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백승기1961년 서울 출생. 고려대 법대 졸업. 법학박사. 제26회 사시 합격. 제16대 한나라당 의원, 원내 부총무. 2006년 제36대 서울특별시장 취임. 2008년 대한민국 창조경영인상, 21세기 경영리더대상 수상.

“나보다 더 창의적 발상으로 서울시를 이끌 분이 나온다면 굳이 시장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겠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친정 한나라당 일각에서 ‘오세훈 재선 불가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이렇게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이어 “오세훈 시장 체제에서 서울시민 행복 총량이 얼마나 증진됐나”를 놓고 내년쯤 정치적 명운을 건 중간 평가를 받겠노라고 선언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 야망과 포부를 들어보았다.

시장 재임 2년여의 성과를 자평한다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변화는 서울시 공무원 조직 안에 경쟁 원리를 도입해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창의시정을 모토로 인사, 민원정책, 공무원 교육훈련 시스템 등을 다 바꿨다. 취임 뒤 시정 아이디어가 하루 평균 140여 건씩 총 7만8000여 가지가 모아져 그 가운데 1400건 정도를 실행했다. 바뀐 시스템의 성과는 서울시 공무원 청렴도와 민원서비스 부문 시민 만족도가 잘 말해준다. 그동안 서울시 청렴도는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늘 최하위였지만 지난해 6위를 기록했다. 민원 서비스 시민 만족도도 평균 65점에서 취임 1년 만에 75점으로 올랐다.

최근 경제위기 국면에서 서울 서민의 생활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특별한 대책이라도 있나.
경제난으로 사회 전반이 어려워져 맞춤형 복지를 모토로 잡고 다섯 가지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빈곤층에는 희망드림 프로젝트, 장애인에게는 행복도시 프로젝트, 저소득층 자녀에게는 꿈나무 프로젝트, 노년층에게는 9988프로젝트, 여성 권익 향상에는 여행(여성 행복) 프로젝트 등 5개 맞춤형 복지정책을 세웠다.

빈곤층 대책이 가장 절실한 시점인데….
그동안 복지정책은 극빈층에 대한 현금 지급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빈곤층 경계선에 있는 분에게는 희망을 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가령 기초생활 수급자에게는 시에서 현금 지원을 했지만 월소득 100만~130만원대의 빈곤 경계선에 있는 분들에게는 아무런 동기 부여를 못해주는 역기능이 있었다. 이를 해소하면서 시민의 자립 의지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새로 마련한 정책이 ‘희망드림 프로젝트’다.

희망드림 프로젝트의 구체적 내용은 뭔가.
차상위 계층에게 본인이 노력해서 저축하는 만큼 서울시와 민간 복지단체가 힘을 합쳐서 지원한다. 소자본 창업이라도 가능하도록 목돈 마련을 지원해주는 매칭시스템이다. 또 빈곤층 자녀가 가난을 대물림하는 악순환 고리를 끊도록 지원하는 꿈나라통장, 저소득층의 주거 대책을 마련하는 해비타트운동이라 할 ‘쉬프트’ 주택정책, 노숙자의 생애 의지를 스스로 불태우도록 만드는 프로그램 등도 경제난 시대 서울형 복지정책의 골간이다.

서울시 주택정책은 뉴타운 정책과 맞물려 논란이 이는데….
뉴타운은 주택정책이라기보다 주거환경 개선사업이다. 서울시 주택정책은 따로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집을 재산 형성 도구로 생각하는 사회 통념을 한번 깨보겠다는 다소 무모한 도전적 목표를 세웠다. 기존 임대주택 개념과 다른 장기전세주택 보급 정책으로 ‘쉬프트’를 도입했다. 서민이 한 번 전세로 들어가면 20년은 거주할 수 있다. 값도 싸고 역세권에 짓는 ‘쉬프트’는 서울 주택정책의 중심이다. 첫 쉬프트 아파트가 마포구 대흥동에 들어선다.

