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다복회 계주가 작성한 회원 관리 명단(왼쪽)과 가입 현황(오른쪽)을 입수했다.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다복회 명단은 피해자들이 작성한 문건이었다. 문건에 따르면 다복회 회원은 700명이 넘는다.
계주가 구속되고 경찰 수사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다복회(多福會) 파문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복을 많이 준다는 이 계(契) 모임은 가입하고 싶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계주 윤 아무개씨(51·여)는 계원을 들이는 데 깐깐하기로 유명했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 많아야 한다. 다복회 계원 김 아무개씨는 “회원은 믿을 만한 회사나 가게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를 탈 때 나머지 곗돈을 낼 수 있을 만한 담보를 제공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왜 부자들은 계에 빠져드나

둘째, 그들만의 세상과 연결 고리가 있거나 유명인이어야 했다. 서울 강남에 계원들이 몰려 있는 것 그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계원은 “내 이름으로 사업체가 있고 가족이 전직 국회의원이어서 가입이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다른 계원 박 아무개씨는 계에 들어가기 위해 유명 MC인 동생 이름을 빌려야 했다. 인기 연예인 박 아무개씨는 〈시사IN〉 기자에게 “언니가 목돈이 필요해 계에 들고 싶어해서 함께 계에 가입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복회는 귀족계(契)로 불렸다. 가입 장벽이 높아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 모인다는 소문이 나면서 다복회에는 사람이 몰렸다. 기업가·의사·변호사·연예인·대형식당 주인의 부인들이 다복회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서울 강남에 사는 계원 김 아무개씨는 “경찰 고위 간부 등 정·관계에 힘 있는 분들이 다복회에 포진하고 있어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계원들끼리 많이 했다. 심지어 계주가 잡혀갔을 때도 자금 출처는 조사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라고 말했다(42쪽 상자 기사 참조).

다복회는 순서를 정해 곗돈을 타는 방식인 번호계와, 가장 많은 이자를 써낸 사람이 곗돈을 먼저 타는 방식인 낙찰계로 운영됐다. 낙찰계의 경우 나중에 탈수록 많은 이자를 받는다. 낙찰계는 급전이라는 성격상 깨질 위험이 매우 높다. 다복회 계원 정 아무개씨는 “한 달에 600만~700만원을 부어서 열 달 만에 1억원을 만들 수 있는 게 낙찰계의 매력이다. 열 달 만에 6500만원으로 1억원을 만들고, 1억7000만원이 2억이 되는 것을 눈으로 보면 그때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다복회 곗날은 점심시간에 식당을 통째로 빌려 진행했다(오◯◯, 토◯◯, 우◯, 파◯◯◯, 오◯◯◯◯, 부◯◯◯, 수◯식당 등 계원 가운데 식당 주인이 유난히 많다). 써내는 이자에 따라 낙찰금이 바뀌는데 계원들은 여기에서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고 한다. 계주 윤씨는 되도록 현금을 가져오라고 했다. 받은 곗돈은 식탁 위에 수북이 쌓아두었는데 계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2년 동안 다복회에서 활동한 김 아무개씨는 “한 번 나오면 금방 여러 개의 계에 들게 된다. 한 고려대 교수는 계 열다섯 개를 굴리며 매일 곗방에 나오다시피 했다”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지난 10월7일 다복회 계원들이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대책회의를 가졌다.
경찰 조사 결과 다복회 계주 윤씨는 “일반 사업하는 것보다 10배 이익이 있다” “낙찰금을 받을 때 이를 빌려주면 4부 이자를 지급하겠다”라는 말로 계원을 모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금이 없고 자금의 출처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 명품계의 가장 큰 흥행 요인이었다. 경기가 불황이라지만 부자들의 주머니는 차고 넘쳤다. 다복회에서는 현금 30억원을 굴려도 큰손 축에 들지 못했다. 강남에서 룸살롱 여러 곳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2007년 다복회에서 100여 가지 계에 가입했다. 액수만도 100억원이 훌쩍 넘었다. 성북동 계주 몇 명은 한 달에 20억원가량을 곗돈으로 냈다. 한 의사 부인은 매달 1억5000만원을 곗돈으로 부었다. 다복회에서 연예인은 그리 큰 손님이 아니다. 그런데도 트로트 가수 김혜연씨는 2007년 4월까지 다복회에서 탄 곗돈이 30억원가량 된다.

다복회에 검은돈 차고 넘쳐

다복회에는 사채·정치자금 등 검은돈이 섞여 있다는 소리가 꼬리를 물었다. 다복회 사정에 밝은 한 의사의 말이다. “한 전직 장관 부인은 아직도 크기가 큰 구권 1만원짜리를 쓴다. 수표도 구권을 쓴다. 그 부인은 돈을 낼 때마다 은행에 의뢰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계를 통해 해결한다고 했다.”

앞서 말한 중소기업을 하는 다복회의 한 계원은 “회사를 하는 나도 수천만원이 다복회에서 망가지니 복구가 쉽지 않다. 그런데 매달 수억원을 계에 쏟아붓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하다. 다복회는 탈세의 통로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는 계주 윤씨가 곗돈을 편취한 혐의에 집중됐다. 계원들과 곗돈의 출처에 대한 수사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경기 침체가 깊어지자 잘나가던 명품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주 윤씨는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계원에게 사채놀이를 했다. 연 50%에 가까운 사채놀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윤씨가 돈을 빌려준 회사와 개인이 하나 둘 부도를 내고 말았다. 특히 시행사 한 곳에 수십억원을 빌려주었다가 떼인 것이 치명적이었다고 윤씨의 지인은 말했다.

또 계원 중 일부가 계금을 받고도 곗돈을 내지 못했다. 게다가 담보가치가 하락해 충당이 어려웠다. 윤씨는 받은 낙찰금을 다시 다복회에 빌려주면 시중 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돈을 빌렸다. 또 계의 부족한 부분은 사채로 막았고 다시 사채로 돌려막기를 하다 결국 계가 무너져버렸다. 강남경찰서 이지춘 수사과장은 “윤씨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채를 많이 썼다. 사채는 원금이 200억원이지만, 이자로만 300억원이 지급되었다”라고 말했다.

계주 윤씨가 구속되면서 다복회는 파국을 맞았다. 그 피해액만도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계원들은 예상한다. 1억~2억원 손해를 본 사람은 수도 없이 많고, 50억~100억원 손해를 입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한다.

다복회는 명칭을 바꾸어 귀족계로 명맥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금은방을 하는 홍 아무개씨 등 몇 사람이 주축이 되어 다복회를 인수인계하기로 했다. 인수에 참여하겠다는 한 다복회 계원은 “다복회의 인프라 가치가 수백억원에 달해 시드머니를 대주겠다는 사모님들이 많다. 지금 계가 깨지면 더 큰 피해가 온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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