.
그 이유는 이번 금융 위기의 규모와 범위가, 심지어 IMF도 “모르겠다”라고 할 만큼 미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주범인 초대형 금융기관들은 지금까지도 자사의 손실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 시장에 대한 자금 공급을 극단적으로 기피하며 이에 따른 신용경색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후 미국의 초대형 금융기관이나 제조기업의 분기별 실적 발표 때마다 세계 시장은 숨죽일 것이며, 그 결과가 나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시장은 ‘사건’에 언제나 지나치게 과잉 반응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IMF는 2009년 미국의 GDP 성장률을 -1.6%로 추정하지만, 더욱 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고, ‘세계의 수출 시장’인 미국의 부진은 세계 경제를 리세션 이상의 장기 불황으로 몰아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금융자산과 부동산의 가치 급락, 일자리 불안을 동시에 감수해야 하는 미국인은 소비를 늘릴 수 없을 전망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는 민간 소비의 저하가 현실화되고 있는데, 이는 지난 동아시아 위기와 닷컴 버블 당시에도 미국의 민간 소비만큼은 증가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충격적이다. 또한 2008년 11월, 미국의 해고 노동자는 모두 53만여 명으로 추계되었는데, 이는 ‘월별 해고’로는 34년 만에 가장 높았다.

해외 경제 상황, 경기회복 걸림돌 될 듯

이에 더해 미국이 무역과 금융에서 보호주의를 채택할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인 애국기업법은, 공자금이 투입된 건설사업의 경우 미국제 철강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수출국들의 경기 침체를 더욱 깊게 해 세계 경제를 전반적 침체로 빠뜨릴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10년 전 경제 위기에서 한국의 구원자였던 해외 환경은 이제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거나 심지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지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IMF 등이 내놓는 대안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각국 정부는 적극적 재정 정책으로 신용경색과 불확실성에 강력히 대처하고, 이를 통해 전세계적 차원에서 소비자와 기업의 신뢰와 낙관적 전망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전략이다. 그러나 각국 정부의 강력한 대응과 국제협력에 따라 지구 경제 환경이 급속히 개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경제 위기라는 것은 당대에는 언제나 불가사의한 대상이었지만, 결국에는 어디선가 혁신적인 정치·경제적 대안이 돌출되면서 해결되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지구화한 세계경제 시스템에 가장 강력하게 편입된 국가인 만큼 그 영향도 가장 강하게 받는 나라다. 그래서 IMF는 한국이 세계적 불황기에는 가장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지만, 호황기에는 가장 빨리 회복할 수 있으리라 추정했던 것이다. 이런 조건을 감안하면, 현시점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세계경제의 변동 추이를 면밀히 주시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타협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 ‘혁신’을 모색하는 것이다. 경제 위기에 대한 혁신적인 정치·경제 대안이 서구에서만 가능하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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