당정에서는 오 시장이 뉴타운 정책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더라.
뉴타운 시범사업을 해보니 서울의 주거형태가 너무 아파트 일변도로 치우쳤다. 현재 속도대로 뉴타운 사업을 진행하면 4년 내에 서울의 주택은 80%가 아파트로 바뀐다. 서민용 중소형 주택 공급이 줄고, 원주민 재정착률이 낮아서 원치 않는 이주자가 늘어난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거환경개선자문회의를 설치해 기존 뉴타운 콘셉트를 수정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내년 초쯤 서울시의 고민을 담은 뉴타운 개선안이 나오면 그 결과를 토대로 진행할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최근 뉴타운을 확대하고, 그린벨트를 해제해 서울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오 시장의 방침과 어긋나지 않나.
서울 부동산 가격이 좀더 안정되고 이미 지정한 1, 2, 3차 뉴타운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되었을 때 뉴타운 추가 지정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서울시 방침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집을 짓겠다는 중앙정부의 방침이 어떤 고민 속에서 나왔는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그린벨트에 짓는 아파트는 대부분 산기슭에 자리할 수밖에 없어 산을 가리게 된다. 나는 산기슭에는 되도록 테라스형이나 타운하우스형 주거단지가 들어서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을 국토부와 협의 중이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특히 오 시장의 뉴타운 대응을 ‘서민 기만’이라고 비판하며 ‘반값 아파트 법안’까지 제출했는데….
서민에게 양질의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한다는 점은 홍 원내대표나 나나 다르지 않겠지만 정책 방향에 대한 근본 생각이 다르다. 기본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책을 신중히 추진해야 부작용이 최소화되는 것이다. 시장 처지에서 막상 정책을 실행해보면 어떻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실효성 있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느냐가 고민이다. 주택정책에 왕도는 없겠지만 그분은 방법론상 과격한 방법을 구사한다고 보인다. 그렇게 마술 부리듯 반값 아파트 제공하겠다는 정책이 만일 실행되면 그 이후에 사회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홍 원내대표의 반값 아파트 정책이 잘 되기를 바란다.

서울 시민의 고통 중 교육 양극화 문제도 빠뜨릴 수 없는데 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나.
그동안 소리소문 없이 참으로 많은 변화를 이뤄냈다고 자부하는 분야가 교육이다. 취임 후 3급 상당의 교육기획관을 신설해 연간 시에서 징수하는 취득세·등록세의 1.5%인 500억원씩, 4년간 2100억원 정도를 비강남권 교육 향상에 쓸 재원으로 마련했다. 조직과 재원을 확보한 뒤 취임 2년간은 교육의 하드웨어 분야 격차 해소에 주력했다. 청소년의 덩치는 커졌는데 책걸상은 10~15년 전 것이고, 화장실도 부족하거나 낙후돼 학생들이 집에 가서 해결하는 사례도 많았다. 취임 뒤 강북 전체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이 두 가지 분야의 개선을 완료했다. 올해부터는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소프트웨어 분야에 중점 투자하고 있다. 방과 후 영어 원어민 교사 지원, 저소득층 자녀에게 방과 후 공간을 마련해주는 1학교1공부방 사업 등을 벌인다.
 

ⓒ서울시 제공노년층 복지정책으로 ‘9988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왼쪽)이 도봉 실버센터를 방문해 시설 노인을 격려하고 있다.

서울의 극심한 주택난과 사교육비 문제로 출산율은 줄고, 그나마 출산해도 육아 문제로 고통받는 맞벌이 세대가 늘어나는데….
저출산 문제 해결책으로 ‘서울형 어린이집’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영유아 보육정책의 핵심은 서울에 있는 보육시설 5500개 정도를 국공립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현재 90%가 민간 보육시설인데 국공립 시설에 비해 값이 비싸고 서비스 질도 떨어진다. 하지만 재정 문제 때문에 마냥 국공립 시설을 늘릴 수도 없다. 그래서 서울시 예산을 투입해 민간 보육시설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국공립 수준으로 낮추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내년에는 500개 정도 민간 보육시설이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인증받는다. 이렇게 해서 임기 4년 안에 전체 민간 보육시설의 절반인 2000여 개가 국공립 보육시설 수준으로 향상될 것이다.  

취임 후 줄곧 ‘디자인’을 강조해 ‘디자인 시장’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말이 서민의 일상과 피부에 와닿지 않아 공허하다는 비판도 있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에 오해가 많다. 디자인을 단순히 예쁘게 꾸미고 가꾸는 일 정도로 아는 분의 시각으로 보면 서울시장이 겉멋내기나 한다는 선입견을 갖기 십상이다. 그러나 디자인은 제대로 공부하면 ‘편리하고 쾌적한 쓰임새가 있도록 구상하는 것’이다. 도시 행정은 안전하고 편리하고 쾌적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이 네 가지가 충족될 때 시민에게 최대의 행복감을 줄 수 있다. 버스 정류장에 앉기 불편한 의자가 설치돼 있다면 제대로 된 디자인이라 할 수 없듯이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는 서울시민 생활과 직결되는 기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작업이다.

전임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복원을 치적으로 내세웠는데 생태하천과는 거리가 있다. 후임 오 시장은 유지관리에 문제가 없는가.
청계천 2, 3가는 인공구조물 중심이지만 중·하류로 내려가면 생태적으로 변했다. 끊임없이 습지와 초지를 조성하고 왕골 같은 나무를 심었다. 청계천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생태문제가 아니라 문화 콘텐츠다. 전임 시장이 하드웨어만 만들고 임기를 마쳤기에 후임인 나는 어떻게 청계천을 대표적이고 안락한 시민의 휴식처로 만들까 고민하다가 ‘문화디지털 청계천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IT와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도시민 휴식공간과 아울러 외국 방문객에게 청계천에서 서울의 정체성과 개성을 느끼도록 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한다. 

최근 오 시장은 서울의 도시 경쟁력 전략으로 ‘컬처노믹스’를 언급했는데 무슨 뜻인가.
컬처노믹스는 원래 덴마크 경제학자가 다국적기업의 현지 적응 전략으로 쓴 말이다. 나는 문화로 고부가가치를 만들고 국가 경쟁력을 창출하자고 새롭게 해석해 이 개념을 도입했다. 한국은 더 이상 저임금 산업으로 승부가 안 되고, 일본처럼 원천기술이나 첨단기술이 앞선 것도 아니어서 샌드위치 신세를 타개할 고민을 해야 한다. 나는 그 해법을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고품격 문화예술 이미지로 가져가는 이른바 데카르트 마케팅(첨단기술에 예술적 디자인을 접목하는 기법)에서 찾고 있다. 미국의 이미지는 상당 부분 뉴욕이, 프랑스의 그것은 파리가 차지하듯이 서울이 문화예술 도시로 세계에 브랜드 이미지를 가져가면 국가 브랜드도 높아지고 덩달아 여러 수출품의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리라 본다. 문화의 기본 기능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만드는 결정적 구실까지 할 수 있다.

한나라당에 오 시장의 여론조사 지지도가 높지 않다며 차기 시장 후보를 노리는 의원들이 많다. 시장 재선에 도전할 생각인가.
나보다 더 창의적으로 서울 시정을 잘 펼 분이 있다면 그분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동안 서울시의 시스템을 바꾸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자칫 생각을 달리하는 시장이 온다면 지속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창의적 발상으로 새로운 시정 변화를 체질화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1~2년으로는 안 된다. 몇 년 해봐야 ‘아,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이게 당연하구나’ 하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서울시장으로서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혁적 보수 진영의 젊은 대권 주자로 오 시장을 거론하기도 하던데 본인의 정치 비전을 어떻게 보고 있나.
일을 하는 사람 처지에서는 성과로 말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 포장보다도 내 재임 중 서울시가 변한 부분이 있는가, 어떤 정책 툴로 서울시민의 행복 총량을 증진했는가 등의 기준으로 내년쯤 총체적 평가를 받아보려 한다. 내 정치 진로는 그 부분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선행돼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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